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3급 비밀인 암구호(아군과 적군 식별을 위해 정해 놓은 말) 등을 담보로 군 간부들에게 급전을 빌려준 사채업자들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법정 최고금리를 넘어선 높은 이자를 받으며 돈을 빌려주고 제때 채무를 상환하지 않은 군인들에게는 비밀 누설을 볼모 삼아 협박까지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주지검 형사3부(한연규 부장검사)는 군사기밀 보호법·대부업법·채권추심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무등록 불법대부업자 A(37)씨와 대부업체 직원인 B(27)씨, C(32)씨를 구속기소 했다고 2일 밝혔다.
A씨 등은 충청 지역 모 군부대 등에서 근무하는 군 간부 3명에게 암구호를 담보로 수십만∼수백만원을 빌려준 혐의를 받는다. 검찰 수사 결과, A씨 등은 인터넷 도박이나 코인 투자 실패 등으로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군 간부들에게 접근해 군사비밀을 담보로 한 대출을 제안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A씨 등은 이런 방식으로 군 간부 10명에게 대출을 권유했으나 이 중 7명은 제안을 뿌리친 것으로 파악된다.
A씨 등은 대출을 상환할 무렵이 되면 암구호를 누설한 군 간부에게 ‘돈을 갚지 않으면 부대에 민원을 넣겠다’고 협박하고, 채무자의 가족 등을 상대로도 채권을 추심했다.
A씨 등은 암구호 이외에도 피아식별띠(아군과 적군을 구별하기 위해 군모나 군복에 두르는 띠)나 부대 조직 배치표, 산악 기동훈련 계획서 등 외부 유출이 엄격하게 제한된 군 자료 사진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줬다.
이 사건의 실체는 군 정보수사기관인 국군 방첩사령부가 암구호를 누설한 육군 대위급 간부를 적발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해당 간부는 올해 1월 상황실의 암구호판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뒤 사진 파일을 사채업자에게 보내주고는 2회에 걸쳐 모두 100만원을 빌린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군사기밀 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지난 6월 군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방첩사는 수사 과정에서 민간인인 사채업자들이 사건에 대거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전북경찰청과 전주지검에 공조수사를 요청했다. 검경은 이후 여러 차례 압수수색과 탐문 수사로 사건 관련 증거물을 확보해 군 내부에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암구호 담보대출의 실체를 밝혀냈다.
A씨 등 사채업자들은 군 간부와 사병 등으로 만기 전역해 암구호와 피아식별띠 등의 높은 보안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보안업무훈령에 따라 3급 비밀로 규정된 암구호는 단어 형식으로 매일 변경되고, 전화로도 전파할 수 없다.
초병이 ‘문어’(問語)를 말하면 출입자는 ‘답어’(答語)를 외치는 방식으로 피아 식별을 한다. 유출되면 즉시 폐기되고 암구호를 새로 만들어야 할 정도로 보안성이 강조된다.
검경과 방첩사는 암구호가 채권추심 협박용 외에 반국가단체 등으로 흘러갔는지에 대해서도 수사했으나 현재까지 대공 용의점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A씨 일당은 대구에서 불법 대부업체를 운영하면서 군 간부들을 포함해 채무자 41명에게 1억8560만원을 빌려주고 법정이율(연 20%)의 1500배에 달하는 최대 연 3만%의 금리를 적용해 1억여원을 이자로 받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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