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최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더 빠르고 더 강력한’ 인공지능(AI)기술 개발에 온 힘을 쏟는 중이다. 4차 산업시대, 인공지능(AI) 기술력이 곧 IT산업 경쟁력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에 AI성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고성능 컴퓨팅’ 관련 기술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이 가운데 최근 주목도가 크게 오른 기술이 있다. 바로 ‘컴퓨트 익스프레스 링크(Compute Express Link, CXL)’이다. 기존 컴퓨팅 시스템 메모리가 가진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CXL은 대용량 데이터 처리를 위한 컴퓨팅 환경 조성의 새로운 해답지로 손꼽힌다.
국내서도 시장 흐름에 맞춰 삼성전자 등 IT기업을 필두로 CXL 기술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때 수많은 대기업들을 제치고 업계의 주목을 한눈에 받는 기업이 있다. 지난 2022년 설립된 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 ‘파네시아(Panmnesia)’다.
‘시사위크’에서는 정명수 파네시아 대표를 만나 국내 CXL 기술 및 산업계 전망을 들어봤다.
◇ ‘젊은’ 엔지니어들의 힘으로 세운 세계 최고의 CXL 기술력
대전 KAIST 본원, IT융합빌딩. 그곳에서 만난 정명수(46) 파네시아 대표의 첫인상은 ‘젊음’이었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정명수 대표는 반도체·컴퓨팅 등 가장 ‘보수적인’ 분야 연구자로 보이지 않았다.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은 여타 낡은 사고방식을 가진 반도체 연구자들과 정명수 대표가 다름을 드러냈다.
정명수 대표는 원래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와 시스템반대체학과, AI반도체대학원, 시스템아키텍트 대학원, AI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부터 CXL 다양한 방법으로 데이터 공유 및 메모리 확장 연구(CXL의 전신)를 진행해왔다. 그러던 중, 고성능 컴퓨팅 자원의 필요성이 대두된 2019년부터 석·박사 인력들과 CXL 연구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모리 및 스토리지 분야를 리드하고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꾸준히 창출해온 연구실이라 해도, 분명 한계는 존재했다. 연구실의 연구 성과는 말 그대로 ‘연구실에서’ 끝났다. 실제 산업계로의 확장, CXL 분야 생태계·인프라 활성화로 이어지기는 힘들었다.
정명수 대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신흥 산업을 정의하고 이끈다는 것은 학교에서 운영할 수 있는 규모의 설계와 구현산업계에 적용되는 매우 높은 비용 수준의 실리콘 고도화 요구사항을 반영하기 어려웠다”며 “뿐만 아니라 석·박사 연구원, 학생들 역시 일반 학교 연구실에선 접근이 제한된 반도체 최신공정을 실제로 접할 경우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에 정명수 대표는 연구를 단순 창업이라는 개념을 넘어 미래 한국 반도체·컴퓨터 산업 내 CXL 분야의 새로운 길을 제시할 조직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젊은 사고 방식’을 가진 연구자와 개발자들이었다. 이에 젊은 엔지니어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자 결심했다. 그렇게 2022년 8월, 대전 KAIST 창업보육센터에서 파네시아가 문을 열었다.
2022년 설립 이후 파네시아는 단 1년 만에 급격한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삼성역에 위치한 서울 사업개발캠퍼스와 대전 선행개발캠퍼스 독립사옥을 확보·확장했다. 9월에는 약 170억원 규모의 시드 라운드 투자금도 유치했다. 여기에 과제 및 지원금을 포함하면 약 28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정명수 대표는 “10년 가까운 시간 메모리 확장 및 CXL 분야 연구를 진행하면서 단순한 연구의 성공이 아닌 모든 관련 분야 종사자들이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며 “이에 CXL 산업 생태계의 활성화와 저와 함께하는 사람들 모두의 성공과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결국 CXL 연구가 연구실을 넘어 바깥, 즉 시장에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전제 조건이었다”며 “이에 학계와는 완전히 구분되는 독립 법인체를 설립, CXL 반도체 시장 개척과 파네시아를 이끄는 구성원 하나 하나가 모두 조명되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했고 이것이 KAIST 석박사들과 함께 설립한 현재 파네시아의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 세계서 가장 빠른 ‘CXL 스위치칩’의 정석을 제시하다
파네시아에 대한 업계의 우수한 평가 이유를 정명수 대표는 ‘기술력’이라고 자부했다. 그중 핵심은 단연 CXL 기술들이다. CXL이란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에 연결된 장치 간 ‘캐시 일관성(cache coherency)’을 맞춰주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여러 다양한 종류의 반도체들을 실시간으로 연결, 데이터센터 성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다.
정명수 대표는 “오랫동안 연구실에서부터 쌓아올린 경험과 노하우 덕분에 남들보다 조금 더 우수한 기술력을 가질 수 있었다”며 “파네시아를 통해 이 같은 기술력을 외부에 내놓을 수 있는 제품으로 구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파네시아의 여러 CXL 기술 중 시장 주목도가 가장 높은 것은 ‘CXL 3.1 스위치 시스템온칩(이하 CXL 3.1 스위치칩)’이다. 파네시아가 자체 개발한 CXL 설계자산(IP)과 기간기술들을 활용, 최신 CXL 관련 모든 표준 기능등을 지원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스위치 디자인이다. 쉽게 말해 CXL이 적용되는 메모리 반도체라면 모두 CXL 3.1 스위치칩 기술이 호환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CXL 3.1 스위치칩의 가장 큰 장점은 ‘고확장성’이다. 다양한 종류의 반도체(이종 반도체)들을 다수 계층으로 연결 가능하다. 이를 통해 ‘패브릭 구조(Fabric Network Structure)’를 구성, 수백 대가 넘는 컴퓨터를 데이터 센터에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 정명수 대표의 설명이다.
여기서 패브릭 구조란 스위치, 서버, 스토리지 노드, 메모리 등이 말 그대로 ‘섬유’처럼 촘촘히 엮인 구조다. 캐시 일관성을 보장하고 다중 중복 통신 경로를 제공하기 때문에 기존 네트워크보다 훨씬 빠른 데이터 처리가 가능하다.
아울러 파네시아의 CXL 3.1 IP는 세계 최초로 두 자리 나노초(nanosecond)의 지연시간을 달성한 바 있다. 나노초는 10억 분의 1초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스위치를 떠나서 전 세계 유수의 기업들도 CXL이 정의하는 스위치/패브릭 기능을 완벽히 구현하는 IP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업적이다.
정명수 대표는 “파네시아의 CXL 스위치칩은 기존 인터페이스 구조를 재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CXL 기술만을 적용해 IP상의 성능치 이득치보다 더욱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며 “CXL에 최적화된 아키텍처는 현재 파네시아만 보유하고 있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 1년 만에 기업가치 ‘1,000억원’ 달성… “AI시대, CXL가 곧 경쟁력”
정명수 대표는 최근 CXL이 주목받는 이유를 ‘생성형 AI시장’ 성장도 주요했다고 강조했다. 생성형 AI서비스의 기초가 되는 AI학습은 고성능 데이터센터에서 이뤄진다. 이 AI학습 성능을 높이기 위해선 대용량 데이터 처리 속도를 극대화한 컴퓨팅 환경이 필수다. 이때 CXL이 적용된 D램은 서버 1개당 데이터 용량을 최대 10배 이상 늘릴 수 있다.
실제로 파네시아는 지난 7월에는 보유한 CXL 기술을 이용, 고용량·고성능 AI가속기 ‘CXL-GPU’도 개발에 성공했다. 이 제품은 기존 엔비디아 GPU 대비 AI모델 구현 속도가 2.36배 빨랐다.
정명수 대표는 “AI, 특히 거대언어모델(LLM) 구현에는 효율적인 ‘올 투 올 커뮤니케이션(All-to-all communication, 병렬 연결된 컴퓨터에서 각 프로세서가 모든 프로세서에 개별 메시지를 보내는 작업)’ 방법과 하드웨어 구조가 필요하다”며 “CXL은 약간의 설계변경을 통해서 기존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가속장치들보다 훨씬 더 빠른 AI의 추론과 학습을 가능케 한다”고 설명했다.
생성형 AI산업의 성장, 고성능 컴퓨팅 자원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CXL 산업도 급성장 중이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비즈니스 리서치 인사이트’에 따르면 CXL 관련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9,890만달러(약 1,366억원)로 추산된다. 여기에 연평균 성장률 37.6%을 기록하며 2030년 8억9,230만달러(약 1조2,324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생성형 AI시장 성장은 파네시아에 기회로 다가왔다. 대교인베스트먼트, 지엔텍벤처투자, 퀀텀벤처스 등 7개 투자사들이 참여한 투자라운드에 따르면 파네시아의 기업 가치는 약 1,034억원으로 평가된다. 파네시아 설립 단 1년 만에 얻은 쾌거다.
파네시아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과의 협력도 가속화 중이다. 내년 하반기부터 대표 제품인 CXL 3.1 스위치칩 샘플들을 고객사들에 제공할 예정이다. 정명수 대표에 따르면 현재 파네시아는 27개 이상의 국내외 주요 기업들과 기밀유지 협약(non-disclosure agreement, NDA)를 맺고 협력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정명수 대표는 “현재 파네시아는 CXL 3.2, CXL 4.0 등 새로운 미래 CXL 프로토콜에 대해 정의하고 만들어가고 있다”며 “여러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이종 간 반도체 연결 숫자를 늘리고 캐시일관성 효율을 대폭 증가시킬 수 있는 CXL 프로토콜의 정석을 만들어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소수의 경력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 반도체 산업계 공식을 따라가지 않고 경험이 적은 엔지니어를 성장시키는 기업이 되고 싶다”며 “단순히 기업으로써의 성공이 아닌 한국 CXL 산업 생태계 구축과 활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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