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아시아의 금융·경제 허브(hub)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누려왔던 홍콩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이후 빚어진 중국 본토와의 정치적 갈등 때문에 외국 자본이 줄줄이 홍콩을 이탈하면서 국제 사회에선 머지않아 싱가포르가 홍콩 대신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예측은 다소 이르거나 과장된 감이 없지 않다. 조선비즈는 다양한 현장 취재와 인터뷰를 통해 홍콩의 객관적인 현 위상과 내일에 대해 조명해 본다.[편집자 주]
홍콩의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사이버포트는 기술력과 확장성을 까다롭게 심사해 육성할 스타트업을 선정한다. 사이버포트 인큐베이션 프로그램(CIP) 대상자로 선정되면 2년간 무상의 컨설팅과 멘토링, 네트워킹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약 2억원 상당의 재정적 지원을 받게 된다. 스타트업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인 조건이기에 매년 수많은 스타트업이 지원하지만 심사과정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사이버포트가 집중하는 산업에 맞아야한다는 조건도 있다.
메탈림픽스(Metalympics)는 이같은 까다로운 조건들을 모두 만족하고 2년째 사이버포트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 한국인 창업자의 스타트업이다. 블록체인과 웹3, 메타버스 교육 플랫폼으로서 학생들이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기술 교육을 지향하는 교육 스타트업이다. 통상 블록체인이나 메타버스 스타트업들은 기술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메탈림픽스를 설립한 이동영 대표는 서비스나 상품이 아닌 교육에 대한 뜻이 오래 전부터 강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어릴적 꿈은 천체 물리학자였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물리학자에 대한 꿈이 강했지만, 언젠가부터는 꾸준히 실용성에 대한 갈망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요새 유행하는 MBTI 중에 저는 ENTJ인데, 그 설명이 딱 맞더라”며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어야만 의지를 갖고 공부할 수 있고 파고 들게 되는데 교육 분야, 특히 기술 교육에서는 아직 그 부분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창업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또한 계속 변화하는 기술 트렌드를 따라가기 보다는 시대가 변해도 변함없이 필요한 것을 추구하다가 교육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메탈림픽스가 처음부터 교육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사이버포트에 들어오기 전, 이 대표는 사이버포트처럼 기술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홍콩 과학원의 1년 짜리 프리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교육 스타트업 워크XP를 창업했지만 이를 정리하고 이후 메탈림픽스를 새로 창업하면서는 메타버스 기반의 e스포츠를 개발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메탈림픽스의 초기 설립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블록체인이나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감이 컸고 그에 따라 초반에는 굉장히 긍정적인 분위기였다”며 “직접 상금 조달도 하고 다른 기업 측에서도 앞으로 상금을 후원해주겠다고 해서 네다섯번 정도 게임 대회도 개최했다. 한 6만5000달러(약 8700만원) 상당의 상금을 운영까지 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블록체인에 대한 회의감과 산업 하향기에 접어들면서 사업의 지속성에 회의가 생겼고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도 시작됐다. 그때 과학원의 육성 프로그램이 끝나고 또다른 지원을 받기 위해 사이버포트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원래 뜻이 있었던 교육과 메타버스를 접목한 메탈림픽스를 만들게 됐다.
어디서 사업을 시작할까에 대한 고민도 많았는데 결과적으로는 홍콩을 택한 것이 잘한 선택이었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홍콩대를 졸업해 홍콩 사회에 익숙한 사실도 있지만, 사이버포트라는 잘 갖춰진 지원 체계와 홍콩 정부가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기술 교육, 세금 체계, 상장(IPO) 시장의 규모, 중국으로의 사업 확장성까지 모든 요소가 사업에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교육열이 특히 높은 편인 홍콩에는 80개 이상의 국제학교가 있다.
이 대표는 “홍콩 내 손꼽히는 국제학교인 ISF와 한국 국제학교 등 다양한 국제학교들의 방과 후 프로그램이나 학교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하면서 사업 실증을 늘리고 있다”며 “GBA(Great Bay Area·홍콩의 광둥성 9개 주요 도시와 홍콩, 마카오를 잇는 거대 경제권인 광둥·홍콩·마카오 대만구)를 통해 홍콩 경제권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시장 파이는 굉장히 큰 편이고, 곧 참여할 광동성 교육 포럼을 통해 중국 진출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홍콩 사이버포트의 인큐베이션 대상으로 선정되려면 특별한 기술력은 물론이고 사이버포트가 심사하는 기준에 정확히 맞아야한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기준은 매출이나 사용자 수도 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이버포트가 집중하고 있는 산업 클러스터다. 사이버포트가 집중하는 여섯가지 클러스터는 ▲핀테크 ▲스마트리빙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웹 3로, 메탈림픽스는 스마트리빙 클러스터로 지원해 심사를 받았고, 2022년도에 CIP 대상이 되어 사이버포트에 입주했다.
사이버포트 입주 뒤 메탈림픽스는 다양한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특히 메탈림픽스는 사이버포트가 제공하는 다양한 네트워킹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여러 학교와의 협력도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인 더샌드박스와도 협력해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제공받고 있다. 예컨대 더샌드박스가 제공하는 툴 중 하나인 ‘게임 메이커’는 코딩이 필요없이 메타버스 제작을 경험할 수 있기에 디자이너나 프로그래머가 아닌 일반 학생도 메타버스를 체험하고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또한 구글의 1억 달러 규모 인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진 소프트웨어 기업 럭스로보도 메탈림픽스와 협력하고 있는 기업이다. 메탈림픽스는 럭스로보의 주력 상품인 교육형 모듈 로봇 제품 모디(MODI)를 코딩과 기술교육에 활용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최근 체결했다. 모듈형 하드웨어 블록으로 구성된 모디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코딩을 배울 수 있는 교육 도구로, 럭스로보가 자체개발한 운영체계 모디OS는 전세계 50여개국에서 판매되는 인기 제품이다. 이 대표는 “제일 어린 나이로는 3살짜리도 다양한 툴을 이용해 메타버스를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교육했었다”며 “현재 집중하는 연령대는 중학생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영어만 가능하다면, 홍콩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권했다. 홍콩 거주민들은 기본적으로 영어, 중국어, 광동어 등 기본적으로 세가지 언어를 구사하는데, 사업하는 사람들끼리는 영어 사용 만으로도 충분하고 국내보다 훨씬 큰 투자금과 다양한 사업기회가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수년 새 홍콩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진 것에 대한 질문에는 사실이라고 답했다. 그는 “중국으로 인한 마이너스도 있겠지만, 사업자 입장에서 당장은 플러스 요인이 크다”며 “중국은 최근에 AI와 로보틱스 인재 육성의 뜻을 강하게 밝혔고 투자 규모도 어마하기 때문에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라면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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