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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편견지사⑨] 헌신의 무게는 같은데…12년간 사무직에 머물러야 했던 ‘여성 소방관’

투데이신문 조회수  

한 부자(父子)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사망하고, 아들은 중상을 입고 응급실로 이송됐다. 응급실에 도착한 의사가 아들을 보고 “난 수술 못합니다. 이 소년은 내 아들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글을 읽고 의아함을 느꼈다면 의사는 당연히 ‘남자’일 것이라는 고정된 편견 하에 일종의 편향적 사고를 행한 것이다. 사실 이 의사는 ‘여성’이자 ‘아이의 어머니’였다. 이처럼 특정한 직업, 인종, 성별 등에 대한 고정된 기대나 선입견 때문에 올바른 판단을 제한하는 사고의 오류를 ‘마인드버그’라고 말한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고들 말하지만, 실제 일터에서는 금남금녀의 벽과 임금 차별, 성차별로 가득차 있다. 실제 「투데이신문」이 현장에서 만난 보육교사, 간호사, CEO, 메이크업 아티스트, 대리운전 기사, 플로리스트, 자동차 정비사, 소방관, 인테리어 시공업자 등은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과 편향적인 관점을 지적했다. 

이에 연재 기획 [남녀편견지사]를 통해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직업을 택한 이들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더 나아가 성평등이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릴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관련 전문가들의 제언을 담아냈다.

여성 소방관 김민경(47)씨. [사진제공=본인]
여성 소방관 김민경(47)씨. [사진제공=본인]

【투데이신문 박효령·왕보경 기자】 화재는 언제든지 발생하고 출동 알람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울린다. 소방관들은 ‘생명을 지켜야 한다’ 사명감을 항상 마음에 새긴 채 뜨거운 불길 속으로, 때로는 위험한 사고 현장에 주저 없이 달려간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소방관들이기에 시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존경과 사랑은 특정 성별의 소방관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직업에는 성별이 없다고 하지만 소방관은 오랜 시간 남성의 직업으로 인식돼 왔다. 화재와 재난 현장에서 강인한 체력과 힘을 요구하는 직업이기에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는 고정관념은 여전히 깊이 박혀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소방청이 지난 7월 발간한 ‘2024 소방청 통계 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소방 공무원은 총 6만6797명이다. 이 가운데 여성 소방 공무원은 6736명으로 10.0%에 불과했다. 이러한 통계를 반영하듯 여성 소방관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 같은 전통적인 성(性)역할 고정관념에도 많은 여성 소방관들은 이를 극복하며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여성이라서 안 될 것은 없다”는 강한 신념으로, 그들은 소방서 내에서는 물론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짙은 편견을 깨뜨리고 있다. 이들의 용기와 헌신은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이가 존중받아야 할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민경(47)씨 역시 세상 속 성 역할 고정관념에 맞서 20년째 소방관으로 일하고 있다. 김씨는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성’ 소방관이기에 마주했던 편견과 고충에 대해 털어놨다. 그의 이야기는 개인의 경험을 넘어 사회 전체적으로 성 역할에 대한 고정된 인식과 태도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음을 드러냈다.

김민경씨가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민경씨가 본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같은 소방관임에도…사무업무만 ‘12년’

김씨도 더 이상 ‘여성’ 소방관이 아닌 ‘든든한’ 소방관으로 불리고 싶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 동안 소방관으로 살아왔고 이제는 어엿한 양산소방서의 팀장이지만, 그 역시 여성 소방관이라는 이유로 사회에 잔존한 편견에 진통을 앓아야 했다.

그가 소방관이 된 이유는 단순했다. 20년 전 공무원은 안정적이고 노후가 보장되는 직업 중 하나였기 때문에 ‘화재를 진압해야겠다’와 같은 생각은 하지 못했고, 소방공무원도 공무원 중에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소방서를 배정받아 출근하고 정복을 입으니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고 안전을 수호하는 일이 너무 값지고 고귀한 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전과 달라진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기 위해 열심히 훈련받고 노력했지만, 막상 그에게 찾아온 건 차갑다 못해 시린 편견이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에게는 사무업무만 배정됐기 때문이다.

그의 상관들은 같이 화재, 구조 현장을 나가는 남성 소방관들이 ‘여성 소방관의 존재를 불편해한다’, ‘같이 일하는 것을 꺼려한다’는 이유로 굳이 외근을 나갈 필요가 없다며 김씨에게 내근을 지시했다. 이처럼 일부 남성 소방관들은 여성을 지켜줘야 할 존재로 여겨 같이 험한 일을 하는 것을 불편해했고, 또 다른 이들은 여성이 힘과 체력이 부족하다며 현장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렇게 김씨는 12년간 출동벨이 울리면 신속하게 출동하는 남성 소방관의 뒷모습을 보며 사무 업무만 처리해야 했다. 가슴 속에는 깊은 설움과 분노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현장에 나갈 날을 꿈꾸며 상관에게 요청해 보거나 더욱 훈련에 매진해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씨는 “제가 체력단련을 오래 해왔거나 남들보다 운동신경이 뛰어나지 않았던 건 맞다”며 “그렇지만 남녀의 힘, 체력 차이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고, 충분히 잘 해낼 수 있고 의지도 컸는데 인정받지 못해 서러웠다”고 호소했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 끝에 김씨는 현장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바로 그가 출산·육아 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지난 2016년부터 양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가 커지고 여성 소방관들의 채용률도 높아지고 나서야 김씨는 현장에 나갈 수 있었다. 그 이후 8년 동안 그는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선 현장에서 헌신하고 있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체력,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하며 매일매일을 노력으로 채워왔다.

20~25kg 상당의 장비를 착용한 채 날씨 영향을 그대로 받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일하지만 그는 현장에 있는 자신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조금은 늦었지만 매사 성실했고 몸을 사리지 않는 탓에 그 노고를 인정받아 지난해부터 그는 팀장 직함을 받기도 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미흡한 여성 휴게실부터 승진도 어려운 현실

김씨는 일하면서 여성 소방관들에 대한 처우가 미흡하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외근을 나가지 못하는 것을 넘어 현장을 출동했다가 돌아와도 씻거나 휴식을 취할 탈의실, 휴게실이 없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근만 했을 당시 사무실 내에만 있었기 때문에 센터 내 휴게실 및 탈의실이 없어도 큰 불편함은 없었지만 화장실은 큰 문제였다. 남녀공용 화장실 하나로 소방관들이 모두 사용해야 했고, 유일하게 센터 내 여성 소방관이었던 김씨는 다른 동료들과 화장실을 가는 것이 겹치지 않게 매일 눈치를 봐야 했다. 사용하면서도 생리대 처리 등의 불편함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 2018년 잠시 밀양의 한 소방센터에서 근무하게 됐는데, 그곳은 여성 휴게실과 샤워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잔뜩 매연을 뒤집어쓰고 들어와도, 땀 범벅 상태가 돼도 김씨는 자신이 다니고 있는 센터가 아닌 인근 다른 센터나 주변 시설 등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아직까지도 여성 소방관들이 사용할 탈의실, 휴게실 등이 없는 곳이 있고, 지방이나 외진 곳일수록 더욱 그럴 확률이 높다”며 “그런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여성 소방관을 발령할 수 없는 곳도 많다”고 답답해했다.

특히 본보의 취재에 따르면, 김씨의 여성 소방관 동료들은 소위 ‘남초’ 조직의 남성 중심 문화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입을 모았다. 심지어 한 여성 소방관은 일부 남성 소방관들에게 투명인간 취급까지 당한 적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청한 여성 소방관 A씨는 “6년 전 회식 때 여성 소방관들을 일부러 높은 직급의 남성 상사 옆에 앉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특히 여성 소방관들에게는 경력이 차고 자질이 충분함에도 높은 직책을 주지 않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김씨 역시 승진에 대한 부당함을 토로했다. 연차를 따져봤을 때 김씨는 충분히 팀장 직책을 부여받을 수 있음에도, 당시 일부 상사에게 “현장 경험이 적기 때문에 팀장을 맡기는 것은 어렵다”는 말을 듣기도 한 것은 물론 자신보다 늦게 발령된 남성 소방관이 김씨보다 먼저 팀장 직급을 달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는 이 같은 경우가 많이 없어지고 개선됐지만, 아직도 일부 센터에서는 여성 소방관을 선발해 외근직으로 발령을 보냈음에도 내근직으로 일하게 하는 사례가 있다”며 “그럴수록 수당, 승진에 있어서도 여성이 차별받을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현재 경남 지역에서 진압 요원으로 팀장 직을 맡은 사람은 저밖에 없을 것”이라며 “유능하고 훌륭한 여성 소방관들 동료들이 많은데, 이들에게도 충분한 기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투데이신문」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여성 소방관에 대한 인식 실태에 대해 취재한 결과를 담은 주요 키워드표. 

 사명감은 똑같지만…남성 소방관을 바라는 사람들

이처럼 그는 성별을 넘어 자신의 헌신과 노력으로 당당히 인정받기 위해 성실하고 꾸준하게 맡은 바 일을 다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우리 사회는 김씨 같은 여성 소방관들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투데이신문〉은 여성 소방관에 대한 인식을 들여다보기 위해 일반 시민 20명을 대상으로 취재를 펼쳤다.

소방관에 대한 이미지를 묻자 대부분 ‘고귀하다’, ‘명예롭다’, ‘위험하다’, ‘힘든 직업’ 등의 느낌을 이야기했다.

이 중 여성 소방관에 대해 평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취재원 중 35%(7명)만이 긍정적인 의사를 드러냈다. 그 이유로 응답자들은 ‘멋지다’, ‘친근하고 침착할 것 같다’, ‘신체능력이 뛰어날 것 같다’고 답했다.

반면 다른 65%(13명)은 여성 소방관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털어놨다. ‘생소하다’, ‘제대로 진압, 구조 등의 업무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등의 반응은 물론, ‘사무 일 만 할 것 같고 남자 소방관보다 약할 것 같다’는 편견 섞인 반응을 보 취재원도 있었다.

소방관에 대한 성별 선호도를 묻자 65%(13명)은 남성 소방관을 보다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여성 소방관이 꺼려지는 대표적인 견해로는 ‘힘에서 차이가 날 것 같다’, ‘남성 소방관이 현장에서 체력과 정신력이 더 강인할 것 같다’ 등이 있었다.

심지어는 ‘힘과 체력의 차이는 물론 판단력 또한 현장에서 많이 뛰는 남성 소방관들이 더 좋을 것 같다’고 답변한 취재원도 있었다.

응답자 20%(4명)는 ‘힘이 필요한 상황이면 남성, 아프거나 다쳤을 때는 섬세하게 봐줄 수 있는 여성이 좋을 것 같다’, ‘불편한 신체 접촉이 필요한 상황이면 여성 소방관이 와줬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을 내놓으며 성별에 따른 장점이 다르다고 언급했다.

취재원 대부분은 ‘남성 소방관과 비교해 부족하다’, ‘요령만 있을 것 같다’ 등을 언급하며 남성 소방관과 힘과 체력 등을 비교했다. 하지만 일부는 ‘신고사유에 맞는 소방관이 배치돼야 한다’며 성별이 아닌 상황에 따른 적절한 소방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해당 취재로 소방관은 남성에게 적합한 직업이라는 편견이 남아 있으며, 여성 소방관들은 경력이나 직업정신이 아닌 성별이라는 잣대로 평가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아직도 이질적인 존재인 ‘여성’ 소방관

이 같은 편견은 실제 현장에서도 여전히 잔존해 있다. 김씨뿐만 아니라 또 다른 여성 소방관들도 주변 남성 동료들에 비해 차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데다 특정 성별에 맞춰진 근무환경에도 적응하기 어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년 차 구급대원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강경림 여성부본부장은 “과거에 비해 개선된 점은 분명 있으나, 아직 여성 대기실 등이 없어 여성 소방공무원들이 소서에 배치되지 않거나 시설을 새로 구축할 때 여성 휴게실부터 제일 먼저 없애는 관행이 있다”며 “현장에 여성이 소수다 보니 불평등, 불합리한 요소들은 남아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특히 구급대원이 아닌 화재, 구조 등을 나가는 여성 소방관들에게는 운전만 시키거나 현장 활동을 못하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여성 소방관들에게 내근이나 보조 역할을 하는 게 맞다는 분위기로 몰아가 어쩔 수 없이 그 내근직으로만 머무르고 있는 동료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강 부본부장의 말처럼 여성 소방관에 대한 성(性)벽은 장기간 이어져 왔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지난 2015년 10월에 발표한 ‘경찰·소방·교정직 여성공무원 성차별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소방관(281명)은 ‘업무부서 선택’, ‘인사평가 유리한 업무·보직기회’ 등에서 남성에 비해 불리하다는 인식이 컸다.

또한 각 조직 내에 ‘부서장 및 상급자가 남자공무원을 더 선호’하며 ‘여성의 배치’를 꺼려하고 ‘여성의 증가’에 불만인 조직문화와 관행이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성차별 피해까지 이어졌다. 실태조사에서 여성 소방관 응답자 중 27.5%인 77명은 성차별 피해 경험을 겪은 적이 있다며 목소리를 냈다. 

여성 소방관들의 저조한 관리직 비율도 공개됐다. 소방직 내 관리직에서 여성비율이 매우 낮고, 바로 아래의 직급인 소방위의 비율이 현재 1.9%에 불과했다. 하위 직급인 소방사, 소방교, 소방장 직급에 여성의 비중이 91.9%지만 남성 소방관은 71.9%로 하위직에 여성의 비중이 20%를 초과하는 수치였다. 이에 인권위는 관리직 성별 불균형은 장기간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인권위는 “여성 소방직 공무원들은 여전히 구급, 행정, 서무 등 특정 직무에 집중적으로 배치되고 있었고 이는 여성의 승진 가능성을 현저히 낮추는 것으로 보인다”며 “모든 업무영역이 구조대와 같은 체력 기준을 요하지 않으나, 각종 관행상 여성들은 여전히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현장 업무수행 능력이 있고 본인의 의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 자체가 차단되는 경우도 있었다”며 “오랫동안 남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조직문화가 여성들의 직무수행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숙식, 생활, 휴식, 취침을 함께 하는 조직문화 속에서 여성 소방직 공무원들은 동료라기보다 외부의 이질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자칫 직장 내 성희롱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짚었다.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인권위는 “휴식 및 편의시설은 매우 부족한 것은 경찰직과 공통적”이라며 “소방직의 경우 각종 편의시설 외에도 체격에 맞는 복장과 장비 문제 개선이 시급하다. 각종 복장과 장비는 업무효율성뿐 아니라 안전을 위한 필수요소이지만 여성 소방직의 신체적 차이를 고려한 복장 장비 지급은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했다.

김민경씨의 모습. [사진제공=본인]
김민경씨의 모습. [사진제공=본인]

누구보다 든든하고 명예로운

이렇듯 여성 소방관을 향한 이유 없는 오해와 편견은 아직 우리 사회에 내재돼 있다. 하지만 여성 소방관들은 친근한 응대로 위험에 처한 이들을 안심시켜 줄 수 있으며 특수한 구조·위급 상황에 적재적소 활용할 수 있다.

더욱이 재난안전에 있어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고 도입하는 시기 속 여성 소방관이 소방계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이 풍부하다. 더 나아가 사회, 조직에 남아 있는 직업별 성 역할 고정관념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건국대학교 소방방재융합학과 이향수 교수는 “여성 소방관들은 현장에서 구조, 진압 등의 활동은 물론 꼼꼼하고 섬세한 성향을 발휘해 보다 나은 의사 결정을 도울 수 있다”며 “특히 여성들이 많은 공간에 출동한 경우 보다 구조자를 안심시킬 수 있는데, 이 같은 부분은 남성 소방관들과 상호보완이 가능하다”고 짚었다.

이어 “최근 들어 순직률을 줄이기 위해 소방, 재난안전과 관련해서 로봇, AI(인공지능) 등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연구, 정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며 “점차 이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 소방조직에서도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지게 되고 점차 성비가 맞아가면서 평등한 조직문화가 형성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도 공감의 목소리를 냈다. 강 부본부장은 “근무를 해오면서 여성 소방관들이 여성 주취자 등 신체적 접촉이 가능하거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이들을 다독이고 진정시켜 본 적이 많다”며 “특히 여성분들의 상의를 벗겨 심전도 판독을 해야만 하는 등 특수한 상황에서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 소방관이 증가하 이들에 대한 복지, 지원도 늘 것이고 이에 발맞춰 여성 소방관 유입도 확대될 수 있다”며 “남성과 여성 비율이 동등해지면 조직 내 불평등도 해소되는 데 이어 여성 소방관에 대한 편견도 많이 개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에서는 여성 소방관을 시대에 맞게 육성하고 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성에게 맞는 교육, 훈련 프로그램이 확대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분야로 알려질 수 있도록 인식 개선이 필요하고 여성 소방관이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화재소방학회가 지난 2021년 4월 발간한 ‘여성 소방공무원의 성역할 정체감에 따른 직무만족도의 차이’ 논문에서는 일반조직과 달리 소방조직의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여성 소방관들은 비록 자발적으로 선택한 직업일지라도 성 고정관념상의 여성적 역할과 소방공무원으로서의 남성적 역할이 동시에 요구되는 이중역할에 대한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고 짚었다.

여성 소방관들은 이러한 성 고정관념 및 남성 중심의 소방조직 환경과 관련해 심리적 갈등과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에 여성 소방관의 직무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여성성 및 남성성 성역할 정체감을 균형 있게 높이기 위해 여성과 남성 서로 간의 인식개선을 위한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와 더불어 체력단련시설 이용 활성화와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 운영, 직장 내 의사결정 참여 시스템 마련, 교대 근무 인력 확충, 담당 업무의 순환 보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교수 역시 “사회적인 다양성, 양성평등 차원에서 다른 공무원 영역은 성별의 벽이 많이 허물어지고 있는 반면, 유독 소방조직은 진입 장벽이 아직도 높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의식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성비를 맞추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이어가야 하며, 내부에서도 인식 개선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여성들에게 마치 불모지처럼 느껴졌던 소방의 세계는 이제 여성 소방관들의 도전과 용기로 점차 평등하고 다채로운 직업군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재의 위치에 오기까지 많은 여성 소방관들은 편견에 상처받고 아파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매사 성실하게 맡은 바 임무를 다 해내고 이를 발판 삼아 더 단단해지고 강인해졌다. 이로써 세상은 점차 변화를 맞고 더 다양한 색을 게 됐다.

이제는 여성 소방관을 성별이 아닌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명예로운 직업으로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더 나아가 하나의 직업군을 성별로 나누는 것이 아닌 꿈 꾸면 할 수 있는 모두의 삶으로 바라봐야 할 때다.

“소방관으로서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마음에는 성별이 중요하지 않고, 구조 및 응급 활동에서 여성 소방관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사회가 왔으면 해요. 또한 소방조직에도 남성, 여성을 떠나 모두가 동등한 문화가 더욱 자리 잡아 나갔으면 좋겠어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성별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거잖아요.” (소방관 김민경)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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