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처음이다. 그래서 서툴고 실수가 많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도,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도 그리고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우리 사회가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이들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일상의 사소한 말과 행동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고 아동학대로까지 확대되는 사회를 만들어서는 안된다. ‘아이 LOVE, 페어런츠’, 아이를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아이와 부모가 사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시작해야 할 첫걸음을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시사위크=권정두·김두완·연미선 기자 “말 안 들으면 도깨비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유년시절, 혹은 현재 아이를 키우면서 한번쯤은 듣거나 해봤을 말들이다. 아니, 어쩌면 ‘한번쯤’이 아니라 ‘하루에도 몇 번씩’이란 표현에 더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많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사위크’는 300명을 대상으로 아동학대 인식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하면서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 50개를 제시하고 자녀들에게 이 중 어떤 말을 해본 적 있는지 물었다. 자녀가 없는 경우엔 성장기에 들어본 적 있는 말을 고르도록 했다.
제한 없이 복수선택이 가능한 이 문항에서 제시된 말을 하거나 들은 적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8.5%에 불과했다. 또 하거나 들은 적 있는 말을 선택한 응답자들은 평균 8개를 복수선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 나아가 정서적 아동학대 소지가 있는 말이 일상 속에 만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가장 많은 응답이 나온 것은 ‘빨리 숙제부터 해’로 40.7%를 차지했다. 이어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33.6%) △셋 셀 때까지 해(32.9%) △큰소리를 꼭 쳐야 말을 듣니?(32.1%)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31.4%) △어디서 말대꾸야(30%) 등이 뒤를 이었다.
물론 이러한 말 자체만으로 아동학대란 판단이 내려지고, 처벌이나 조치가 이뤄지는 건 아니지만 정서적 아동학대에 해당할 소지는 적지 않다.
임주리 마인드가드너 심리코칭센터 대표는 “이러한 말들을 하는 건 정서적 학대가 맞다. 기본적으로 듣는 사람이 불쾌하고 상처가 된다면 문제가 있는 말이다. 이런 말을 들어서 성장에 도움이 되고 기뻐하거나 행복해하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성희롱이나 성추행에 있어서 당하는 사람이 어떻게 느꼈는지가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그동안은 ‘아이를 키우면서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어간 건데,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신체적 체벌 문제가 전반적으로 크게 개선된 것도 바람직하지 않나. 부모들이 아이를 때리는 게 당연했던 시절도 있지만, 이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말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사위크의 설문조사에서도 언어적인 측면에서의 변화 및 개선상이 확인되는 지점은 있었다. ‘절대 남한테 지면 안 돼’라는 말을 선택한 응답자가 많진 않았으나 모두 자녀가 없는 응답자였고, ‘네 형/언니 반만이라도 따라가 봐’와 ‘걔는 학원도 안 다니고 1등 했다더라’와 같이 형제 또는 친구와 비교하는 내용의 경우에도 전체 응답에선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지만, 이를 선택한 90%가 자녀가 없는 응답자였다. ‘넌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와 ‘무서운 아저씨가 잡아간다’ 등도 자녀가 없는 응답자의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았다.
이는 ‘어린 시절 이러한 말을 들었다’는 응답자는 많은 반면, 현재 ‘아이를 키우며 이러한 말을 하고 있다’는 부모는 적은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비교하는 말이나 공포감을 심어주는 말이 지니는 문제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 비해 개선된 셈이다.
다만, 의사소통 및 훈육 과정에서의 어려움으로부터 비롯되는 말은 여전히 별다른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응답자들만 놓고 보면 ‘징징거리면서 할 거면 하지 마’, ‘울지 좀 마’, ‘제발 여러 번 말하게 하지 마’ 등이 상위권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이게 속상할 일이야’,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당연한 걸 왜 물어’ 등도 자녀가 있는 응답자의 선택 비중이 높았다. 대체로 아이가 말을 듣지 않거나 아이의 언행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되는 말과,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성격이 두드러진다.
유치원~초등학생 자녀들을 키우며 이번 설문에 응한 30대 여성 이모 씨는 “해당 문항에 응답을 하면서 많이 부끄럽고 속상했다”며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훈육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렇게 돌이켜보니 나 또한 많이 잘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주는 쪽보단 화풀이를 하고 강압적으로 따르게 하는 쪽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40대 남성 박모 씨는 “방송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간혹 접해본 것 같긴 하지만 솔직히 어디까지가 바람직한 훈육 방법인지, 어디부터가 아동학대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유치원생 자녀를 둔 30대 여성 김모 씨도 “아이가 점점 자라 말이 늘고 자기주장도 강해지면서 부딪히는 상황이 부쩍 늘고 있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 점점 커진다”며 “책을 찾아보거나 전문가 강연을 보면서 도움을 얻고 있기도 하지만 그때그때 상황과 아이의 행동 및 반응이 다 다르다보니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
임주리 대표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정서적 학대성 말을 하게 되는 이유를 짚어보자면 그런 말을 들으며 자랐기 때문이 가장 클 것이다. 부모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그런 말을 듣고 자라며 반복 학습이 된 반면, 바람직한 말은 잘 접해보지 못했다. 한편으론 자신이 듣던 말을 아이에게 되돌려주는 의식적 보상 차원도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서, 아이를 올바르게 훈육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좋지 않은 말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면서 “예의와 존중을 가르친다면서 그것이 결여돼있는 말을 한다면 배울 수 있을까. 잘못을 하고, 잘못을 반복했다고 꼭 나쁜 말을 들어야 할까. 그렇다고 나아질 수 있을까. 어른들도 늘 잘하기만 하는 게 아니고 잘못할 때도 있다. 직장이나 일상생활에서 같은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는 일도 많다. 그럴 때 상대방이 화를 내길 바라나, 친절하고 상냥하게 알려주길 바라나. 아이들도 마찬가지다”라고 강조했다.
주목할 점은 시사위크의 설문에 응한 응답자 중 97.9%가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전 언어나 행동 등 올바른 양육에 대한 ‘부모교육’이 필요하다 생각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반면, 실제 이러한 ‘부모교육’을 받아본 적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5%에 불과했다.
부모교육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내용 측면에서도 ‘자녀와의 의사 소통’이 76.6%로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고, ‘부모의 양육 기술 및 태도’가 62.8%로 뒤를 이었다.
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30대 남성 정모 씨는 “부모가 되는 것은 무척 대단한 일이면서 또 어려운 일인데, 대부분 준비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실전에 부딪히게 된다. 그렇다보니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심지어 무의식적이고 일상적인 학대에 이르게 되기까지 하는 것 같다”며 “출산을 앞둔 시기나 주요 육아시기에 적절한 교육이나 정보제공이 이뤄진다면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명의 자녀를 둔 30대 여성 조모 씨도 “뉴스에 나오는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들을 보면, 외부와 단절된 채 집안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에게 교육 및 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가정방문 등이 이뤄진다면 일반적인 가정의 사소하고 일상적인 정서적 학대와 중대한 아동학대를 모두 예방하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라며 “요즘 출산 및 육아에 대한 지원이 많이 늘고 있는데, 그런 부분들과 병행하면 사회적 효과가 더욱 클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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