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한국과 슬로바키아가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키로 했다. 유럽 첨단산업의 거점으로 부상한 ‘비셰그라드 그룹 4개국(슬로바키아·체코·폴란드·헝가리)’과 모두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게 되면서 우리 기업의 유럽 진출에도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로베르토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와 회담을 갖고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은 글로벌 복합 위기 속에서 가치 공유국이자 유럽의 중요한 파트너인 슬로바키아와 협력을 더욱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양국은 전략적 동반자로서 새로운 30년을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슬로바키아가 아시아 국가 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한 것은 한국이 최초다. 슬로바키아는 현재까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체코, 폴란드, 헝가리, 아제르바이잔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했다. 다만, 우리 정부에겐 단순히 양국 간 관계 강화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슬로바키아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으로 비셰그라드 그룹 4개국 전체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통상연구원이 지난 13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비셰그라드 4개국은 경제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갖고 있다. 동-서유럽을 잇는 경제적·물류적 허브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서유럽 국가에 비해 낮은 법인세율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3년 기준 대(對)비셰그라드 4개국 교역 규모는 총 261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2004년에서 2023년까지 교역 규모는 연평균 15.0%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한-EU 교역 성장세(연평균 6.3%)의 두 배 이상이다.
◇ 체코 이어 동유럽도… ‘원전 르네상스’ 청신호?
이러한 상황에서 양국 간 관계 강화는 경제협력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한-EU 자유무역협정(FTA)를 최대한 활용해 교역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전자, 녹색 기술, 로봇공학, 자율시스템, 방위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촉진하기로 했다. 슬로바키아는 인센티브 및 연구개발(R&D) 활동을 수행하는 우리 기업들에 세제 혜택 등 다양한 투자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양국은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도 체결했다. 교역·투자, 산업, 공급망 등 협력 강화 및 우리 기업의 슬로바키아 시장 진출 확대를 위한 협력의 틀을 마련한 것이다. 기업 간 공동프로젝트를 개발하고 기업인, 기술자, 전문가 등 교류 협력을 촉진키로 했다. 무역장벽 제거를 통해 교역을 촉진 시키겠다는 의지도 담았다. 윤 대통령은 “양국 간 무역, 투자 확대뿐만 아니라 에너지, 공급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포괄적 협력을 촉진하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를 기반으로 원전 협력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양국은 이날 회담을 계기로 ‘포괄적 에너지 협력 MOU’를 체결했다. 슬로바키아 정부는 지난 5월 야슬로프스케 보후니체 원전 단지에 1200MW 원전을 신규 건설하는 계획을 승인한 바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이 체코 원전 수주 성과를 기반으로 ‘원전 르네상스’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만큼, 이번 협력이 불씨를 당길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는 이날 윤 대통령을 만나 “원자력 분야 협력에 있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셔서 감사하다”고 언급했다.
한편, 양 정상은 국제무대에서의 공조를 강화하자는 데에도 의견을 같이했다. 한반도와 유럽의 안보가 긴밀하게 연결된 만큼 적극적인 협력에 나서겠다는 취지다. 양측은 공동성명에 “고위급 회의, 정책 협의 및 기타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한-비셰그라드 그룹의 틀 내에 협력을 더욱 촉진”하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북한의 정세 불안정 행위와 러북 군사협력에 대한 강한 우려를 공유하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납북자·억류자·미송환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공조에도 뜻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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