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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딜레마]④ 한은 수석이코노미스트 “시장 ‘인하 기대’ 과도… 저금리로 돌아가긴 어렵다”

조선비즈 조회수  

“시장이 과도하게 인하 쪽으로 희망사항을 담아서 보고 있는데 한국은행은 보다 신중하게 상황을 보고 있다.”

이재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은 지난 11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진행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이같이 말했다. 국고채와 회사채 금리 등 시장금리가 기준금리(연 3.5%)를 큰 폭으로 밑돌면서 금리 인하 기대감이 한껏 커진 상황을 경계한 발언이다.

그는 금리 인하가 시작돼도 기준금리가 2021년 8월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전에 금리가 지나치게 낮았던 것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고 평가한 뒤 미국과 한국이 다 금리 인하 사이클에 들어간다 해도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전 저금리로 돌아가는 건 어렵다고 봤다.

지난 11일 이재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 겸 수석이코노미스트가 한국은행의 금리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전기병 기자
지난 11일 이재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 겸 수석이코노미스트가 한국은행의 금리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전기병 기자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된 후인 2020년 3월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종전 1.25%에서 0.75%로 급격히 낮췄다. 그 후로도 금리 인하를 수차례 단행하면서 2021년 5월 0.50%까지 끌어내렸다. 이 원장의 발언은 코로나19 이후 저금리 기조가 이례적이었던 만큼 기준금리가 0%대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이 원장은 현재로서는 금리 인하로 금융불균형이 유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리 인하를 늦추면 내수회복이 지연되면서 성장 동력이 약화될 수 있을테고, 반면에 금리를 인하하면 부동산 가격 상승이나 가계부채 증가에 따라 금융불안정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8월 금융통화위원회의 결정은 후자를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 금통위는 물가 상승을 잡기위해 지난 2021년 8월부터 작년 1월까지 기준금리를 연 0.5%에서 3.50%로 인상했다. 이후 작년 2월부터 올해 8월까지 기준금리를 연 3.5%로 묶어뒀다. 한은이 1년 6개월 넘게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거시건전성 정책이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금융안정 목적을 위해 기준금리를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다른 교수들이나 통화정책 전문가들은 합당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이 원장은 다가온 금리인하 국면에서는 ▲물가·금융안정·성장 간 상충관계 ▲통화정책의 유효성 ▲입시제도와 저출산 등 구조적 요인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 정책과의 공조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언급한 뒤 “저출산·고령화와 공급망 재편 등 이슈에 관한 연구를 통해 중기 시계에서 효과적인 통화정책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이재원 원장은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객원 연구위원 등을 거치며 20년 넘게 통화정책을 연구했다.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과 수학을 전공했고,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7년부터 4년간 미국 버지니아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이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를 지내다 작년 9월 한국은행에 합류했다.

다음은 이 원장과의 일문일답.


─경제연구원장 취임 1년의 소회를 듣고 싶다.

“처음에 와서는 이 생활을 앞으로 몇 년 동안 어떻게 하나 걱정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생활 방식이 적응됐고 한국은행이 하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1년밖에 안 됐는데 한국은행 ‘맨(man)’이 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주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

─한은은 작년 2월부터 1년 6개월째 금리를 연 3.5%로 동결하고 있다. 고금리 기조가 너무 길어진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오는데.

“일반적으로 말하면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이나 금융안정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분석해서 적절한 금리 수준을 평가하고 이에 따라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기간은 1년 6개월이나 2년 등으로 단순하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한국은 2021년 8월에 금리 인상을 시작했다. 주요국 중앙은행보다는 조기에 금리 정상화(인상)를 시작한 셈이다. 그래서 고금리 기간이 다른 국가에 비해 길게 느껴질 수 있는데, 미리 올린 덕분에 소폭으로 올렸음에도 유럽 중앙은행(ECB) 등 금리를 급히 올린 국가에 비해 인플레이션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지난 8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금융안정 상황을 볼 때 금리를 높여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그 정도로 금융 상황이 불안하다고 보나.

“공짜 점심은 없다고 하지 않나. 금리 인하를 늦추면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성장 동력이 약화될 수 있을 테고, 반면에 금리를 인하하면 부동산 가격 상승이나 가계부채 증가에 따라 금융 불안정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종합 고려해서 8월엔 금융안정 측면 위험 요인과 경기 흐름을 점검한 후에 정책 대응 방향 결정하는 게 적절하다고 (금통위원들이)판단한 게 아닌가 싶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기준금리를 활용하는 것을 두고 ‘소 잡을 칼로 닭 잡는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통화정책을 20년 가까이 연구했던 학자로서 말하자면, 국내외 저명 학자들과 통화정책 전문가들은 대체로 거시건전성 정책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면 기준금리는 물가 안정이나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게 바람직하다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거시건전성 정책이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거나 금융안정 위험이 큰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금융안정 목적을 위해 기준금리를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은이 금리를 동결한 게 거시건전성를 효과를 면밀히 분석하고 그에 따라 통화정책을 결정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다른 교수들이나 통화정책 전문가들도 합당하다고 평가할 것이다.”

지난 11일 이재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 겸 수석이코노미스트가 한국은행의 금리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전기병 기자
지난 11일 이재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 겸 수석이코노미스트가 한국은행의 금리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전기병 기자

─가계부채 증가 등 금융불안정이 10월에는 해소될 것으로 보나.

“8월에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확 올라갔다. 앞으로 속도가 줄어들 것 같긴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거시건전성 정책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지금 말하기가 어렵다. 지금 9월이니까 10~11월까지 관련 수치가 나오는 것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주택 가격에 대한 추세를 파악하는 게 중요해진 상황이겠다.

“집값 그 자체보다는 가계부채를 보고 있다. 집값은 사실 금융불안정하고는 크게 상관이 없고, 집값으로 인해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지금은 시장이 과도하게 인하 쪽으로 희망사항을 담아서 보고 있는데 한은은 보다 신중하게 상황을 보고 있다. 물론 (인하 가능성을)닫아두겠다는 의미는 아니고, 상황이 괜찮아지면 다양한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하겠다는 거다.”

─내수에 대한 한은과 기재부, KDI의 평가도 엇갈린다. 현재 내수 상황과 향후 전망은.

“우선 한은과 KDI의 경제 전망을 보면 큰 차이는 없다.(한국은행은 올해 민간소비 성장률 전망치를 1.4%로, KDI는 1.5%로 전망했다.) 금리인하 시점에 대해 이견이 있는 이유는 정책 우선순위가 달라서다. KDI에서는 성장을 중시하지만, 통화정책 당국 입장에선 물가와 성장뿐 아니라 금융안정 등 여러 정책목표를 종합 고려해서 결정을 내린다. KDI는 통화정책 당국의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충분히 할 수 있다.

한은의 분석을 기반으로 말하자면 수출은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지만 그에 비해 내수 회복은 상대적으로 더디다. 수출과 내수 간 불균형이 있는 것이다. 소비 회복이 느린 이유를 보면 통화 긴축으로 인한 고금리 요인이 분명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저출산·고령화와 가계부채 등 구조적 요인과 경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기업실적이 개선되고 임금 상승률은 증가가 예상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은 둔화하고 있다. 종합해서 보면 가계의 구매력이 개선돼서 내수가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총생산(GDP)은 올해 2.4%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 정도면 침체는 아니다. (내수 상황을)너무 심각하거나 과도하게 보지 않아도 된다.

─대통령실과 KDI 등 외부의 금리인하 압력이 거세져 한은의 중립성이 훼손될 우려는 없나.

“각 기관의 관점이나 정책 우선순위가 달라 다른 주장을 말할 수 있다고 본다. 사견이지만 한국 같은 선진국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우려할 단계는 한참 지날 만큼 성숙했다고 본다. 실제로 한은의 정책 결정을 보더라도 그런 우려가 기우라는 것을 꾸준히 증명해왔다.

─8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로 내려왔다. 물가가 안정 경로로 접어들었다고 보나. 향후 물가를 다시 치솟게 할 수 있는 요인이 있다면.

“현재로선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 초반 안팎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소규모 개방경제 특성상 외부로부터의 비용상승 충격 가능성은 존재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중동갈등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중기적 관점에서 물가는 안정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다음 주 17~18일(현지 시각) 열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FOMC에서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연준의 금리 인하가 한은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주진 않을까

“연준이 금리인하를 시작하면 외환시장 위험이 완화돼 국내 통화정책도 대내 여건에 좀 더 집중해서 운영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 다만 두 나라 다 금리 인하 사이클에 들어간다 해도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전 저금리로 돌아가는 건 어렵다. 그보다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것으로 본다.”

─향후 금리 인하 과정에 한은이 신경 써야 하는 것을 3가지 꼽자면.

“지난 2~3년간은 인플레이션과 싸움이 주요 화두였다. 하지만 지금은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 성장 등 정책변수 간 상충이 일어나는 시점이다. 상충관계를 좀 더 면밀하게 점검하면서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 정책과의 공조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 번째는 경제주체들의 기대가 한은의 정책 의도에 부합하도록 더 유의함으로써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좀 더 높여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 8월부터 공개한 분기별 경제전망이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단기적 시계에만 집중해 구조 연구를 간과하면 안된다. 저출생·고령화와 공급망 재편 등 이슈에 대한 연구를 통해 중기 시계에서 효과적인 통화정책도 생각해야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한은 공동 심포지엄'에서 김준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의 개회사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한은 공동 심포지엄’에서 김준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의 개회사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한은 경제연구원에서는 저출산·고령화 등 구조개혁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금리를 결정하는 한은에서 왜 이런 과제들에 관심을 갖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다.

“통화정책이랑 경제구조는 독립적이지 않다. 구조적 문제들이 통화정책을 제약할 수 있어 구조개선에 대한 꾸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연준이나 세계 중앙은행들은 우리보다 더 활발히 연구한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을 고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 한은에는 경제연구원뿐 아니라 조사국, 국제국, 금융안정국, 금융시장국, 금융결제국 등 다양한 부서에 정말 뛰어난 연구자들이 많다. 높은 품질의 보고서가 끊임없이 생산되는데 이런 보고서를 외부에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것이 어떤 의미에선 자원낭비라고 생각한다.”

─최근 입시제도 관련해서 지역별 비례 선발제를 확대하는 것을 제안했다.

“특정 지역에서 양질의 대학교육기회를 과도하게 독점하는 현상 완화하자는 취지다. 서울 강남3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에서 고교 학령인구 대비 3배나 되는 학생이 특정 상위권대에 진학하고, 그래서 많은 학부모가 특정 지역에 거주하길 원한다. 이런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화하는 방안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반론도 있을 텐데.

반론을 종합하면 크게 세가지다. 첫번째로 학령인구를 반영하다보니까 대학의 자율성이 침해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제도는 대학이 자발적으로 도입여부 선택한다. 또 지역별 선발인원을 학령인구 비율에 꼭 맞춰서 반영하는게 아니라 상·하한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운용돼 자율성이 보장된다.

두 번째로 능력주의와 효율성만 강조하는 사람들의 비판도 있다. 그런데 그 측면에서도 지역별 비례 선발제가 낫다. 예컨대 100m 달리기 국가대표 선수를 뽑는다고 치자. 서울 학생이 좋은 운동화를 신고 잘 다듬어진 운동장에서 뛰어서 10.3초가 걸렸고, 지방 학생이 안좋은 운동화를 신고 진흙바닥에 뛰어서 10.4초를 받았다. 10.4초 받은 친구를 데려와서 잘 키우는게 효율성·수월성 측면에서 더 낫지 않나.

수도권 인구집중 완화에 도움이 안 된다는 비판도 있다. 대학교 졸업 후 취직을 위해 수도권에만 남아있으려고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 그런데 지방에 좋은 일자리를 만든다고 해도 교육 기회 측면에서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기러기 아빠나 엄마만 늘어난다. 지역별 비례 선발제로 학부모들의 지방 기피현상과 이로 인한 지방일자리 소멸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

-연금개혁 등 아직 발표되지 않은 구조개혁 관련 연구과제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를 한정적으로 말하면 연구원에서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이슈를 다루는 팀을 만들어서 연구 진행하고 있다. 연말에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제연구원뿐 아니라 다른 부서에서도 중요한 구조 관련 이슈가 진행되고 있다. 그밖에 리츠(RFITs·부동산투자신탁) 관련 연구 등 중요한 연구들도 진행되고 있다.”(이창용 한은 총재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낮추기 위해 리츠 투자를 활용해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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