3줄 요약:
-기자들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은 소속 매체, 보도 주제, 성별, 연차별 양상을 보인다.
-온라인 괴롭힘을 겪은 기자들은 무시, 가해자 이해, 괴롭힘 축소, 자기 검열 등을 취한다.
-자아 실현 욕구와 뉴스룸의 권위주의적 문화 속에 온라인 소통을 지속하는 기자들에 대한 회사 차원 대응, 조직 문화 변화, 언론계 차원의 공론화가 필요하다.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대중과 소통에 나서는 방송기자들이 겪는 딜레마, 한국 ‘뉴스룸’ 문화의 문제점을 들여다본 현직 기자들의 연구 논문이 최근 한국소통학보에 게재됐다. 고려대학교 미디어학과 박사과정의 임유진 TV조선 기자와 동 대학·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김학재 KBS 기자의 「디지털 환경에서 방송기자들의 딜레마: 소통과 괴롭힘 사이」(한국소통학보, 2024년 제23권 제3호)다.
올해로 각각 13년차(임유진), 23년차(김학재) 기자인 연구진은 지난 5~6월 국내 방송사 기자 15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대상자는 방송사 유형별로 지상파 7명,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 각 3명, 경제방송채널 2명이며, 6년차 평기자에서 26년차 데스크급 기자들로 구성됐다. 성별로는 여성 5명, 남성 10명인데 실제 뉴스룸에서 데스크급으로 올라갈수록 여성 기자 수가 확연히 적은 점이 표집에도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인터뷰 참여자들은 스스로 대중과의 소통을 추구하는 동시에 뉴스룸으로부터 ‘소통 확대’ 요구를 받아왔다. B기자(경제방송, 남성, 10~15년차)는 “(대중과) 접촉을 하면 제보 메일 같은 것도 많이 들어오고 현장하고 더 가까워지는 경향”을 들었다.
E기자(종편, 여성, 10~15년차)는 “SNS에서 스타가 된 기자에게 앵커 기회가 주어진 적이 있다”고 했다. H기자(지상파, 여성, 5~10년차)는 “개인 브랜딩이 잘 된 선배가 조직 개편에서 목소리를 내거나 해외 출장이 필요한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겠다고 발제했을 때 더 긍정적으로 검토하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방송기자들이 겪는 괴롭힘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매체별로 보면 경제방송 기자들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겪는 이들, 정치 보도를 하는 이들은 강성 지지층에 의해 괴롭힘을 겪는 식이다. 연구진은 진보 진영에서 종편 탄생 자체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아 종편 기자들은 특정 매체에 소속됐다는 이유만으로 공격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보기도 했다.
인터뷰에 응한 방송기자 15명 가운데 여성 5명은 모두 크고 작은 성희롱이나 성적 비하 등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밝힌 반면, 남성 10명은 성 정체성 관련 공격을 받았다고 답한 경우가 없다고 답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온라인에서의 관심이 오프라인 ‘스토킹’으로 이어지며 여성 기자들의 직업적 성취를 방해한다는 진단도 있다.
E기자는 “(‘남초’ 사이트에서) 여자 기자들에 대한 몸매 평가와 얼굴 평가들이 있어서 회사에서 바깥에 앉는 기자에게 바지를 입히자고 했다”고 전했다. A기자(종편, 여성, 10~15년차)는 “보안팀에서 전화가 왔는데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너를 찾더라, 선물을 줄게 있다면서 찾는데 어떻게 할까’ 해서 ‘내려갈 수 없으니 놓고 가 달라고 전달해 달라’ 했는데 이후로도 목요일 점심에 항상 찾아오는 상황”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디지털 괴롭힘 경험이 많고 강한 타격을 받는 저연차 기자들과, 데스크급 고연차 기자간 인식의 괴리도 확인됐다. 실제 데스크급 O기자(지상파, 남성, 25~30년차)는 “박제 사이트가 있다는 것도 처음 듣는다”, I기자(지상파, 남성, 20~25년차)는 “대중에 공개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니까 악플 달리는 거야 숙명”이라고 했다.
온라인 괴롭힘을 겪은 기자들의 대응은 △무시 △가해자 입장에서 이해 △괴롭힘 심각성 축소 △자기검열 등으로 분류됐다. 연구진은 이를 “괴롭힘이 업무를 지속하는 데 심리적 불편함, 트라우마를 유발하지만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관행이고,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이 괴롭힘을 애써 무시하고 축소하려 함으로써 인지부조화를 해결”하는 현상으로 해석했다.
‘자기 검열’은 “내 마음의 데스킹” “내 마음의 검열”이란 B기자 표현처럼 취재·보도에서, 또는 ‘시각적 측면’에서의 위축으로 발현됐다. 방송기자들이 스튜디오 출연을 최소화하고 리포트 제작 시 기자가 등장하는 ‘스탠드업’을 회피하는 식이다. 성희롱이나 외모 공격을 받은 여성 기자들은 치마 길이를 늘리거나 바지를 입으며 몸매가 드러나지 않게 하고, 화면에서 전신이 나오지 않게 하는 방식을 택했다.
연구진은 특히 “(괴롭힘은) 구조적인 문제이지만 대응 전략은 주로 개인 차원의 수준에서 이뤄졌음에 주목”했다. “조직의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 기자들은 괴롭힘의 고통을 호소하지 못하고, 설사 고충을 알리더라도 마땅한 제도적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서 개인적 차원에서의 소극적 전략”에 그쳤다는 것이다.
실제 F기자(지상파, 남성, 5~10년차)는 “온라인에서 욕을 먹었다고 징징대는 것을 나약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G기자(보도전문, 남성, 10~15년차)도 “말한다고 해서 해결해 줄 것 같지 않았다”고 했다. H기자는 괴롭힘에 대한 법적조치를 고민했으나 “법무팀에서 절차가 복잡하고 오래 걸리고 너도 스트레스를 받을 거라며 굳이 법적대응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대응하지 않았다.
데스크급인 K기자(지상파, 남성, 20~25년차) 역시 “뉴스룸의 분위기는 이런 기자 괴롭힘에 대해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L기자(보도전문, 여성, 20~25년차)는 “부장 입장에서는 시청자 항의나 기자 괴롭힘이 타 부서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서 쉬쉬하려는 분위기도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기자들이 소통 확대와 괴롭힘 속에서 겪는 인지부조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기자들의 비제작 부서 전출을 용이하게 하는 방안 △회사 내부의 심리 상담 지원 △심각한 괴롭힘에 대한 회사 차원의 법적 조치 적극 지원 △조직 문화 변화 △기자협회 차원 대응 등 언론계 안에서의 공론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나아가 “기자 괴롭힘 문제의 근원을 따져본다면 정치적 양극화와 젠더 갈등과 같은 사회적 이슈와 함께, ‘디지털 퍼스트’를 내세우며 기자들을 디지털 환경에 내몰고 있지만 정작 괴롭힘 문제는 외면하는 언론 사의 전략 부재 등 보다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차원의 문제들과 얽혀있다”며 “향후 연구에서는 더 많은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설문조사나 다양한 매체 유형을 포함한 연구를 통해 보다 심도 깊은 논의와 해법을 도출할 필요도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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