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농촌 비즈니스, 힙플레이스를 만들다
경북 문경시 산양면 한 농촌 마을에는 종택을 개조하여 한옥 카페와 숙박 공간으로 꾸미고, 마을과 주변지역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활용해서 음료와 다과를 내는 ‘화수헌’이라는 한옥 카페가 있다. 가까운 산양면 소재지에는 오래된 양조장을 개조하여 지역 여행 안내소와 편집샵 그리고 모임 장소로 활용되는 산양정행소라는 공간도 있다.
두 곳 모두 한 청년이 귀촌하여 뜻을 같이 하는 여러 청년들 및 지역 주민들과 함께 일군 공간으로 외부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힙플레이스’이다. 이들을 기획한 리플레이스(RE:PLACE, 대표 도원우)는 여러 농촌 지역에서 각 지역에 맞는 농촌 비즈니스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위 사례와 같이 ‘로컬 비즈니스 신(scene)’으로 대변되는 지역의 고유한 자원이나 가치에 기반한 경제활동이 최근 지역 곳곳에서 성장 중이다. 농촌 또한 전통적인 농업 중심의 지역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다양한 지역 기반 경제활동이 가능한 대안적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청년이나 귀촌인, 관계인구와 같이 농촌에 관심을 가진 창조적인 계층들이 기존 농업‧농촌 자원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접목하여 새로운 경제활동과 창업을 선도한다. 이러한 흐름에 부응하여 정부 및 지자체는 농촌 과소화에 대응한 인구 유입과 지역 내 일자리 유지 등 경제 활동 기반의 확대를 위한 목적에서 농촌 창업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농촌의 지역 기반 비즈니스 모델과 창업 활동들이 지속가능한 농촌 지역 활성화 경로로 유지될지, 혹은 한때의 유행에 그칠 것인지 살펴볼 시점이다.
전통적으로 농촌산업 영역은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가공제품 생산이나 농촌 체험 등으로 한정되어 왔다. 하지만 화수헌‧산양정행소의 사례와 같이 유려한 자연경관, 고유한 문화유산, 다양한 시대 배경의 유서 깊은 건축물 등 농업‧농촌의 다양한 자원과 가치를 활용한 분야로 농촌 비즈니스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일례로 원격 근무 트렌드와 맞물려 나타난 농촌 지역에서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병행하는 ‘워케이션(workation)’ 프로그램과 체류시설, 논과 밭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치유 프로그램으로 각광받고 있는 ‘논멍‧밭멍’, 양조장‧정미소와 같이 전통적인 지역 유산을 개조한 카페‧레스토랑, 농촌 미술관이나 공연장 등 기존 농촌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비즈니스와 명소들이 전국의 농촌 곳곳에서 늘어나고 있다.
농촌 창업의 증가와 지역 활성화의 가능성
이러한 현상은 농촌 창업이나 경제활동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집계에 따르면, 농촌 내 창업 건수는 2010년 6만 6636건에서 2021년 17만 2464건으로 세 배 가까이 늘어났으며, 같은 기간 전국 창업건수에서 농촌이 차지하는 비중도 14.3%에서 20.1%로 증가했다. 그 결과 2023년 기준 농촌 소재 기업 중 29.8%가 창업 후 5년 이하인 기업으로 나타났다. 창업에 국한한다면, 농촌은 도시 못지않은 역동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농촌 과소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지방소멸대책, 귀농‧귀촌 정책, 청년 정책 등을 통해 농촌 내 새로운 계층을 유입시키고 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창업을 장려하는 정부‧지자체의 정책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농업‧농촌의 자원 외에도 도시에 비해 저렴한 부동산 비용과 상대적으로 적은 경쟁업체의 수는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입지 조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최근 10년간 누적 귀농‧귀촌인 수가 500만 명에 이르는 현상에서 보듯이 농촌에서 새로운 삶을 펼치고자 하는 수요가 유지되는 한 농촌 내 창업은 당분간 현재와 같이 증가하는 추세가 지속될 것이다.
농촌 내 창업체가 증가하고 그들이 잘 성장하면 부가가치 및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지역 경제활력을 높일 것이다. 농업 등 기존 지역 기반산업의 동반 성장도 기대해볼 수 있다. 아울러 지역 내 필요한 다양한 기능들을 제공함으로써, 지역 내 정주기반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인구 유입 및 유지에 기여할 것이다.
또한 위 사례와 같은 농촌 힙플레이스 및 거점 공간들은 농촌에 대한 도시민들의 편견을 해소하고, 관계인구 증가 등 농촌 지역 활성화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기대는 현재의 농촌 창업과 비즈니스 모델들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상황을 전제로 한다.
농촌 기업가들의 고민, 농촌 비즈니스의 성장을 위한 과제
그러나 농촌 창업체들이 처한 현실은 모두의 기대만큼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농촌 비즈니스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농촌융복합산업에 대한 기초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농촌융복합산업 매출은 23조 2564억 원에서 2022년 기준 31조 1677억 원으로 증가했으나 법인 경영체의 경우 같은 기간 1만 4542개에서 1만 1249개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촌 창업 연구에 따르면, 한국기업데이터 기준 2010년부터 2020년 사이 농촌 창업체의 연평균 성장률은 7.37%로 전국 평균 7.89%를 하회한다. 농촌 내 기업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같은 연구에서 농촌 창업체들은 인력 수급, 자금 조달, 전문적인 지원 서비스 수혜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앞선 사례로 언급한 리플레이스의 대표는 이러한 현실과 관련하여 비교적 성공한 농촌 창업체들이 처한 고민을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저희와 유사한 농촌 로컬 창업체들은 일정 매출액에 도달하면, 시장 규모 등의 이유로 인해 예외 없이 성장 한계에 직면합니다. 이 때, (성장 혹은 생존을 위해) 대도시로 진출하거나, 이커머스와 같은 돌파구를 고민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실제 주사업지를 대도시로 이전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실을 고려할 때, 농촌 내 창업이 기대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창업체들의 고민 해결과 농촌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단순히 농촌 내 창업을 늘리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농촌 창업체들의 지속적인 성장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창업체들의 성장 단계를 고려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며, 특히 창업과정에서 나타는 성장 한계를 극복하고 농촌에서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방안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둘째, 민간이 주도하는 지역 단위의 창업 생태계 구축을 지향해야 한다.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민간 주체민간주체(투자자, 엑셀러레이터 등)들이 농촌 창업체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공공부문은 투자 기금 조성‧운영 등의 역할을 담당하는 방식이 이상적이다.
지역소멸대응기금, 지역활성화투자펀드 등 정책 당국에서 지역 발전을 목표로 적극적 활용을 천명한 공공기금이나 펀드가 작지만 소중한 농촌 비즈니스 활동에도 널리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역량을 갖춘 지원 주체들이 참여함으로써, 경쟁력 있는 농촌 창업체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농촌 비즈니스가 출현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농업‧농촌의 다원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지역 주민에 미치는 해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파격적인 규제완화를 통해 창업가들을 농촌으로 유인하고 기존 창업체들의 성장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농촌 내 공유 시설의 활용, 토지 이용 관련 규제 완화 등 농촌 창업 및 기업 성장 과정에서 다수가 경험하는 규제들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성장 중인 여러 농촌 내 비즈니스 모델들과 농촌의 창업 활동은 한때의 유행을 넘어서 농촌의 활력을 찾을 수 있는 중요한 대안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정책이나 공공부문의 지원이 있기는 하지만, 창업과 농촌 비즈니스가 새로운 수요에 대응한 기업가의 자발적인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과거 농촌을 살리기 위한 여러 시도들과 구분되기 때문이다.
농촌 내 창업의 활성화와 다양한 비즈니스의 등장을 통해 농촌 지역의 활력을 높이고, 청년들에게 새로운 기회와 다양한 삶의 터전을 제공하며, 국민들이 다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농촌 공간을 향유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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