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를 빙자한 아동폭력을 막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당한 훈육 방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 보니 가정이나 학교에서는 아이가 부모를 신고하거나 부모가 교사를 신고하는 등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이런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29일 ‘가정·학교 내 아동학대 및 훈육 판단 지침서’를 펴냈다. 경찰의 불입건 및 불송치, 검찰의 불기소, 법원의 유무죄 판결 등 172건의 사례를 분류해 상황별 판단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형사사법 절차에서 ‘신체적 체벌’은 대부분 아동학대로 인정되고 있다. 주먹이나 손·발, 옷걸이·회초리 등으로 때리는 행위뿐만 아니라 거칠게 잡아당기는 행위도 학대 사례로 제시됐다. 폭행으로 인한 외상이 뚜렷하지 않아도 신체적 체벌은 “피해아동의 정신 건강 및 발달에 악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보고 유죄 판결이 나고 있다. 특히 아이가 심리적 위축, 수면장애 등 정서적 피해를 본 경우에는 학대로 인정하는 경향이 크다.
다만 아동의 위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한 체벌인 경우 ‘불가피한 사유’로 인정해 불기소되는 사례도 있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떼를 쓰며 문을 열려고 한 아이를 제지하기 위해 아이 얼굴을 손으로 때린 엄마는 무혐의 처분됐다. 길바닥에 누워 발버둥 치던 아이를 일으켜 세우면서 손바닥으로 1∼2회 때리고 어깨를 잡고 흔든 부모에게도 법원은 “설령 신체적 학대라고 하더라도 훈육의 의사로 이뤄진 정당행위”라고 판단했다.
아이와 사전에 세운 ‘규칙’에 따른 체벌도 정당한 훈육으로 인정된다. 아이가 양치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효자손으로 손바닥을 한차례 때린 부모는 아이와 사전에 이런 처벌을 약속했고 체벌 정도가 경미하다는 이유로 입건되지 않았다.
사전에 학생들에게 ‘문제 행동 시 30초 투명의자 벌칙(양손을 앞으로 뻗고 엉덩이를 뒤로 빼 의자에 앉아있는 것 같은 자세를 갖추는 것)’을 공지하고 이를 시행한 교사에게도 법원은 ‘정당한 훈육’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최근 ‘정서적 학대’는 폭넓게 인정되는 추세다. 지침서에선 △욕설과 폭언을 하고 △잠을 재우지 않고 △음식을 억지로 먹이고 △방에 가두거나 집에서 내쫓는 행위 등이 학대 사례로 제시됐다.
법원은 자녀가 보는 앞에서 지속적으로 부부싸움을 하는 것도 “피해아동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한 정서적 학대”로 인정하고 있다. 학교에서 학생을 교실 밖으로 쫓아내 혼자 격리하는 행위도 대표적인 정서적 학대 행위다.
특히 법원은 다른 훈육 방법을 고려했는지,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한 것은 아닌지를 중점적으로 살피고 있다.
정서적 훈육도 미리 정한 규칙에 따라 시행됐다며 학대로 인정되지 않은 사례가 있다. 법원은 수업 시간에 떠든 10살 아이 2명을 수업 이후에 교실에 30분∼1시간30분간 가둬둔 교사에 대해 학대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교사가 수업 전에 미리 “수업 중에 떠들면 교실에 남아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하겠다”고 말했고 교실 내 분위기가 강압적이지 않았다는 점이 고려됐다.
지침서는 경찰청 누리집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다만 국수본은 학대 행위의 경우 실제 현장에서 사안마다 판단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므로 참고 목적으로만 활용해달라고 당부했다.
한겨레 이지혜 기자 /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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