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시인들이 사랑하는 소설은 뭘까. 누구의 어떤 장르일까. 2024년 현역 시인들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첫손에 꼽혔다. 15명이 치올린 결과로, 후순위 작품들에 견줘 갑절의 지지를 받았다. 이른바 ‘난쏘공’은 올해로 150만부 이상이 팔린 현대문학의 고전이자, 2022년 말 타계한 조세희 작가의 독보적 유산이다.
이어 김승옥의 ‘무진기행’,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 최인훈의 ‘광장’(이상 7표씩), 한강의 ‘소년이 온다’(6표), 박경리의 ‘토지’, 이문구의 ‘관촌수필’(5표씩) 순으로 지목됐다.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를 시인 4명이,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조정래 ‘태백산맥’,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을 3명씩이 꼽았다.
지난 상반기 한겨레가 창비 시선과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을 통해 시집을 출간한 적 있는 시인들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국내 소설 3권’을 조사한 결과, 위 작품을 포함해 전체 133종이 목록을 구성할 만큼 다양한 취향을 선보였다. 약 석달에 걸쳐 설문에 참여한 시인 80명은 20대 중반부터 70대 후반으로, 등단 시기상 1968년부터 2021년까지 반세기에 걸쳐 있다.(☞1부 ‘시인들이 사랑하는 시’ 참고)
전체 목록에 작품을 최다 등재한 작가는 김연수다. 2표를 받은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제3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과 1표씩의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장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일곱 해의 마지막’ 6종이 김연수 작품으로 다 합쳐 7표를 받았다. ‘일곱 해의 마지막’의 주인공이 백기행이다. 이번 조사에서 ‘시인들의 시인’으로 꼽힌 백석의 본명이다. 김연수에 이어 이청준이 ‘당신들의 천국’(3표) 외 1표씩의 ‘선학동 나그네’ ‘서편제’ ‘별을 보여드립니다’ ‘조율사’ 등 5종(전체 7표)으로 많았다. ‘여수의 사랑’ 등의 한강(10표), ‘객지’ 등의 황석영(7표), ‘엄마의 말뚝’ 등의 박완서(6표), ‘파씨의 입문’ 등의 황정은(5표), ‘제주도우다’ 등의 현기영(4표)이 각기 4종으로 뒤따랐다.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로는 최인훈과 황석영이 꼽혔다. 외국 작가 중엔 도스토옙스키의 인기가 으뜸이었다.
국내 대표 소설가인 한강과 김연수가 시로 먼저 등단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얘기다. 소설가의 시는 드물지만, 시인의 소설은 적지 않다. 지난해만도 김현·이소호·임솔아 시인 등의 소설을 독자는 만났다. 시인들 보기에, 최근 5년 시, 소설 등 우리 문학계는 퇴보했을까, 성장했을까? 윤석열 정부의 문학 출판 정책은? ‘시인으로서의 자긍심’이 7.55점(10점 만점)에 이르는 현역 시인 80명, 지금 더 만나본다.
2024년은 한국 최초의 창작시집인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가 올해 101살, 최초의 자유시 ‘불놀이’를 담은 주요한의 첫 시집 ‘아름다운 새벽’은 100살, 근대문학사에서 대중 시집의 전범을 세운 김소월의 첫 시집 ‘진달래꽃’이 99살 되는 해다. 한국 시집 100년의 경계. 게다 지난 전반기는 창비 시선 500호,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600호를 돌파하고, 김혜순 시인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기념비적 시기다. 시인들에게 당신의 시인, 당신의 소설가, 당신의 자긍심과 안부는 물론 문학판의 공정성, 현 정부 출판 정책에 대한 평가, 21세기 반시적(反詩的) 사건 등 30여가지를 물었다. 한국 문단사에 없던 방식과 규모의 설문조사다. 2부(전체 5회)에 2024년 ‘시인의 초상’을 그린다. 편집자주
한겨레 임인택 기자 / imit@hani.co.kr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