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메뉴 바로가기 (상단) 본문 컨텐츠 바로가기 주요 메뉴 바로가기 (하단)

100분 동안 무려 5번 사망했습니다

미디어오늘 조회수  

▲ 서울시소방재난본부 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학생들이 지하철화재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서울시소방재난본부 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학생들이 지하철화재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컴컴하고 꽉 막힌 공간에 들어섰다. 자욱한 연기가 순식간에 뿜어져 나왔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숨이 턱 막히고 두려워졌다. 주택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저 안에 들어가면 앞이 하나도 안 보여요. 벽을 짚으면서 감으로 들어가야 해.”

옷으로 코를 가리고 허릴 굽혔다. 유일하게 보이던 초록색 유도등. 그것만 계속 따라갔다. 삶의 동아줄 같은 불빛이었다. 몸 안쪽에서 방망이를 두드리듯 심장이 쿵쿵거렸다. 

가까스로 바깥에 빠져나와 생각했다. 실제 연기였다면 죽을 수도 있었겠다고, 이 속도로 대피했다면. 

다행히 실제 화재는 아녔다. 그래서 대피한 뒤 길고도 천천히, 숨을 다시 고를 수 있었다. 

100분간의 재난 체험이었다. 땅이 흔들렸다가, 불이 났다가, 배에 물이 차오르는 상황이 펼쳐졌다. 지진이 났을 때 현관문을 먼저 열어야 하는 줄 몰랐고(문이 찌그러지므로), 배 안에서 구명조끼를 입었다가 탈출에 방해가 되는 걸 몰랐으며(떠오른 채 헤엄칠 수 없으니까), 다급히 소화기를 잡았는데 안전핀이 안 뽑혀 당황했다(손잡이를 꾹 누른 채여서). 

과정마다 세보니 최소 5번은 죽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체험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면. 

그게 벌써 2년 전 얘기다. 이후 당연히 내겐 그런 일이 피해 갈 것처럼 까먹고 지냈다. 

지난달 22일 저녁. 부천 호텔에서 불이나 7명이 숨졌을 때, 완강기 사용법을 몰라 숨진 이들이 있단 걸 알았을 때, 불현듯 잊고 지낸 재난 체험이 생각났다. 

▲ 8월23일 오전 전날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부천시의 한 호텔에서 경찰 및 소방 관계자 등이 오전 합동 감식을 마친 뒤 건물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8월23일 오전 전날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부천시의 한 호텔에서 경찰 및 소방 관계자 등이 오전 합동 감식을 마친 뒤 건물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완강기를 타본 것도 그때가 40년 생애 처음이었다. 줄을 겨드랑이 사이에 낀단 것도, 벽을 짚으며 내려온단 것도 몰랐다. 발이 아니라 손으로 통통 치면서. 그 중요한 게 베란다 구석에 처박혀 있단 것도 첨 알았다. 거미줄이 드리워진 걸 휘휘 저어가며 벽 지지대에 처음 설치해봤다. 

그때 쓴 기사 제목은 ‘우리 집 베란다에, 전 재산보다 중요한 게 처박혀 있었다’였다. 처음 꺼내어본 완강기 얘기였다. 당시 독자 127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을 때, 무려 92%(1172명)가 쓸 줄 모른다고 했다. 단 한 명이라도 기사를 읽기를, 읽은 뒤엔 꼭 연습해보길 바랐다. 

[관련기사 : 머니투데이) 우리집 전 재산보다 중요한 게… ‘베란다’에 처박혀 있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재난 훈련의 중요성을 ‘게임’에 비유했다.

“처음 게임하면 잘 죽잖아요. 지형도 모르고, 뭘 가져야 힘이 세지는지도 모르고요. 자꾸 실패하다 보면 점수도 높아지고 순위도 올라가죠. 재난 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해봐야 실제 상황에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지요. 그래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100분의 재난 체험 게임을 하며 5번을 죽어 본 덕분에, 그 5번의 경우에 대해서만큼은 죽지 않을 확률을 높이게 됐다. 오감을 통해 반복해서 체험하면, 이성적 판단이 힘든 재난 상황에서도 올바른 대처가 나올 수 있다고. 그러니 100분만 투자해도 나를, 또 곁의 사랑하는 존재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간절함을 또 적어본다.

머무는 곳마다 여기서 불이 난다면, 지진이 난다면, 폭우가 쏟아진다면, 누군가 심정지가 발생한다면, 사고가 난다면, 이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진다면, 대체 어떻게 대처할까 상상해보기를. 상상을 넘어, 미리 경험해 준비하기를. 반복해서. 어디서든 우린 죽을 수 있고, 그땐 정말 기회가 한 번뿐이니까.

이를테면 이런 거다. 며칠 전엔 비상계단을 오르다가 온갖 물건을 가득 쌓아둔 걸 봤다. 해당 층 이웃에게 경고해 치워달라고, 관리실에 전화했다. 불나서 컴컴한 와중에 대피하다가 걸려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땐 그게 ‘살인 도구’가 될 수 있으므로. 전화한 뒤 그들의 위험한 짐은 치워졌다. 

2001년 9월 11일.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충돌했을 때, 입주한 대다수 기업은 과반수가 사망했다. 그러나 건물 내 모건스탠리 직원은 2947명 중 사망자가 10명에 불과했단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했을까. 

1993년부터 분기마다 한 번씩, 30번이나 불시 훈련을 했단다. 뭘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몇몇 직원들 반발도 있었단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한 덕분에, 그리 많이 살 수 있었던 거였다.

미디어오늘
content@www.newsbell.co.kr

댓글0

300

댓글0

[뉴스] 랭킹 뉴스

  • 교육부, '교육개혁 원년' 성과 공개...내년 디지털 혁신과 지역 동반 성장 박차
  • 한강청, 화학물질 안전활동 성과공유 워크숍 개최
  • (재)창녕군인재육성장학재단 ‘제71회 이사회’
  • [부여군 소식]농업기술보급혁신 우수사례 경진대회‘대상’ 수상 등
  • 진주시,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서 ‘진주 우수농특산물 특별기획전’
  • 조국·이재명, 사법 리스크 최고조

[뉴스] 공감 뉴스

  • [보령시 소식]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 회원 및 가족 송년회 개최 등
  •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 전문가 집중토론회 개최
  • 머스크, 베이조스와 또다시 충돌… “트럼프 질 거라고 말했다”
  • "실내 완전 5성급 호텔이네"…'폭탄 할인' 들어가는 SUV의 정체
  • 2025년 국가장학금 대폭 확대...지원 대상 150만 명으로 증가
  • 동덕여대 총학생회 “래커 낙서, 우린 모르는 일... 박람회 취소 손해배상금 3억 못 낸다”

당신을 위한 인기글

  • 눈으로 한 번 먹고, 입으로 두 번 먹는 브런치 맛집 BEST5
  • 담백한 국물과 쫄깃한 살코기,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닭곰탕 맛집 BEST5
  • 푹- 끓여내어 야들야들한 건더기와 얼큰한 국물의 만남, 육개장 맛집 BEST5
  • 한식에 술만 있다면 무한으로 마실 수 있는 술꾼이 인정한 한식주점 5곳
  • ‘위키드’ 보고 나니, 더 생각나는 뮤지컬 영화 BEST 5
  • [위클리 포토] 여배우들의 하트 대결 ‘웜 미녀’ VS ‘쿨 미녀’
  • [인터뷰] ‘미망’ 하성국·이명하의 ‘작은 바람’
  • 이혼 전문 변호사도 놀란 파격적 설정, ‘히든 페이스’

함께 보면 좋은 뉴스

  • 1
    “7년 1억8900만달러에 다저스행” 김하성 제친 FA 유격수 1위 위용…베츠 2루수 복귀, 키스톤 무게감 향상

    스포츠 

  • 2
    “(김)도영이 (ML에)뺏길까봐 걱정” KIA 우승단장도 흐뭇, 국제용 입증했다…다치면 죽는다의 ‘진실’

    스포츠 

  • 3
    '정년이' 우다비, 나비처럼 날아오를 [인터뷰]

    연예 

  • 4
    [게임브리핑] 슈퍼바이브, 국내 오픈 베타 테스트 첫선 외

    차·테크 

  • 5
    디자이너·개발자가 말한 ‘아이오닉 9’의 매력

    차·테크 

[뉴스] 인기 뉴스

  • 교육부, '교육개혁 원년' 성과 공개...내년 디지털 혁신과 지역 동반 성장 박차
  • 한강청, 화학물질 안전활동 성과공유 워크숍 개최
  • (재)창녕군인재육성장학재단 ‘제71회 이사회’
  • [부여군 소식]농업기술보급혁신 우수사례 경진대회‘대상’ 수상 등
  • 진주시,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서 ‘진주 우수농특산물 특별기획전’
  • 조국·이재명, 사법 리스크 최고조

지금 뜨는 뉴스

  • 1
    '희귀병 완치' 문근영, '가을동화' 시절 소환 "뭐든 다 할 수 있다"

    연예 

  • 2
    스타들의 고기 맛집

    연예 

  • 3
    현대차 ‘아이오닉9’ 첫 공개… 소개나선 무뇨스, CEO 공식 데뷔

    차·테크 

  • 4
    이미주, 유재석 만난 건 필연? "이승아로 개명한 뒤 상황 좋아져"

    연예 

  • 5
    대만 여행 필수코스 타이베이 101 전망대 티켓 할인 예약 방법

    여행맛집 

[뉴스] 추천 뉴스

  • [보령시 소식]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 회원 및 가족 송년회 개최 등
  •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 전문가 집중토론회 개최
  • 머스크, 베이조스와 또다시 충돌… “트럼프 질 거라고 말했다”
  • "실내 완전 5성급 호텔이네"…'폭탄 할인' 들어가는 SUV의 정체
  • 2025년 국가장학금 대폭 확대...지원 대상 150만 명으로 증가
  • 동덕여대 총학생회 “래커 낙서, 우린 모르는 일... 박람회 취소 손해배상금 3억 못 낸다”

당신을 위한 인기글

  • 눈으로 한 번 먹고, 입으로 두 번 먹는 브런치 맛집 BEST5
  • 담백한 국물과 쫄깃한 살코기,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닭곰탕 맛집 BEST5
  • 푹- 끓여내어 야들야들한 건더기와 얼큰한 국물의 만남, 육개장 맛집 BEST5
  • 한식에 술만 있다면 무한으로 마실 수 있는 술꾼이 인정한 한식주점 5곳
  • ‘위키드’ 보고 나니, 더 생각나는 뮤지컬 영화 BEST 5
  • [위클리 포토] 여배우들의 하트 대결 ‘웜 미녀’ VS ‘쿨 미녀’
  • [인터뷰] ‘미망’ 하성국·이명하의 ‘작은 바람’
  • 이혼 전문 변호사도 놀란 파격적 설정, ‘히든 페이스’

추천 뉴스

  • 1
    “7년 1억8900만달러에 다저스행” 김하성 제친 FA 유격수 1위 위용…베츠 2루수 복귀, 키스톤 무게감 향상

    스포츠 

  • 2
    “(김)도영이 (ML에)뺏길까봐 걱정” KIA 우승단장도 흐뭇, 국제용 입증했다…다치면 죽는다의 ‘진실’

    스포츠 

  • 3
    '정년이' 우다비, 나비처럼 날아오를 [인터뷰]

    연예 

  • 4
    [게임브리핑] 슈퍼바이브, 국내 오픈 베타 테스트 첫선 외

    차·테크 

  • 5
    디자이너·개발자가 말한 ‘아이오닉 9’의 매력

    차·테크 

지금 뜨는 뉴스

  • 1
    '희귀병 완치' 문근영, '가을동화' 시절 소환 "뭐든 다 할 수 있다"

    연예 

  • 2
    스타들의 고기 맛집

    연예 

  • 3
    현대차 ‘아이오닉9’ 첫 공개… 소개나선 무뇨스, CEO 공식 데뷔

    차·테크 

  • 4
    이미주, 유재석 만난 건 필연? "이승아로 개명한 뒤 상황 좋아져"

    연예 

  • 5
    대만 여행 필수코스 타이베이 101 전망대 티켓 할인 예약 방법

    여행맛집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