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투자 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한다. 민자 혼잡 도로의 차선 확장이나 노선 연장 등 대규모 개량·증설이 기존엔 사업 운영 기간이 만료된 후에나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운영 중’에도 가능해진다. 이같은 개량운영형 민간투자 인프라에 대한 관리 운영권은 최대 100년까지 보장된다.
정부는 또 민자 사업의 발목을 잡는 공사비 상승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격 변동 내역을 좀 더 현실적으로 총사업비에 증액해 반영하게 하는 특례를 신설한다. 총 24조원 규모에 달하는 관련 금융 지원 패키지도 마련해, 투자 자금이 민자 사업에 원활하게 유입될 수 있도록 돕는다.
관계부처는 2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이런 내용 등을 담은 ‘민간투자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는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공사비·금융 비용 상승, 민간사업자에 대한 불합리한 규제가 민자 활성화에 장애물로 작용한다”며 “규제 합리화를 통해 민간의 창의와 효율을 극대화하고, 민간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개량운영형·생활SOC·결합형 민자사업 발굴 ‘더’
우선 개량운영형 민간투자사업에 관한 규제를 푼다. 이는 사업자가 기존 사회기반시설(SOC)을 개량·증설한 뒤 이것이 포함된 전체 시설에 대한 사용료로 투자비를 회수하는 방식의 사업이다. 기존에 이런 노후·혼잡 시설에 대한 개량·증설 사업은 민자 사업의 운영 기간이 만료된 경우에나 추진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운영 중’이더라도 가능하게 한다. 또 개량·증설이 가능한 사업 유형에 차선(선로) 확장 외에도 ‘노선 연장’도 포함하기로 했다.
관련 규정상 최대 50년까지 둘 수 있도록 하는 관리운영기간도, ‘요금 인하 또는 개량·증설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최대 100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허용할 방침이다. 이렇게 관리운영기간이 만료된 사업이라도 대규모 개량·증설 투자 수반 없이 장기간 효율적인 시설 운영이 가능하게 하는 ‘(단순) 운영형 민자 사업’ 도입을 위해 연구용역도 추진할 방침이다.
정부는 또 지역 밀착형 생활SOC 사업에 대한 민간투자 사업을 활성화하고자 한다. 생활SOC 시설이란, 어린이집, 유치원‧학교, 도서관, 미술관, 과학관, 박물관, 생활(전문)체육시설 등을 일컫는다. 지방 소멸 대응 관점에서 아주 중요한 인프라이지만, 도로·철도 등 대규모 인프라에 비해 소규모 사업이어서 민자 사업 추진이 저조한 현실이다.
이에 정부는 해당 사업에 대한 투자 자금이 원활히 조달될 수 있도록 도울 방침이다. ‘생활SOC 사업 우대 집합자산 유동화회사보증’을 3000억원 규모로 신설하고, ‘통합 생활SOC 사업’을 추진할 때 자기자본 의무 출자 비율을 1%포인트(p) 인하해 초기 재원 조달 부담을 덜어줄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지방소멸대응기금도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4년여 전 도입됐으나 추진 실적이 전무한 결합형 민간투자사업도 활용도를 높일 방침이다. 결합형 민자 사업이란, 임대형 민간투자 사업(BTL)의 낮은 수익률을 수익형(BTO) 민자 사업 연계를 통해 보완하는 것으로, 사업 시행자의 참여 유인을 제고하면서도 사용료나 재정 부담은 줄이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지하부에 바이오가스화 시설을 지어 임대형으로 추진하고, 그 위 지상에 공연·전시 등 복합 문화시설을 지어 수익성을 확보하는 식이다.
정부는 민간사업자가 이런 결합형 사업을 복수의 관할 주무관청에 제안했을 때 기재부가 주(主) 주무관청을 지정해 절차를 속도감 있게 진행하도록 하고, 운영 기간이 종료되면 해당 시설을 주무관청으로 귀속시키도록 제도화하기로 했다. 또 이런 결합형 민자 사업 추진으로 재정을 절감하면, 주 주무관청과 사업 시행자에 예산성과금(인센티브)을 더 많이 주기로 했다.
법으로 규정된 기존 민간투자 대상 54개 시설이 아닌 도시공원 케이블카, 대관람차 등 ‘새로운 대상 시설’을 발굴해 민간투자 사업을 추진할 경우, 민간투자사업심의위원회(민투심)에서 ‘패스트트랙’으로 빠르게 진행될 수 있게 한다. 주무관청이 유휴 국·공유지를 사전 공개 후 민간에 공모해 창의적인 민자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대상지 공모형 민간투자 사업’도 도입된다.
◇ 총사업비에 2021~2022년 공사비 급등 부담도 반영
정부는 이런 민자 사업 발굴을 촉진하는 데 앞서, 당장의 공사비 상승과 금융 조달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한 방안도 함께 마련했다. 우선 공사비 상승 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현재 추진 단계에 있는 BTO·BTL 등 민간투자 사업들의 이미 책정된 총사업비에 2021~2022년간 비용 상승분을 반영할 수 있도록 특례를 마련했다.
또 24조원 이상의 금융기관 대체투자 자금이 민간투자 사업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각종 금융 지원책을 마련했다. 우선 ‘2000억원+알파(α)’ 규모의 ‘(민투사업) 출자 전용 특별 인프라펀드’를 내년 도입하기로 했다. ‘만기 없는’ 환매금지형 공모 인프라펀드의 설립을 허용하는 한편, 민투법상 공모 인프라펀드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해, 일반 국민의 민자 사업에 대한 투자 기회를 넓히면서도 사업자의 금융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민자 사업에 대한 신용보증 공급은 역대 최고 수준인 4조원 이상으로, 보증 한도도 1조원에서 2조원으로 늘린다.
이밖에 건설보조금 지급 주기를 분기별에서 월별 지급도 가능하도록 유연화하고, 임대형 민자 사업 수익률 조정 주기도 기존 ‘5년 원칙’인 것을 민간사업자 자율적으로 더 짧거나 긴 주기로 선택할 수 있도록 개선하기로 했다. 민간투자법상 SOC에 대한 취득세를 50% 감면해 주는 조치는 당초 올해 말 일몰 예정이었으나, 2027년까지 3년 연장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대책을 통해 민자 적격성 조사를 통과했으나 협약이 체결되지 않아 착공되지 않은 사업과 ‘운영 중’인 민자 시설에 대한 개량운영형 사업 등 새로운 방식의 사업 추진 등으로 향후 5년간 30조원 수준의 민간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정부는 하반기 중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 BTO(수익형 민자사업)와 BTL(임대형 민자사업)이란
민간투자 사업의 방식을 일컫는 용어. BTO(Build-Transfer-Operate)는 민간 기업이 사회기반시설을 지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소유권을 양도한 뒤, 일정 기간 직접 운영하면서 투자 비용을 회수하는 사업 형태다. BTL(Build-Transfer-Lease)은 민간이 공공시설을 짓고 이를 임대해서 쓰는 방식이다. BTO는 민자 사업자가 ‘운영 수익’을 챙기는 것이지만, BTL은 시설을 만들고 그 운영권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리스해 ‘이자 수익’을 챙긴다는 차이가 있다. 경우에 따라 BTO와 BTL의 혼합형 사업 방식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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