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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실명을 ‘감사한 의사 명단’이라며 비꼬듯 공개한 사직 전공의가 구속된 것을 두고 의료계 내에서 갑론을박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블랙리스트를 유포한 행위가 의료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웠다며 질타하는 시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 데도 구속한 것은 명백한 전공의 탄압이라며 분노하는 목소리가 높다.
22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전공의 집단행동 등에 참여하지 않은 의사들의 신상 정보를 담은 ‘의료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게시한 사직 전공의 정 모 씨가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자 의사사회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구속 다음날인 21일 서울 성북경찰서에서 정씨를 면회한 뒤 기자들과 만나 정씨를 ‘피해자’라고 지칭하며 두둔하고 나섰다. 임 회장은 “구속된 전공의와 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입은 분들 모두가 정부가 만든 피해자다. 철창 안에 있는 전공의나 리스트에 올라 피해를 당한 전공의나 그 누구라도 돕겠다는 게 협회의 입장”이라며 “정부가 의사들 사이를 다 결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 유치장에 있어야 할 자들은 전공의가 아니라 ‘각하, 의사들 악마화하면 선거 낙승하고 역사에 남을 개혁을 이루신 성군으로 기억되실 것’이라며 대통령 귀에 속삭인 용산의 간신들과 그 명령에 따르는 영혼없는 공무원들이다. 리스트에 올라 심적 고통을 받은 전공의, 리스트 작성한 전공의, 이 사태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 모두가 간신들과 공무원들이 만든 피해자”라고 적었다.
같은날 경기도의사회는 서울 이태원 인근에서 ‘전공의 구속 인권 유린 규탄’을 주제로 집회를 열었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유포한 정 모씨를 구속한 것을 ‘인권 유린’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이 단체는 “투쟁과 의사표현의 자유는 자유민주국가의 기본 요소다. 이런 정도의 소극적 의사 표현조차 말살하는 것은 북한 수준의 인권 유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행위를 두둔하는데 대해서는 의료계 내부에서도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읽힌다. 앞서 강희경 서울대 의과대학·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사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배포하시는 분들은 스스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란다”며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전공의들의 사직이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임을 의심하게 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당신들의 행동이 정부의 폭압과는 다르다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착각이다. 의사 집단을 범죄자 집단으로 여겨지게 할 뿐이며 다른 이들이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닫게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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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사회가 정 모씨의 처분에 공분하는 이유는 구속할 만한 사유가 아닌 데도 처벌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전날 페이스북에 “정 모 씨의 행동은 그 취지가 마녀사냥과 다름없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면서도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데도 구속한 것이라는 문제 제기에 방점을 둔 글을 올렸다. 그는 “병원을 지키고 있거나 복귀한 의사들에 대해 일반인들의 여론은 ‘사명감을 잃지 않은 참된 의사’, ‘의사의 본분을 잃지 않은 진짜 의사’ 등 찬양일색”이라며 “이들의 명단을 공개함으로 인해 일반인들로부터 받을 피해는 사실상 전무하다”고 주장했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모든 의사들이 명찰을 달고 근무하는 만큼, 의사들의 근무 정보 역시 비밀보호가 필요한 개인정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의사 블랙리스트’를 5.18 유공자 명단에 빗대어 “5.18 유공자들과 복귀 의사들은 국가 사회를 위해 헌신을 했으나 그 헌신이 알려지는 것이 마땅치 않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해 논란의 소지를 남겼다.
더 큰 문제는 정 모씨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다소 과격하게 표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사단체들은 성명에서 블랙리스트 유포를 “정부의 초법적 조치에 대한 저항 수단”이라고 표현하며 “앞에서는 대화를 청하면서 뒤로는 검경을 통해 겁박하는 것이 현 정부의 행태”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전라북도의사회는 성명을 통해 “‘의료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노력해 온 의사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행위를 범죄로 몰아가는 공안 통치의 전형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설상가상 의사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정모 씨의 가정사 등을 거론하며 그를 돕자는 글도 올라오고 있다. 의료계 블랙리스트가 공개됐던 아카이브(정보 기록소) 사이트에는 지난 20일 “추가적인 업데이트는 더 이상 하지 않고 이제 리스트를 고정하겠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일각에선 위헌 소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데, 블랙리스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해 실제 대응으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블랙리스트를 환자 곁을 지키고 있는 의료진들에 대한 조롱과 모욕이자 개인의 자유의사를 박탈하는 비겁한 행위라고 보고 엄정 대응을 예고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18일 블랙리스트를 유포하거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근무 중인 의사를 공개적으로 비방한 43건의 게시물 및 댓글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기관은 32명을 검거해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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