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나라는 고령자의 일자리 문제가 큰 이슈로 떠올랐다. 이웃나라 일본은 인구의 10%가 80세 이상이고 65세 이상이 전체의 30%에 달해 ‘평생 현역 사회’ 실현을 목표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은 일본을 찾아 정부와 기업, 전문가 등을 만나 고령화 대응 일자리 전략을 살펴보고 우리나라에 필요한 해법을 모색했다. 관련 내용은 지면과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릴 ‘제5회 리워크 컨퍼런스’를 통해 소개할 예정이다.
일본 후쿠이현 사바에시에 있는 한 안경테 제조 업체는 6년 전 외국계 기업에 인수된 뒤 본사와의 소통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 바뀐 생산 관리에 적응하지 못해 이직하는 직원도 나타났다. 경영진은 ‘커리어컨설턴트’를 초빙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전 직원 200여 명을 대상으로 지금껏 맡은 업무와 성과를 돌아보고 자신의 강점과 앞으로의 전망·목표 등을 정리해보는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후 직원별로 커리어컨설턴트와의 상담이 이어졌다. 팀원과의 소통이 어려운 관리자, 회사의 방향성에 관한 이해가 부족했던 입사 1년차 주니어 등 컨설팅을 받은 직원 대다수는 만족감을 드러냈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들이 ‘하고 싶은 일’이나 ‘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명확히 하는 게 업무 향상에 효과적임을 깨달았다”며 “인사담당자의 커리어컨설턴트 자격증 취득을 독려해 이 프로그램이 사내에 정착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
일본은 근로자의 업무 향상이나 능력 개발을 위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 활동하는 커리어컨설턴트를 2016년부터 국가 자격증으로 법제화해 관리·육성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올 8월 말 현재 7만 5137명의 국가 공인 커리어컨설턴트가 등록돼 있다. 후생노동성 관계자는 “산업구조 변화 등으로 근로자가 자신의 경력을 주체적으로 파악하고 정비할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커리어컨설턴트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며 “명확한 정의나 자격이 없었기에 법률로 자격을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커리어컨설턴트가 가장 많이 활동하는 곳은 기업이다. 기업은 세미나·연수·컨설팅 등을 통해 근로자들이 주체적으로 업무 역량을 높이도록 독려하는데 일본에서 이러한 ‘구조’를 일컫는 ‘셀프커리어독(Self-Career Doc)’ 관리를 커리어컨설턴트들이 맡고 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약 40%의 기업이 커리어 컨설팅을 위한 체계를 갖춘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종업원 1000명 이상인 사업장의 경우 77.1%에 달했다.
규모가 작아 커리어컨설턴트를 채용하기 어려운 기업은 공공기관 등에 소속된 커리어컨설턴트의 도움으로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후생노동성 관계자는 “일본 47개 도도부현마다 각 1곳씩 ‘커리어형성·리스킬링 지원센터’를 설치해 기업들의 요청에 대응하고 있다”며 “개별 기업을 찾아가 세미나·컨설팅을 진행하거나 기업 인사담당자들을 따로 모아 고충을 듣고 대안을 마련하는 자리도 갖는다”고 말했다.
학교·공공기관 등에도 커리어컨설턴트가 배치돼 있다. 김명중 일본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본 내 커리어컨설턴트의 업무는 단순히 기업 현장에서의 근로자 상담으로 끝나지 않는다”며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학생이나 퇴직 후 재고용을 준비하는 구직자를 위한 조언도 이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저출산·고령화로 커리어컨설턴트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초고령사회에서 고령자도 계속 일하기 위해서는 전 생애에 걸친 경력 관리가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일본 총무성·후생노동성 등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율은 2020년 말 59.5%에서 2070년 말 52.1%로 줄어드는 반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8.6%에서 38.7%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하는 방식과 채용 형태 변화도 커리어컨설턴트를 더욱 필요로 하는 이유다. 일본은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문화나 종신 고용 시스템이 점차 희미해지는 대신 파견 사원, 시간제 일자리 등 비정규 근로자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다. 첫 회사에서 정년까지 근무하며 경력 관리를 모두 회사에 맡겼던 과거와는 달리 스스로 자신의 업무 능력을 점검하고 학습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
|
히라노 히로유키 일본커리어카운슬링협회(CCA) 이사장은 “65세를 넘어 75세까지도 일하게 될 수 있는데 긴 시간 동안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지를 일찌감치 고민하고 상담해야 한다”며 “나이가 들면 늦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부터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커리어컨설턴트의 두드러지는 활동을 찾아보기 어렵다. 2020년 의무화된 전직 지원 서비스는 대상이 50세 이상 퇴직자로 한정돼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만큼 일본처럼 전 생애 주기에 걸친 경력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영민 숙명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에 대응하려면 주기적인 건강검진처럼 경력 개발에 관한 국가 차원의 생애 주기별 관리가 시급하다”며 “정부와 기업이 함께 커리어 컨설팅 확산을 위한 재정 지원과 제도 개발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