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기 어려운,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비상구’가 필요하다.”
정의당의 ‘비상구’가 다시 열렸다. ‘비상구’는 ‘비정규직 상담창구’의 준말로, 지난 2016년 12월 정의당 당내기구로 출범해 SPC 그룹의 파리바게뜨 불법파견을 수면 위로 끌어내기도 했다. 새로 열린 ‘비상구’는 오는 10월 16일부터 격주 수요일, 정의당사가 있는 구로디지털단지 인근에서 노동자들에게 무료 법률상담을 진행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제는 원외정당이 된 정의당이 현장 노동자들의 곁에 다시 서겠다는 다짐이다.
정의당 권영국 대표는 지난 12일 「프레시안」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더욱 현장으로, 민중 곁으로, 더 아래로 내려가서 길을 찾겠다”고 ‘비상구’의 재출범 배경을 밝혔다. 그는 “지금 청년 노동자들, 비정규직과 같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일을 하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며 “개인의 권리 구제도 해야 하지만 사회구조적인 이슈를 제기하면서 제도와 사회를 바꿔나가는 것을 염두하고 발족했다”고 밝혔다.
권 대표는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이유를 “결국은 정말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정의당이 자기 목소리를 끝까지 냈느냐의 문제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치적 구도나 외부적 요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내부적으로 볼 때는 신뢰를 줄 수 있을 만큼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이 필요할 때 정의당이 그 곁에 있었나”라고 되물으며 “현장에서 믿을 수 있게 정의당이 끝가지 함께했느냐에 대해서 신뢰를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원외정당이 된 이후 정의당의 행보는 현장 노동자들에게 집중됐다. 세종보 재가동에 반대하는 천막 농성장, 폭우로 농사를 망친 농민들, 폭염으로 사망한 제주 쿠팡 노동현장, 옵티컬 하이테크의 해고노동자들, 중국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한 뒤 정리해고 된 락앤락 노동자들, 서울시의 방침으로 폐업한 서울사회서비스원, 정리해고 된 지 어느새 1000일이 지난 세종호텔 노동자들까지. 그는 “우리 현실에서 어떤 어려움과 문제가 있는지 들으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립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원외에서 22대 국회를 바라보는 소회를 묻자 권 대표는 “22대 국회를 보면 비어있는 곳이 확 눈에 들어온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노조가 조직되지 않은 일터의 약자들에 대해 자기 문제로 이야기 하는 정치인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희망을 잃지 마시고 우리 사회를 바로 세우는데 저희들도 노력하고 힘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아래는 권 대표와 나눈 일문 일답.
프레시안 : 정의당이 원외 정당이 된 지 110일이 좀 넘었다. 정의당은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나.
권영국 : 두 가지에 집중을 했다. 원외로 나왔을 당시 제가 당 대표 취임하며 약속드렸던 건 더욱 현장으로, 민중 곁으로, 더 아래로 내려가서 길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6월 한 달은 투쟁 현장, 여러 어려움 겪는 노동자들 그리고 지역 문제를 앓고 있는 곳을 찾았다.
세종보 재가동에 반대하는 천막농성장, 폭우로 농사를 망친 농민들, 폭염으로 사망한 제주 쿠팡 노동 현장, 옵티컬 하이테크의 해고노동자들, 중국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한 뒤 정리해고 된 락앤락 노동자들, 서울시의 방침으로 폐업한 서울사회서비스원, 정리해고 된 지 어느새 1000일이 지난 세종호텔 노동자들까지.
우리 현실에서 어떤 어려움과 문제가 있는지 듣는 시간이었다. 7월과 8월은 당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노력들을 했다. 지난 총선에서 참패했기 때문에 당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굉장히 ‘멘붕’ 상태라고 표현할 정도로 충격이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20여 곳을 다니며 지역 당원을 만나는 간담회를 진행했다. 지역의 목소리, 당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정의당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립하는 시간이었다.
프레시안 : 총선에서 정의당이 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나.
권영국 : 결국은 정말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 정의당이 자기 목소리를 끝까지 냈느냐의 문제 같다. 정의당이 필요한 현장과 지역에서 책임있게 행동하고 그 자리에 있었느냐고 비판하고 지적해주시는 부분이 많았다. 그 비판에 공감을 하고 있다.
정치적 구도나 외부적 요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내부적으로 볼 때는 신뢰를 줄 수 있을 만큼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이 필요할 때 정의당이 그 곁에 있었나. 현장에서 믿을 수 있게 정의당이 끝가지 함께했느냐에 대해서 신뢰를 잃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정말로 그 부분에 대해서 진솔하게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다시 현장 속으로 더 아래로 내려가서 길을 찾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프레시안 : 정의당이 원외정당이 되고 어려운 상황일 때에 대표가 됐다. 어떤 마음으로 대표직을 수락했나.
권영국 : 고(故) 홍세화 선생께서 하셨던 예전 진보신당 대표 취임사의 제목이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오르며’라는 제목을 썼다. 너무 공감이 됐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책임을 다 해야 하고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그 역할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여러 번 고사하기도 했다. 당을 운영했던 경험도 없는 나같은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버린, 유권자들이 외면한 정당을 과연 내가 감당해낼 수 있을까. 그런 걱정과 우려 때문에 과연 내가 그 자리에 앉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그러나 만약 모두가 회피해버린다면 정말로 정의당은 사라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더 이상 피하지 말자는 심정으로 ‘오르고 싶지 않은’ 그 자리에 오르게 됐다.
프레시안 : 추석을 앞두고 SPC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불법파견 등을 드러냈던 비상구(비정규직노동상담창구)가 재출범했다.
권영국 : 정의당 비례대표 경선에 참여하면서부터 비상구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의원이 되든 안 되든, 당대표로 나서면서도 매우 중요한 공약 중 하나가 비상구를 재건하겠다는 것이었다. ‘비상구’의 첫 출발은 2016년 12월이었는데, 당시에는 비정규직 문제가 우리 사회의 뜨거운 화두가 된 시절이었기도 했다. 원래는 ‘비정규직 노동 상담 창구’의 줄임말인데 현재에는 두 가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것 같다.
지금 청년 노동자들, 비정규직과 같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일을 하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희망도, 사다리도 끊겨있는 상태인데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비상구가 필요하다. 아리셀 화재현장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상구를 사용하기 어렵지 않았나. 비상구처럼 안전한 곳이 필요한 세상이 된 것이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기 어려운, 벗어날 수 없는 우리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비상구’가 필요하다.
아무리 스스로 노력을 해도 자신이 처한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데, 주어진 조건으로 규정되고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비상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 사다리가 끊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 비상구가 정말 필요하다. 그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우리의 꿈이나 이상, 인간다운 삶을 향해서 비상할 수 있지 않을까.
비상구는 비정규직 노동상담 창구였다. 이제는 노조 밖에 있는 노동자들,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통로와 창구로 그들을 지원하면서 소통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노력을 하기 위해 비상구를 만든 것이다. 개인의 권리 구제도 해야 하지만 사회구조적인 이슈를 제기하면서 제도와 사회를 바꿔나가는 것을 염두하고 발족했다.
프레시안 : 원외, 밖에서 바라본 22대 국회의 모습은 어떤가.
권영국 : 22대 국회를 보면 비어있는 곳이 확 눈에 들어온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노조가 조직되지 않은 일터의 약자들에 대해 자기 문제로 이야기 하는 정치인이 없다. 두 번째는 기후위기에 대해 아무리 이야기 해도 지나치지 않는데 관련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목소리를 내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 또, 딥페이크 성착취물 문제와 같은 여성문제나 성평등·젠더이슈를 자기 문제처럼 여기고 있는 정당도 잘 보이지 않는다. 서로 공격하는 정쟁에는 목소리를 많이 내는데 실제로 민중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거나 연결된 부분이 목소리가 비어있다.
프레시안 : 추석을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권영국 : 이번 추석에는 과일들과 채소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격이 뛰었다. 우리 삶 자체가 팍팍해져 있는 상황인데, 윤석열 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시장이나 민간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회피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국민들을 생각하면, 정의당이 원내에서 좀 더 목소리 낼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반성과 아쉬움이 남는다.
정의당은 이 어려운 국면을 헤쳐가기 위해서 마음을 다잡겠다. 민생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정부의 정책을 바로잡기 위해서 정의당도 열심히 노력하고 싸우겠다. 희망을 잃지 마시고 우리 사회를 바로 세우는데 저희들도 노력하고 힘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하겠다. 명절인 추석에 시름들과 피곤은 잠시 내려놓으시고 가족들과 평안하고 행복한 명절이 되시기를 바란다. 정의당에도 애정과 관심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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