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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의 가격표④] 가난한 수달은 ‘냉동 닭’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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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엔 가격표가 붙는다.” 경제 칼럼리스트 에두아르도 포터의 저서 ‘모든 것의 가격’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주위에 존재하는 ‘생물종’도 마찬가지다. 보잘 것 없는 풀벌레와 잡초, 새, 동물들 모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비용과 시간, 노력은 부담스럽다. 몇몇 이들은 자연 도태된 종을 보호해야 하는지 반문한다. 그러나 멸종위기종 보호와 복원은 어긋난 톱니바퀴를 다시 끼워 넣는 일이다. 우리가 멸종위기종을 지키고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고객’을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편집자주]

수달은 하천 최고의 포식자로 붕어, 가물치, 베스 등 대형 어종을 손쉽게 사냥한다. 하지만 ‘한국수달연구센터’에서 보호하는 개체들은 냉동 닭을 먹이로 먹고 있었다./ 박설민 기자
수달은 하천 최고의 포식자로 붕어, 가물치, 베스 등 대형 어종을 손쉽게 사냥한다. 하지만 ‘한국수달연구센터’에서 보호하는 개체들은 냉동 닭을 먹이로 먹고 있었다./ 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우거진 나무 사이, 잔잔한 연못 수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족제비처럼 보이는 동물이 먹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먹이를 낚아챈 이 동물은 ‘수달’. 우리나라 대표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이다. 강력한 이빨과 턱을 가진 수달은 강의 최상위 포식자다. 붕어, 가물치, 베스 등 우리 하천에 서식하는 모든 물고기는 수달의 먹잇감이다.

하지만 수달이 사냥한 먹이는 물고기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준 ‘냉동 닭다리’였다. 닭다리는 이른 6월 더위에 녹아서 흐물흐물해진 상태였다. 이 닭다리를 수달은 뼈째 씹어 먹었다. ‘강의 왕’이라 불리는 수달의 별명이 무색해진 순간이다. 이 수달은 왜 물고기 대신 인간이 준 냉동 닭다리를 먹고 있는 것일까.

◇ 활어 대신 ‘냉동 닭’ 먹는 수달

닭다리를 먹던 수달은 ‘한국수달연구센터’에서 보호하는 개체다. ‘한국수달보호협회’에서 운영하는 센터는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에 2004년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수달 종 증식・복원을 위한 연구가 이뤄진다. 과학적 사육 관리를 통해 확보된 수달 개체는 인근의 파로호나 전국에 방사된다.

현재 수달연구센터에서 보호하는 개체는 약 20마리다. 동물원에서 기증받은 작은발톱수달 모녀를 제외하면 모두 한국 토종 수달인 ‘유라시아 수달’이다. 대부분은 야생에서 구조된 개체다. 특히 새끼 개체들은 장마철 폭우, 홍수로 어미를 잃고 구조됐다. 

한국수달연구센터 내 사육장에서 수달이 냉동 닭다리를 먹고 남긴 흔적./ 박설민 기자
한국수달연구센터 내 사육장에서 수달이 냉동 닭다리를 먹고 남긴 흔적./ 박설민 기자

센터 내 젊은 개체는 복원 연구를 위해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로 전달된다. 지난 2021년 구조된 새끼 수달은 3년 간 돌봄을 받은 후 올해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 전달되기도 했다. 반대로 성체가 된 수달은 센터로 이송, 야생 적응 훈련을 거친 후 자연에 방사된다. 

수달의 야생 방사 훈련은 자연과 유사한 환경의 인공 연못에서 수영, 먹이 사냥, 인간 경계심 강화 등으로 이뤄진다. 특히 야생 수달에게 있어 살아있는 물고기 사냥은 가장 중요한 야생 훈련이다. 이를 위해 센터에서는 지난해까지 메기 등 활어를 수달에게 먹이로 공급했다.

하지만 올해부터 수달들의 먹이는 냉동 닭으로 바뀌었다. 올해 들어 수달연구센터 운영 예산은 대폭 줄어들어들면서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해 센터 운영 예산은 약 20% 감소했다. 화천군으로부터 제출받은 2022년, 2023년 ‘한국수달연구센터 운영실적’ 자료에 따르면 센터 운영예산은 3억9,000만원. 이를 감안하면 올해 예산은 약 3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예산이 줄면서 먹이뿐만 아니라 시설 관리도 문제가 생겼다. 지난해 11월 센터 물 공급 펌프가 고장났다. 하지만 비용 부족으로 모터를 바로 교체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올해 5월까지 수달 연못에 물이 공급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기자가 센터를 방문했을 때 대다수 수달 우리 연못은 바짝 말라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센터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수달들에게 먹이로 메기 등 민물 활어를 제공할 수 있었지만 올해는 예산 부족으로 냉동 닭을 해동해 먹이고 있다”며 “5월 초 비가 와서 물이 어느 정도 차긴 했지만 물 공급 펌프 모터 교체도 계속해서 연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수달연구센터에서 보호 중인 수달의 모습.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해 센터 운영 예산은 약 20% 감소했다./ 박설민 기자
한국수달연구센터에서 보호 중인 수달의 모습.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해 센터 운영 예산은 약 20% 감소했다./ 박설민 기자

◇ 줄어드는 예산, “인건비 마련 조차 어렵다”

예산 부족은 수달연구센터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환경부, 국립생태원 등 국내 멸종위기종 복원 및 관리 사업을 담당하는 부처·연구기관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나라 멸종위기종 관련 사업 예산은 타 연구 분야 대비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 종합계획(2018)’에 따르면 2027년까지 목표로 하는 복원종은 총 25종. 해당 기간 이 종들의 복원에 투입되는 예산은 총 190억200만원이다. 우리나라 정부출연 연구기관 1곳의 주요R&D 평균 예산 약 840억원과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핵심 연구기관인 국립생태원도 상황이 녹록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시사위크」가 국립생태원으로부터 전달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7년간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 관련 연구예산은 △2018년(40억9,400만원) △2019년(45억2,900만원) △2020년(50억2,900만원) △2021년(51억5,900만원) △2022년(67억2,800만원) △2023년(67억2,800만원) △2024년(59억400만원)으로 집계됐다. 안 그래도 부족한 예산은 올해 전년 대비 12.25% 줄었다.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운영 및 복원전략을 제외한 순수 ‘멸종위기종 증식복원’ 예산은 더욱 적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6년간 관련 연구예산은 △2019년(7억4,000만원) △2020년(14억원) △2021년(14억6,600만원) △2022년(17억3,600만원) △2023년(17억3,600만원) △2024년(17억3,600만원)으로 집계됐다.

종별 사업 관점으로 보면 예산 부족 문제는 더욱 부각된다. 현재 국립생태원에서 중점 복원 중인 우선복원대상종은 총 21종이다. 올해 기준 1종당 배정된 복원 예산은 평균 약 8,266만6,667원이다. 국내 과학 연구 과제 당 평균 연구비가 3억6,000만원임을 감안하면 23% 수준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연구자 1명이 4~5종 복원을 담당해야 하는 셈이다.

임정은 국립생태원 선임연구원은 “멸종위기종 복원 연구는 국가 자연 생태계 균형 유지와 생물 자원 경쟁력 확보 등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연구비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도 연구비가 2억원 수준에 못 미치는 연구실도 많아 인건비 마련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2018년부터 2024년까지 7년간 국립생태원 멸종위종 관련 연구예산 통계./ 이주희 디자이너
2018년부터 2024년까지 7년간 국립생태원 멸종위종 관련 연구예산 통계./ 이주희 디자이너

◇ 한정된 예산, 복원에도 ‘우선 순위’가 필요하다

멸종위기종 예산이 적은 이유는 ‘단기성과 부족’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정부 부처의 경우 해마다 운영 성과를 발표해야한다. 여기엔 엄연히 실적 발표도 포함된다. 때문에 정부 부처에선 국립생태원 등 연구기관에 많은 예산을 할당하기 어렵다. 또한 수익을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업 특성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결국 한정된 예산으로 최적의 성과를 내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여러 멸종위기종 중 ‘어떤 종’을 먼저 복원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선 대중성(인기), 복원 가치 및 가능성 등을 고려한 복원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 마치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스마트폰, TV 등에서 ‘간판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호랑이는 인기가 많지만 주민 반대 등의 이유로 복원 사업 우선종이 되긴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의 복원 사업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표준 복원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한다. 2018년 환경부와 국립생태원에서 설정한 것이다. 분류군별 3차례의 소속‧산하기관 전문가회의와 멸종위기종 267종 전체에 대한 3단계 평가를 거쳐 증식‧복원 대상 64종 선정했다. 이중 우선 복원 대상은 25종으로 반달가슴곰, 따오기, 수달, 쇠똥구리 등이다.

각 복원 대상은 △분포상황 △개체수 추세 상황 △서식지 적합성 △멸종위기 수준 △국제보호등급 등 요소를 고려해 선정된다. 특히 우선 복원 대상종은 복원이 시급하다고 판단되는 종, 복원이 대상종의 개체 수 회복 및 주변 생태계의 다양성 회복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종들이다.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도 중요한 고려 요소다. 세금으로 멸종위기종 복원 예산을 지불하는 국민은 복원 사업의 가장 중요한 ‘고객’이다. 따라서 학술적 가치 및 국제적 보전가치가 높은 종, 인간과의 충돌, 사회적·생태적 피해에 대해 안전성이 높은 종들이 복원 우선순위에 속하게 된다. 현재 과학기술 수준, 증식·복원에 소요되는 시간도 중요한 판단 요소다.

한정된 예산으로 최적의 성과를 내기 위해선 대중성(인기), 복원 가치 및 가능성 등을 고려한 복원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 다만 일부 인기종에게만 연구예산이 쏠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
한정된 예산으로 최적의 성과를 내기 위해선 대중성(인기), 복원 가치 및 가능성 등을 고려한 복원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 다만 일부 인기종에게만 연구예산이 쏠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

◇ 멸종보호도 ‘인기순’… 생물다양성 전제한 투자 절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일부 인기종에게만 연구예산이 쏠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본지가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증식·복원사업 예산액’ 자료에 따르면 △반달곰(28억6,200만원) △산양(14억3,500만원) △여우(13억4,100만원) △여울마자, 모래주사 등 어류 2종(5억원)이다. 전체 예산 78억7,400만원 중 약 80%가 5종에 몰린 것이다.

나머지 20종의 복원은 국립생태원에서 이뤄진다. 복원 대상은 △포유류 1종(무산쇠족제비) △조류 3종(저어새, 황새, 양비둘기) △양서·파충류 4종(비바리뱀, 수원청개구리, 남생이, 금개구리) △어류 4종(여울마자, 모래주사, 큰줄납자루, 한강납줄개) △곤충 1종(소똥구리) △무척추동물 1종(참달팽이) △육상식물 6종(나도풍란, 만년콩, 가는동자꽃, 서울개발나물, 신안새우난초, 한라송이)이다.

해당 종들의 전체 복원 예산은 17억3,600만원. 종별로 환산하면 1종당 평균 8,680만원이다. 환경부에서 추진하는 5종 대비 예산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자연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똥구리의 올해 복원 연구예산은 4,000만원으로 평균 배당 예산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김율 국립생태원 대외협력부 과장은 “많은 비용과 시간이 투입되는 멸종위기종 복원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이는 매우 중요한 국가사업”이라며 “생태계 복원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미래 자원 확보, 국가 과학기술력 증진 등 단순한 금전적 가치만으로 따지기 힘든 가치가 멸종위기종 복원에 담겨있다”고 전했다.

김백준 국립생태원 생태응용연구실 팀장은 “도요물떼새와 같은 철새 한 마리가 우리나라에서 시베리아까지 날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라면 2개 반 정도에 불과하다”며 “이처럼 멸종위기종의 보전과 복원, 보호를 위해 필요한 비용은 우리 생각보다 적지만 당장의 이익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투자를 꺼리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시사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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