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수 신임 국세청장이 취임한 이후 국세청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이어진 불황기에 ‘따뜻한 세정’을 추구했는데, 이제는 ‘일 잘하는 국세청’을 표방하고 나선 것입니다. 일을 잘한다는 글귀 안에는 국세청 본연의 업무인 과세와 징수를 엄격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강민수 청장은 지난달 세종 국세청사에서 진행된 ‘하반기 세무관서장 회의’에서 국세청 슬로건으로 ‘강하고 당당한 국세청’을 제시했습니다. ‘공정 과세’를 기반으로 ‘해야 할 일은 제대로, 끝까지 하는 조직’을 만들자는 게 강 청장의 일성이었습니다. 그는 “세정 여건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일만큼은 반드시 해나가야 한다”고 직원들을 독려했습니다.
정부 안팎에서는 국세청의 분위기 변화가 2년 연속 벌어진 세수 펑크와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2024년 세수 재추계 결과, 올해 국세 수입이 337조7000억원으로 세입예산(367조3000억원)보다 29조6000억원(8.1%)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56조원의 세수 펑크가 발생한 데 이어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세수 확보’가 강민수호 국세청의 발등 위에 떨어진 불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세수 확보에 대한 의지는 강 청장이 발표한 ‘하반기 국세행정 운영 방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고가 부동산에 대한 감정평가 사업의 범위와 대상 확대 ▲불편부당하고 엄정한 세무조사 운영 ▲고의적 탈세 총력 대응 ▲조사 방해 행위에 대해 이행강제금 도입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강 청장은 2019년 이후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줄여오던 세무조사(2019년 1만6000건 → 2023년 1만3900건)에 대해서도 ‘탄력적으로 관리하겠다’라고 했습니다. “세무조사 규모를 지속 감축하겠다”는 지난해 국세행정 운영 방안과 온도차가 납니다. 관서장회의에 참석한 한 국세청 간부는 “청장이 ‘소는 누가 키우냐’며 세정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일선 세무조사관은 “정상화”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강 청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일까요. 최근 국세청의 탈세 행위 세무조사와 관련한 보도자료와 브리핑의 표현도 강경해졌습니다. 국세청은 지난달 25일 리베이트 행위 관련 세무조사 보도자료에서 “조사대상 의약품 업체 영업담당자들은 리베이트를 수수한 의료인을 밝히느니 그들의 세금까지 본인들이 부담하겠다며 하소연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의료계의 카르텔이 얼마나 강고한지 알 수 있었다”라는 문장을 썼습니다. 국세청이 조사 과정에서 나온 조사대상자의 발언을 공개하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대상자들의 탈루 세액 규모도 국세기본법상의 ‘납세정보 비공개’ 원칙을 내세워 밝히는 것을 꺼려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리베이트 세무조사 관련 브리핑에서 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은 “혐의 금액만 가지고 규모를 갖다가 말씀드리기는 조금 시기상조라는 느낌이 듭니다만, 상당한 규모가 된다”면서 “한두 자리 숫자대가 아니다. 수백억 이상의 리베이트 비용을 지급했기 때문에 (향후 추징될) 법인세도 상당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달라진 국세청의 변화를 민주원 국장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강민수 청장이 취임한 이후 국세청이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 오고 있다. 사회의 불합리한 관행들에 세금을 추징하는 것은 당연히 우리 국세청이 해야 될 부분이다.”
국세청이 지능적으로 재산을 은닉하거나, 부당이익을 향유하는, 또 민생을 위협하는 탈세자를 엄단하는 칼날이 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국세청의 엄정한 세정 기조가 납세자에게 ‘가혹한 세정’이 되지 않도록 경계도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국내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수 위축을 더욱 자극하면 안 되겠지요.
유학 오경의 하나인 예기에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의 일화가 나옵니다. 시아버지도, 남편도, 아들마저 호랑이에게 잡혀 먹힌 여인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지 못하는 까닭은 지금 사는 곳이 세금을 혹독하게 징수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냉철하게 세정을 집행하는 중에도 ‘가혹한 정치(세정)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잊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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