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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앞두고 마음이 편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무엇보다 차례 상 준비 걱정에 벌써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여성의 호소가 적지 않다. 오죽하면 ‘명절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차례를 지내지 않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게 혹 불효가 아닌지 마음 한편이 무겁기도 하다. 2년 전 추석을 앞두고 ‘차례 간소화’ 방안을 발표했던 최영갑(61)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유림회관에서 만났다. ‘유교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그는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제철 과일과 나물·백김치·송편·구이·술 등 여섯 가지 음식을 올리는 차례 표준안을 제시해 화제를 모았다. 최 회장은 성균관대 유학과를 나와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유학 전문가다.
“문헌(주자가례)을 보면 설과 추석 같은 민속 명절에는 ‘그 계절에 나는 음식을 올린다’는 것만 간단하게 나와 있을 뿐 제사처럼 이런저런 복잡한 예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사 형식을 차례에 그대로 잘 못 옮겨오다 보니 성대한 차례 상이 되고 말았죠. 차례 표준안은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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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22년 ‘전을 부치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은 ‘기름진 음식을 올리지 않는다’는 사계 김장생(1548~1631년)의 ‘가례집람’에 근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례의 제사화’에 대해서는 세 가지 학설이 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갑오개혁(1895년)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자 양반가보다 더 부유한 신흥 계층이 과시욕에서 화려한 제사를 모방했다는 학설이다. 또 전반적으로 물산이 풍부해졌다는 학설, 풍성하게 차리는 종갓집 제사를 따라갔다는 학설도 있다. 이 중 ‘갑오경장설’이 좀 더 유력하다는 게 유학계의 분석이라고 최 회장은 설명했다. 그는 “갑오경장 이전 유학이 지배한 조선 시대에는 정작 차례 상차림은 매우 단순하고 간소했다”며 “예컨대 추석에는 송편을, 설에는 떡국을 올리면 되는데도 제사처럼 메(밥)와 탕(국)을 올리는 관습이 내려오면서 상차림 가짓수가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예법의 기본은 인정(人情)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인정을 따른다는 것은 마음을 담고 마음이 편한 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인정을 거슬러서는 예법이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예법은 형식과 실질 두 가지 모두 중요한데 실질은 빼버리고 형식만 남다 보니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에 배치)’ ‘조율이시(棗栗梨柹·대추·밤·배·감)’ 하고 따지는 것이죠. 하지만 홍동백서는 예법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는 “홍동백서는 상 차릴 때 헷갈리지 않고 외우기 쉽도록 하기 위해 구전으로 내려온 것이 아닌가 추정만 할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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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은 2022년 차례 표준안에 대해 “일부 종갓집에서도 ‘잘했다’고 격려해준다”면서 “아무래도 종부가 고생하는 것을 아니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성균관이 진작 제시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며 “얼굴도 모르고 성도 다른 조상을 모시는 며느리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차례 상차림 문제로 가족이 힘들고 서로 불편하다면 조상들이 반길까”라고 반문하면서 “차례는 조상에 대한 작은 추모이자 가족 화합의 장이기에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형편에 맞게 지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차례의 제1 원칙은 ‘가족 화합’ ‘가족 협의’라고 했다. 다만 간소화가 차례를 안 지내도 된다는 식으로 곡해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례가 예법에 맞는지 물어봤다. 최 회장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피자나 스파게티 같은 것을 올려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권장하지는 않겠지만 문제 삼을 일이 아니고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답했다. 또 “여행지에서 간단한 상차림으로 차례를 지내는 것도 무방하고 수입산 과일도 괜찮다”고 말했다.
차례(茶禮)인데도 차 대신 술을 올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주자가례를 보면 차를 올린다는 대목이 나온다. 중국은 차 문화가 발달했지만 우리는 차를 구하기 어려워서 대신 술을 올렸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 문중에서는 지금도 차를 올린다”며 “차와 술 대신 물을 올려도 된다”고 설명했다. “문헌에는 물을 현주(玄酒·검은 술)로 올렸다고 해요. 밤에 제사를 지내다 보니 어두컴컴하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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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도 한날에 부모를 함께 모셔도 된다고 했다. “아버지 제사를 지내다 보면 어머니 생각도 날 것 아닙니까. 굳이 안 될 이유가 없지요. 부모의 제사를 함께 지내는 것을 문헌에는 ‘합설(合設)’이라고 해요. 옛날에도 함께 모시기도 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제사든 차례든 장손만 지내지 않고 자녀 세대가 돌아가면서 해도 괜찮다”고 덧붙였다. 고려 시대에는 ‘윤회봉사(輪廻奉祀)’라고 해서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부모님을 모시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차례는 매년 명절 아침 맏손자의 가정에서 지낸다’고 명시된 건전가정의례준칙은 마땅히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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