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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부족 시대,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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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모 있는 물’이 부족해지고 있다. 환경오염, 기후변화, 인구 증가 등 여러 요인 때문이다. 이에 글로벌 연구기관과 기업들에서는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쓸모 있는 물’이 부족해지고 있다. 환경오염, 기후변화, 인구 증가 등 여러 요인 때문이다. 이에 글로벌 연구기관과 기업들에서는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물 쓰듯 쓴다’는 말이 있다. 물건이나 돈, 자원 등을 흥청망청 낭비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물은 우리 주위에서 매우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자원이다. 실제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의 양은 약 14억㎦, 무려 14해(垓)리터(L)에 이른다. 이를 무게로 환산하면 140경(京)톤(t) 수준이다. 물을 ‘물 쓰듯’ 써도 마를 일이 없을 듯하다.

하지만 ‘쓸모 있는 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식수부터 농업, 공업용수에 이르기까지 정화된 깨끗한 물은 점점 더 부족해지고 있다. 환경오염, 기후변화, 인구 증가 등 여러 요인 때문이다. 이에 글로벌 연구기관과 기업들에서는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 환경오염에 기후변화까지… ‘바싹’ 마르는 세계

물 부족 현상은 최근 급격히 심화되고 있다. ‘유네스코(UNESCO)’가 발간한 ‘2024년 유엔(UN) 세계물개발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인구 약 절반은 심각한 물 부족을 겪고 있다. 그중 25%는 ‘매우 높은’ 수준의 물 부족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새로운 물 자원을 공급받지 못해 연간 담수 공급량의 80% 이상을 재사용 중이다.

물 부족 사태가 가장 심각한 곳은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지역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인구의 84.1%가 심각한 수준의 ‘물 스트레스’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5년 이후 13% 증가한 수치다.

세계적인 물 부족 사태엔 여러 원인이 존재한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환경오염이다. 저소득 국가의 경우 오폐수 처리 기술의 낮은 수준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반면 고소득 국가는 농경지에서 발생한 지표수 오염부하가 가장 심각하다. 쉽게 말해 가난한 나라는 기술이 없어서, 부유한 국가는 너무 많은 식량 생산 때문에 수질 환경이 오염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 역시 물 부족 사태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지구 물 순환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사진은 가뭄으로 수위가 크게 줄어든 스페인의 한 저수지 모습./ Pixabay
기후변화 역시 물 부족 사태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지구 물 순환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사진은 가뭄으로 수위가 크게 줄어든 스페인의 한 저수지 모습./ Pixabay

기후변화 역시 물 부족 사태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꼽힌다. 지구 물 순환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 대기에 수분이 증가한다. 이는 태풍과 폭우를 증가시킨다. 이때 해양 수증기가 증가한 것은 역설적으로 육지에서 더 많은 물이 증발됐다는 의미다. 따라서 육지에선 심각한 가뭄이 발생하게 된다.

유네스코는 “기후변화는 전 세계의 물 순환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더 나아가 가뭄과 홍수의 빈도와 강도를 더욱 증폭시킬 것”이라며 “이러한 영향은 북극이나 군소도서국에서만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최빈 개도국에서도 체감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산림청(USFS) 연구진이 2019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심화될수록 물 부족 현상은 심각해질 전망이다. 연구팀은 미국 내 204개 유역에서 21세기 남은 기간 동안 물 부족이 발생할 가능성을 추정했다. 추정 요소는 인구 증가, 기후 변화에 따른 물 수요 및 재생 가능한 물 공급에 대한 월별 예측을 기반으로 했다.

데이터 분석 결과, 기후변화가 가속화될 경우 미국 대륙 내 하천의 잠재적 물 증발율은 증가했다. 또 이로 인해 일부 지역의 강수량 감소가 발생, 농업 및 조경 관개 수요가 증가했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전기 수요가 증가했고, 발전용 공업 용수 사용도 크게 늘었다.

USFS 연구진은 “기후변화와 인구증가는 미국 일부 지역, 특히 중부와 남부 대평원, 남서부와 중부 로키 산맥 주, 캘리포니아, 남부, 중서부 일부 지역 수자원 확보에 심각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며 “지난 30년 동안의 추세를 고려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저수지 물 저장 능력 저하로 가장 취약한 유역의 수자원 공급 확대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 부족 사태는 산업계도 영향을 직격으로 받고 있다. 특히 ‘4차 산업’은 말 그대로 ‘물 먹는 하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반도체 생산을 위해 하루 평균 사용되는 물의 양은 평균 34만4,000톤이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물 부족 사태는 산업계도 영향을 직격으로 받고 있다. 특히 ‘4차 산업’은 말 그대로 ‘물 먹는 하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반도체 생산을 위해 하루 평균 사용되는 물의 양은 평균 34만4,000톤이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 물 없이는 ‘4차 산업’도 없다

마실 물만 부족한 것이 아니다. 산업계도 영향을 직격으로 받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 S&P 글로벌’은 57만개 글로벌 기업이 물 부족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물 부족은 여러 기업들의 생산 차질과 인프라 구축 비용 증가 등이 포함된 ‘물리적 위험’으로 다가올 것이라 예측했다.

특히 ‘4차 산업’은 말 그대로 ‘물 먹는 하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반도체 생산을 위해 하루 평균 사용되는 물의 양은 평균 34만4,000톤이다. 인공지능(AI)도 데이터센터 냉각에 막대한 물이 사용된다. 챗GPT의 경우 질문과 답변을 25~50개 주고받을 때마다 500ml 물 한 병이 사라진다.

S&P 글로벌은 “물 부족은 기술 하드웨어 산업, 특히 물을 많이 사용하는 반도체 산업을 향후 10년 동안 위협할 수 있다”며 “이런 물 부족 사태의 위험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다면 반도체 제조업체의 운영과 신용도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IT산업도 물 부족 사태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 5일 ‘경기연구원(GRI)’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대 초반 용인시 산업단지에 공급 가능한 수자원량은 약 77만톤이다. 하지만 2036년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메가클러스터가 조성될 경우 필요한 공업용수는 하루 170만㎥, 약 170만톤 규모다. 필요한 수자원의 50%도 못 미친다.

이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수자원 확보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현재 하수처리수 재이용 기술을 이용, 초순수(Ultrapure water)를 정제해 반도체 공정에 재활용 중이다. 남은 물은 옥상 습식 세정 시설, 냉각탑 등에 재사용한다. 또한 멤브레인 기술(여과 기술의 일종)을 활용해 물 재사용량 능력도 높였다. 이 같은 조치로 삼성전자는 지난 2020년 기준 약 7,000만톤의 물을 절약했다.

수자원 확보가 곧 미래 기술 경쟁력으로 떠오르면서 관련 산업 분야도 가파른 성장 중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수자원 관리 시스템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156억달러(약 20조7,464억원)로 추정된다. 오는 2033년에는 이보다 3.4배 증가한 529억달러(약 70조3,517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스태티스타는 “수자원 관리 시스템 산업은 물 부족, 오염 및 지속 가능성과 관련된 증가하는 글로벌 과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인구 증가와 기후변화, 산업화, 도시화가 가속되면서 효율적인 수자원 관리 솔루션 수요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서는 이른바 ‘워터테크(Water tech)’라 불리는 수자원 관련 산업 투자도 활성화되고 있다. KB리서치가 6일 발표한 리포트에 따르면 글로벌 수자원 펀드인 ‘인베스코 워터 리소스(Invesco Water Resources)’와 ‘퍼스트 트러스트 워터(First Trust Water)’에는 8월 기준 각각 1,140만달러(약 152억원), 1,573만달러(약 209억원)이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 부족 사태는 ‘빈부격차’도 존재한다. ‘유엔통계위원회(UN STATS)’에 따르면 사용 가능한 용수를 가진 7만6,000여개 수역 중 1%만이 빈곤국가에 포함됐다./ Pixabay
물 부족 사태는 ‘빈부격차’도 존재한다. ‘유엔통계위원회(UN STATS)’에 따르면 사용 가능한 용수를 가진 7만6,000여개 수역 중 1%만이 빈곤국가에 포함됐다./ Pixabay

◇ 물에도 빈부격차가 있다

문제는 물 부족 사태에도 ‘빈부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유엔통계위원회(UN STATS)’는 2020년 97개국의 강, 호수, 지하수 지역 수자원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전체 60%, 7만6,000여개 수역의 물이 사용가능한 용수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중 빈곤국가 수역은 단 1%에 불과했다.

이 같은 결과는 수자원 모니터링 역량 부족에 의한 것이다. 대다수 국가들은 첨단기술 기반 수자원 관리 시스템으로 물을 관리한다. 이는 실시간으로 수질, 물의 양 등을 측정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이 뒷받침된다. 하지만 이런 모니터링 기술은 막대한 비용이 들고 데이터, 컴퓨팅 등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아프리카 지역 등 최빈도개국에서는 도입하기 어려운 기술들이다.

UN STATS는 “최소 30억명의 사람들이 수자원 모니터링 부족으로 인해 수질을 알 수 없고 지하수 데이터도 부족하다”며 “수질 오염 물질인 과불화화합물(PFAS), 의약품, 호르몬, 산업 화학 물질, 세제, 시아노톡신(cyanotoxins) 및  오폐수처리공정 및 축산업, 양식업에서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배출돼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수자원 빈부격차를 느낄 수 있다. 규모가 작은 사업장을 가진 기업은 물 부족 사태를 대응할 여력이 부족해서다. 대만의 파운드리 반도체 기업 ‘TSMC’는 2021년 가뭄 당시 공장가동을 위해 대규모 물탱크 트럭을 운영했다. 이때 사용된 비용은 2,860만달러(약 380억원). TSMC 전체 운영 비용의 2% 수준이다. 일반적인 중소·중견기업의 한해 매출과 맞먹는 수준이다.

유네스코는 “기업들, 특히 소규모 기업은 도시 상수도 공급이 중단되면 매출과 고용 감소를 경험할 수 있다”며 “물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쇼크(dry shock)는 소득 손실 측면에서 물이 과잉해서 발생하는 쇼크(Wet shock)보다 2~4배 더 많은 비용이 든다”고 지적했다.

시사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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