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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할머니가 ‘벌금 100만 원’을 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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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지를 모은 한 어르신이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앞 건널목을 힘겹게 건너고 있다. 위 사진은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 폐지를 모은 한 어르신이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앞 건널목을 힘겹게 건너고 있다. 위 사진은 해당 칼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지난달 4일 새벽 4시38분. 서울 중랑구에 있는 어린이 공원이 적막했다. 여전한 더위에 모기들이 살을 뚫을 틈을 노렸고, 팔과 다릴 휘저으며 벤치에 앉아 안매영 할머니(70)를 기다렸다.

폐지 수집을 마친 그는, 집에 가서 서류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법원에서 날아온 건데 뭔지도 잘 모르겠단다. 이 새벽에 우연히 폐지 수집 체험하던 나와 만났고, 기자라고 하자 하소연을 한 거였다.

“폐지 수집하다가 집 앞에 여행용 가방이 놓여 있더라고요. 세워진 자전거보다도 앞에 있길래 당연히 버리는 건 줄 알았지요. 거기서 옷 두 개를 꺼냈어요. 옷은 상자보다 더 많이 쳐주거든요. 그런데 ‘절도죄’로 재판에 넘어간 거예요.”

저 멀리서, 종이를 든 할머니가 놀이터에 들어서는 게 보였다. ‘대한민국 법원’이라 쓰인 봉투엔 국선 변호인을 선임하란 안내장이 들어 있었다. 1심 선고는 이미 나왔고, 검찰에서 항소해 항소심이 진행 중이었다.

판결은 절도죄로 벌금 100만 원. 변호인은 선임했느냐고 하자, 할머니는 뭐가 뭔지도 몰라 못했다고 했다. 이 종이밖에 모른다고, 기자님이라 하시기에 이야길 들어주실 것 같아서 가져왔다고.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았다. 할머니가 가져간 여행용 가방 속, 옷 두 벌. 할머니를 경찰에 신고한 상대방 측에선, 그 옷(트레이닝 바지) 안에 54만 원 정도가 있었고, 그게 없어졌다고 주장한단 거였다.

“깜짝 놀랐지. 파출소 가서 다 얘기했어요. 옷 안에 뭐가 있는지 살펴볼 정신도 없었다고. 그냥 그대로 고물상에 다 가져다줬다고요. 친정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셨어요. ‘딸아, 네가 바르게 해야 이 모든 게 태가 바르게 간다.’ 그 말씀이 옳은 것 같더라고요. 내내 그렇게만 살아왔어요.”

폐지를 40년 수집하는 노동을 하며 이런 적은 처음 겪는다고. 때때로 침묵이, 가끔은 울음이 이어지며 억울하단 할머니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마음 아프게 자녀들을 키웠단 것과 한겨울에도 일하느라 여름까지 손이 아프단 얘기도. 애들 다 키우고도 신세 지기 싫어서, 그 새벽에 자기 몸보다 더 큰 수레에 폐지를 싣고 있었다.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날아온 통지서를 살펴봤다. 사건 번호를 조회해봤다. ‘절도’란 내용이 떴다. 할머니는 ‘피고인’이라 돼 있었고, 의견서만 제출했다. 국선 변호인마저 선정하지 못했다. 7월18일. 판결이 선고됐고, 6일 뒤에 검사 측에서 항소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할머니가 꼬박 한 달을 모으면 많아야 20만 원. 몇 시간을 함께 노동해 보니 허리를 450번 넘게 숙여야 했다. 그래봐야 그날 하루 번 돈이 겨우 9000원이었다.

버리는 걸로만 알았던 단독주택 앞에 놓였던 가방. 상자값은 고작 1kg에 60원. 헌 옷은 1kg에 350원. 그러니 옷 몇 벌이나마 얼마나 크게 보였을까. 조금이나마 더 벌겠다고 고물상에 가져간 대가가 100만 원. 다섯 달을 벌어야 낼 수 있는 돈이었다. 상세히 더 들여다보긴 해야겠으나, 그 판결은 진정 최선이었을까.

그날 함께 폐지를 수집한 최준기 할아버지(77)도 이리 말했다.

“우리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많이 당해요. 가급적 절도 말고 죄명이라도 바뀌었으면 싶어요. 심지어 돈을 내더라도요. 실수로 할 수 있는 그런 걸로요. 조금은 더 좋은 말로요.”

자세히 취재하고 싶었으나, 할머니는 연락하기도 쉽지 않았다. 꽤 오래 기다려야 돌아오던 문자 한 통. 틀린 맞춤법으로 띄엄띄엄, 또박또박 쓰려 애썼던 글들. ‘도움 주시려고 하는되 너무 죄송합니다’란 회신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는 닿지 않았다.

▲ 환경미화원들이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환경미화원들이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동네에서 우연히 봤던 쓰레기봉투가 생각났다. 거기엔 큰 검정색 매직으로 이리 적혀 있었다.

‘칼이 들어 있습니다. 조심히 다뤄주세요.’

컴컴한 새벽에 수거하는 미화원님들이 행여나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단 우려의 말. 그 작은 글 하나로, 서로 얼굴도 모르는 두 존재가 쉬이 연결되었다.

76세에 폐지 수집 노동을 하는 할머니가 이리 말했다.

“생활용품 같은 것 버릴 때 ‘버리는 것’이라고만 표시해주면 도움이 크게 될 것 같습니다. 버리지 않는데 잘못 가져왔다가 혹시 오해를 살까, 늘 걱정이에요.”

‘버리는 것 아님’. 딱 여섯 글자만 적혀 있었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거였다.

할머니가 하소연하다 울다 새카만 손톱으로 “떳떳하게 살아왔어요”라며 눈물을 훔치는 일 같은 건.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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