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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어 양식장서 ‘포르말린’ 뿌린 97kg 칸, 10년 만에 백혈병 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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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83센티미터(cm) 몸무게 97킬로그램(kg)의 건장한 체격, 축구와 럭비로 다져진 몸이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E-9) 비자로 한국에 온 지 10여 년 만에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파키스탄에서 온 이주노동자 칸 모바실 씨(42) 이야기다.

“광어나 장어 양식장에서 포르말린 많이 뿌렸어요. 어린 물고기 때문에 뿌렸어요. 물고기 많이 아파하면 몸에서 박테리아, 이런 거 나와요. 그것 때문에 (포르말린을) 뿌려야 해요. (물고기가) 밥 많이 안 먹어요. (물고기가) 몸이 아파요. 그냥 몸 사리고 밥 많이 잘 안 먹어요.”

물고기에 뿌린 포르말린(CH2O, 포름알데히드 수용액)이었지만, 포르말린은 칸 씨의 몸에 영향을 끼쳤다. 콧물과 기침이 났고, 눈이 따가웠으며, 호흡 곤란이 발생했다. 몸 여기저기에 종기도 났다. 제주에서 처음 찾은 병원에서는 ‘(상세불명의) 호흡 곤란’, (지역사회성) 폐렴’, ‘외인성 천식’이라고 진단했다. 외인성 천식은 알레르기 체질을 가진 사람이 원인 물질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발병한다.

포르말린을 사용하지 않는 양식장으로 옮긴 이후에는 증세가 나아졌다. 부산과 완도 등에서 미역·다시마, 전복 양식 일을 했다. E-9 비자가 만료(4년 10개월)돼 고국을 다녀온 뒤 다시 취업했다. 이번에는 뱀장어 양식장이었다. 여기도 포르말린을 사용하는 곳이었다.

“(물고기에게) 포르말린 뿌리는 일, 나 혼자 했어요. 포르말린으로 수조도 청소했어요. 이것도 나 혼자 했어요. 외국 사람에게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한국 사람 두 명 있었어요. 그런데 나 혼자 했어요.”

포르말린을 다시 사용하게 되면서 다시 콧물과 기침이 났다. 온몸에서 열이 났고 전신 통증에 시달렸다. 몸무게는 10kg 이상 줄었으며 소변도 잘 나오지 않았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종기가 다시 생기더니, 종아리에 반점 형태의 ‘점상 출혈’이 나타났다.

무급 병가를 내고 친구가 있는 광주까지 나와 병원을 찾아다녔다. 2cm였던 점상출혈은 닷새 만에 14cm로 커졌다. 가슴, 팔, 허벅지 등에 잇따라 나타나더니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피부과에서 ‘감염성 피부염’이라며 연고와 약을 처방해 줬지만 약을 먹은 뒤 입안에서 염증이 나고 열이 올랐다.

칸 씨는 결국 지난 2021년 1월 화순전남대학교병원에서 골수 채취까지 한 끝에 ‘만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확진 당시 칸 씨의 나이는 만 38세였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은 전체 성인 백혈병의 약 25%를 차지하며 연간 10만 명 중 1~2명 정도에서 발생하는 질병이다.

칸 씨는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지 1년 9개월 만인 지난해 4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았다. 이주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산업재해 승인을 받은 경우는 처음이다. 공단으로부터 인정받은 산재 요양 기간은 오는 12월 30일까지다. 칸 씨는 현재 E-9 비자가 아닌 G-1 기타 비자로 국내에 체류 중이다. 그를 지난달 28일 그가 머무르고 있는 광주 광역시에서 만났다.

▲ 파키스탄에서 온 칸 모바실 씨. ⓒ프레시안(이명선)

“맨손으로 포르말린 뿌렸어요”

어업 노동자의 하루는 해 뜨기 전 시작된다. 칸 씨는 새벽 3~4시면 일어나 양식장으로 향했다. 오전과 오후 하루에 두 번 물고기 사료 주기, 물고기 한 마리씩 잡고 질병 방지용 백신 주사 맞추기, 사료 만들기, 저수조 청소하기가 반복됐다. 점심이나 휴식시간은 한 차례의 일이 끝난 다음 잠깐 주어졌다.

정해진 퇴근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소장이나 반장 등 현장 감독이 ‘가자’라고 해야 그날 일이 끝났다. 칸 씨와 같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근로 책임이 있는 사장은 현장에서 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성어가 된 물고기를 출하할 때면, 20~25kg에 해당하는 바구니를 쉴 새 없이 날랐다. 전복 양식 작업 땐 쉘터(Shelter)라고 부르는 새끼 전복 양식 도구와 바닷물 무게까지 80~90kg을 감당해야 했다.

“사람,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해요. 일하는 사람이. ‘허리 아파요. 힘들어요’, ‘목이 아파요. 허리 아파요’ (하고). 우리 바다 쪽으로 일하면 너무 힘들어요. 그냥(다들) 어디 아파요. 다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요. 일하는 사람 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허리 아파요. 어디 아파요.’ (아파도) 그냥 파스 발라요.”

광주·전남 이주노동자 인권 네트워크가 지난 2021년 12월 발표한 ‘전남의 사례로 본 농·어업 이주노동자 현황 및 농업 노동 환경 개선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농·축산·어업 이주노동자(E-9-3, 4 비자)의 하루 근무 시간은 9시간~10시간이 46.4%로 가장 많았다. 13시간 이상인 근무하는 경우는 20.3%였다. 반면 제조업 이주노동자가 13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는 4.3%에 불과해, 두 업종 간 5배 차이가 났다. 전체 이주노동자 하루 평균 휴식시간(휴게시간)은 1.58시간(1시간 35분)이었지만, 농·축산·어업 쪽은 1.16시간으로 1시간 남짓에 불과했다.

E-9 비자 이주노동자의 경우, 내국인과 같은 근로기준법 상 최저임금과 근로시간을 적용받는다. 근로기준법 제63조에 의하면,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당사자 간 합의를 통해 1주 12시간 연장 근로 가능). 휴게시간은 4시간 근무는 30분 이상, 8시간 근무는 1시간 이상을 보장해야 한다.

다만, E-9 비자여도 농·어업 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 63조에 따라 주 52시간 상한제, 연장수당 등 노동시간, 휴일, 휴게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노동계는 농·어업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가능케 하는 해당 조항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뤄지지 않고 있다.

▲ ‘광주·전남 이주노동자 인권 네트워크’가 2021년 12월 발표한 ‘전남의 사례로 본 농어업이주노동자 현황 및 농업 노동 환경 개선 방향’ 보고서 중 이소아 변호사(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의 ‘전남 사례로 본 농어업이주노동자 노동 현황’ 자료. ⓒ이소아 변호사

어업은 한국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대표적인 기피 업종이다. 칸 씨는 10년간 일을 하면서 같이 일한 한국인 노동자는 없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왔다 갔다 해요. 너무 많이. 5일, 8일, 10일, 한 달(도 안 돼 그만두는 사람 많아요). (그마저도) 다 외국 사람이에요.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이런 다 외국 사람. 한국 사람은 반장님, 소장님만 있어요. (양식장에서) 한국 사람, 그냥 계속 일하는 (한국) 사람 못 봤어요.”

전남 어업 종사자 100명 중 7명은 이주노동자다. 전라남도청 홈페이지 ‘해양수산통계’를 보면, 전남의 어가 인구는 1만5723가구·3만4620명이다. 공공데이터포털에 공시된 ‘고용노동부_지역별 업종별 외국인근로자 현황’에 따르면, 2024년 2/4분기 기준 E-9 이주노동자 중 어업 종사자는 1만2190명이며, 전남이 4655명으로 가장 많다. 이를 바탕으로 전남 어업 종사자 중 이주노동자를 추산해 보면, 7.4%가 이주노동자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이주노동자 비율은 훨씬 높은 것으로 보인다.

가혹한 노동 환경은 산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칸 씨는 백혈병에 걸리기 전 또는 한국 입국 전후 교육 과정에서 근로복지공단의 역할, 산재 대처 방안 등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입국 전 고국에서 받은 ‘한국말(한국어)’ 교육만 기억했다.

“(한국 오기 전에) 한국말 교육받았어요, 한 달 정도. (교육 받고) 시험 봤어요. 난 B-grade(B 등급)로 왔어요. 한국말 잘하는 사람 A-grade(A 등급)으로 왔어요. 나 조금 한국말 많이 잘 못해서 B-grade로 왔어요. A-grade, 공장이나 건축으로 갔어요. B-grade는 농장, 수협(어업) 쪽으로 왔어요. 저 때문에(제 한국말 실력 때문에) 수협 쪽으로, B-grade로 왔어요.”

칸 씨는 입국 후 첫 일터였던 제주 광어 양식장에서도 별도의 안전교육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포르말린 살포에 대한 안전교육을 받거나 방독 마스크와 특수 장갑 등을 착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물고기에게 포르말린 뿌릴 때) 옷도 그냥 이렇게, 그냥 이렇게 (입고 일했다). 가슴장화(방수 부츠 또는 발에서 허벅지, 가슴까지 확장된 바지) 신어도 날씨 더우면 이 시간(오후 2~3시께) 그냥 반바지 (입은 채로) 슬리퍼 해서(신은 채로 했다). 장갑 안 돼요. 그냥 이렇게 (맨)손으로 (했어요).”

물고기 기생충 구제제(구충제)로 알려진 ‘포르말린(CH2O)’은 포름알데히드 수용액으로, 포름알데히드는 산안법 제402조·439조·440조에 따른 관리대상 유해 물질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제37조와 고용노동부 고시 ‘외국어로 작성하는 안전보건표지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이주노동자가 포르말린을 주로 다룰 경우 작업장과 용기에 각각 해당 노동자의 출신 국가 언어로 안전보건표지를 부착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농·어업 이주노동자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일 때문에 질병에 걸리면 산업재해보상보험이나 선원재해보상보험으로 치료와 보상이 가능하다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은 29.2%에 불과했다. ‘알고는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는 응답은 24.0%, ‘모른다’는 응답은 46.8%였다. 농·축산·어업 종사자의 경우 산재 보험 등에 대해 ‘모른다’는 응답이 63.5%나 됐다.

고용허가제 관련 법령 개정으로, 지난해 2월 3일부터 5인 미만 농어업 개인사업장의 산재 보험 가입이 의무화됐다. 5인 미만 농어업 개인사업장도 산재 보험, 혹은 어선원 등의 재해보상보험, 농어업인안전보험 등에 가입해야 이주노동자 고용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농어업인안전보험은 각각 농협과 수협에서 운영하는 민간보험으로, 보험료의 50% 이상을 정부에서 지원한다.

“일하다 다치면 공단에서 돈 주는 거 몰랐어요. ‘산재 (인정)됐어요'(라는 말 들었을 때도) 그냥 나 생각했어요. 그냥 (한국) 체류만 생각했어요.”

칸 씨는 돈을 벌기 위해,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며 하는 마음으로 한국에 왔다. 대학 재학 중 신문에 난 한국 정부의 구인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는 고용노동부와 MOU를 맺은 고용허가제 송출국가 16개국 중 한 곳인 캄보디아 출신이다.

“‘(한국에) 일할 사람 없다’는 광고, 신문에서 봤어요. 우리나라 그냥 돈 많이 없어요. 일 많이 없어요. 외국 가면 돈도 많이 있어요. 돈 많아요. 그냥 돈 때문에 돈 때문에 (한국 왔어요).”

칸 씨는 2~3년을 기다려 한국 정부가 발행한 외국인 등록증을 받아 한국에 입국했다. 더 나은 삶으려는 부푼 꿈을 안고 한국에 처음 왔을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한국살이 10여 년 만에 백혈병에 걸릴 줄은. (☞다음에 계속)

▲ 칸 모바실 씨의 산업재해 인정서.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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