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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터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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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위기 장기화, 내수·소비·투자 위축 등 악재 쌓여

헝다그룹 청산 결정 전후로 개인·지방은행들 본격 매수

中 국채 10년물 금리 年 2.0405%로 2%선 무너질 위기

인민은행, 1000억 위안어치 국채 매수에도 시장 시큰둥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후 미 당국의 예금자 보호 조치로 예금 인출이 가능해진 지난해 3월13일 시민들이 돈을 인출하기 위해 SVB 본사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 국채금리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시중 자금이 국채 시장으로 몰려들어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 ‘부동산 버블’(거품)에 이어 ‘국채 버블’이 확산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중국 경기침체가 심화하면서 국채 10년물(만기) 금리가 2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치는 등 중국 장기 국채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고 미국 블룸버그통신 등이 지난 13일 보도했다. 18일 중국의 국채 10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22bp(1bp=0.01%포인트) 떨어진 연 2.0403%로 블룸버그가 관련 데이터를 추적한 2002년 이후 최저치다. 20년물과 50년물 국채금리 역시 지난 수개월간 사상 최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중국 경제는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책임지고 있는’ 부동산 경기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내수·소비·투자심리 위축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디플레이션(deflation·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마저 커지며 올해 ‘5% 안팎’의 경제성장률 목표 달성이 불투명한 상태다.

국채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시점은 부동산 관련 리스크가 정점에 달하고 있을 때다. 올해 1월 말 중국 2대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Evergrande)그룹의 청산 결정을 전후로 정부가 유동성 지원책을 내놨다. 이에 기관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국채를 본격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디플레이션 전망까지 확산하자 급속히 장기 국채로 매수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군다나 지방은행들도 매수 대열에 가세하며 하향곡선을 그리던 국채 금리의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저상(浙商)증권에 따르면 지방은행들의 올해 상반기까지 국채 순매수 규모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61%나 폭증한 1조 5500억 위안(약 291조 3300억원)에 이른다.

중국 국채 금리가 하락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수급 요인 때문이다. 금리와 채권 가격은 역비례 관계다. 금리 하락은 가격 상승을 뜻한다. 국채 금리가 떨어져 채권 가격이 오르는 것은 국채 공급이 감소하거나 수요가 증가하는 경우다. 하지만 중국은 국채 공급을 줄일 수 있는 재정 여건이 못 된다. 정부 씀씀이가 상당한 만큼 적잖은 국채를 발행한다.

경제성장 기여도가 30%가 넘는 중국 부동산 시장의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경기회복이 사실상 기대난인 가운데 국채투자 과열 현상이 빚어지며 중국판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그런데 중국 국채를 서방에서 사들이는 경우는 별로 없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와 세계국채지수(WGBI) 등이 중국을 평가대상국에서 제외한 탓이다. 국제 신용등급이 없는 만큼 해외 주요 자산운용사들은 중국 국채를 매수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수요 적을 수밖에 없다.

이런 판국에 경제성장 부진과 내수·소비·투자 위축, 부동산 및 주식시장 침체의 장기화로 중국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빠지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금융권 내 풍부한 유동성이 국채시장으로 몰려가는 바람에 국채금리를 끌어내리는 것이다.

홍콩 금융서비스업체 KGI 아시아의 케니 원 투자전략 책임자는 “미 대선과 중국 거시경제 요인이 투자심리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CSI300(상하이·선전증시 시가총액 상위 300개 종목으로 구성)지수가 올해 심리적 지지선이 깨질 경우 추가 매도 압력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여기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18일 ‘빅컷’(한번에 0.5%포인트 금리인하)에 나서는 등 글로벌 주요국의 동반 금리인하 흐름 역시 중국 국채금리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더욱이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급감 추세를 보이고 외국인 투자금 이탈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는 가운데 오는 11월5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 대선후보들의 대중국 강경 발언이 계속될 것이란 점도 악재로 꼽힌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 등을 위해 지난 몇 년간 채권 발행을 늘린 상황에서 올해 안에 대규모 국공채 발행이 대기하고 있다는데 있다. 중국 재정부 등에 따르면 7월 기준 중국 정부는 올해 계획한 지방채 및 초장기 특별국채 쿼터 가운데 절반 이상을 아직 발행하지 않은 상태다. 2조 6800억 위안 규모의 채권 발행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7월 기준으로 한해 특별 지방채 쿼터 3조 9000억 위안 가운데 2조 1000억 위안가량이 발행되지 않았고 초장기 특별국채 1조 위안 가운데 5820억 위안가량도 발행이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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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해진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섰다. 국채 발행 확대 계획에도 매수 열기가 사그라들지 않자 시장이 버블 영역에 있다고 진단한 인민은행은 지난달 초 금융기관에 국채 매수를 줄이거나 중단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지난달 말에는 1000억 위안 규모의 국채를 공개시장에서 매입하기도 했다.

인민은행이 ‘공개시장 국채 매매 조작’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중앙은행이 거의 20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시장에서 국채 거래를 해 중국 내 채권 시장 관리와 경제 안정화를 위해 고대했던 통화 수단을 선보였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가 채권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인민은행의 시장 개입에 힘입어 지난달 12일 2.2508%로 일시적으로 높아졌던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후 다시 하락해 18일 2.0403%로 급락하며 2%선도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소규모 지방은행과 개인 투자자들은 정부 당국의 경고에도 여전히 강한 국채 매수 의지를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의 일부 지방은행은 국채 투자 수익이 은행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예컨대 장쑤쿤산(江蘇昆山)농촌상업은행의 국채 투자는 2022년 말 29억 달러(약 3조 8500억원)에서 2023년 말 53억 달러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개인 투자자들의 채권 투자도 크게 늘었다. 중국 금융정보업체 완더(萬得·WIND)에 따르면 중국 채권 펀드 자산은 지난해 초부터 올해 8월 중순까지 39% 증가했다. 현재 채권 펀드는 전체 중국 펀드 자산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채 금리가 상승(채권 가격 하락)세로 돌아설 경우 개인 투자자와 지방은행들이 큰 손실을 입게 되고, 금융시스템 불안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료: 중국 인민은행

SVB는 지난해 3월 당시 과도한 미국 장기 국채 포트폴리오 비중이 기준 금리인상(긴축)의 직격탄을 맞은 뒤 결국 파산했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다.

파산 전 SVB는 들어온 예금을 대출 등 영업에 쓰기보다 미 국채를 사들이는 데 집중했다. 10년 만기 이상의 장기 국채가 주된 매입 대상이다. 하지만 미 연준이 2022년부터 급격히 긴축으로 선회하면서 유동성이 말라버린 기업 고객들은 SVB에 돈을 덜 맡기기 시작했고, 오히려 예금을 급히 빼내는 일이 빈번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SVB 투자 자산 중 장기 채권의 가치가 크게 감소한 것으로 드러나자 지난해 상반기 뱅크런(대규모 현금 인출) 사태가 발생해 끝내 파산했다.

SVB 사태가 국채 등 채권에 과도했던 투자가 금리 급등으로 투자손실로 이어지면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현재 중국내 채권투자 과열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상황이 악화하면 4000개가량의 중소은행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왕쥐(王菊) BNP파리바 금리 전략 책임자는 “소규모 대출 기관일수록 만기가 긴 국채에 투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한번 트리거가 발생해 수익률이 상승하기 시작하면 손실이 급격히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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