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백억원을 들여 서울에 새 독립운동기념관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과는 별개의 것이다. 대통령실이 무장항일운동에 치우쳤다고 지적한 독립운동사를 균형감 있게 다루겠다는 취지인데, 야당에서는 친일 뉴라이트 사관이 깃든 ‘윤석열표 독립기념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설명을 27일 종합하면, 국가보훈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계기로 기존의 독립기념관과 차별화하는 국내민족독립운동기념관(가칭)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연면적 5000㎡, 지상2층 지하1층 규모로, 총사업비는 245억원이다. 정부는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기본조사 설계비 3억9900만원 △시설부대비 4000만원 등 총 4억3900만원의 관련 예산을 편성했으며, 2027년까지 사업을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이다.
건립 지역으로는 서울 종로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3·1 운동의 발상지인 탑골공원이 있는 등 ‘역사적 상징성’을 고려한 것이다. 보훈부는 부지 물색을 위해 서울시에 시유지 현황 등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구체적 명칭과 부지, 기존 독립기념관과 별도로 운영할지 여부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
새 독립운동기념관은 독립운동가(인물) 중심인 기존 독립기념관과 달리 여러 독립운동의 유형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윤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무장독립운동과 외교독립운동, 교육 및 문화독립운동 등을 일일이 열거하며 “모든 독립운동의 가치가 합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발언한 것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학계선 ‘이승만 미화’ 우려 나오기도
하지만 역사학계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독립운동을 조명한다는 명분 아래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일방적인 미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을 “선각자”라고 추어올리고, 대통령실이 “독립운동의 주체로서 과도하게 무장독립투쟁이 강조돼왔다”는 인식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독립운동이 균형감 있게 계승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사업 취지가 달성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앞서 보훈부는 지난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이 전 대통령을 선정해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활동하며 외교중심 독립운동을 했지만 독립운동 과정에서 여러 과오를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는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에게 국제연맹 위임통치를 해달라고 청원하는 등 독단적 행동을 해 임시정부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했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된 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해체해 친일 청산을 방해하기도 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한국의 독립운동사가 항일무장투쟁에만 치중돼 문제라는 뉴라이트의 인식을 정부가 적극 뒷받침하고 나선 것”이라며 “내년이 이승만 탄핵 100주년인데, 이를 부각하기는커녕 가리려고 애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현정 의원은 “정부가 독립운동의 역사마저 갈라치기하고, 정쟁화하려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며 “일제와 부역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역사를 입맛대로 재단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를 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심우삼 기자 / wu3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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