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거부 중인 의사들이 응급실에서 근무 중인 의료진 신상까지 공개하는 ‘블랙리스트’ 공세가 도를 넘자 대통령실이 엄정 대응 방침을 밝혔다. 경찰도 용의자 2명을 특정하고 스토킹처벌법 적용을 검토하는 등 수사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0일 “선의로 복귀한 의료진이 일을 못 하게 하는 의도가 불순한 것으로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국민들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가므로,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의사 블랙리스트 논란은 의정 갈등 초기부터 불거졌다. 지난 3월 의사 온라인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에 병원에 남은 전공의 명단이 공유된 뒤 7월에는 의대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실명까지 공개한 명단이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유포됐다. 지난달엔 ‘감사한 의사’라는 이름으로 국외 사이트에 누리집을 만들어 현장에 남은 의사들을 비꼬면서 지금까지의 명단을 총망라한 블랙리스트가 생성됐다. 여기에선 전공의·전임의·군의관·공보의는 물론 복귀를 독려하는 의대 교수까지 열거하는 한편 지난 7일부터는 응급실에서 근무 중인 의사와 군의관 실명까지 공개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직업이 의사이거나 직장이 의료기관으로 등록된 사람이 ‘응급실 꿀팁’ 관련 글들을 올리기도 했다. “119구급차가 아니라 직접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진료 거부 대상이 아니다. 진료 거부 때는 병원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거나 “카메라를 켜고 응급실로 밀고 들어가라”는 내용이다.
응급실 현장 의사들은 “잘못되고 위험한 정보”라고 입을 모았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응급의료법)은 응급의료 거부를 금지하고 있지만, 이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할 때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의료진 부족은 정당한 진료 거부 사유에 해당한다.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경증·비응급 환자가 병원을 찾을 경우, 인력 부족을 겪는 응급 의료 현장은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런 글들은 현장에 남은 의료진을 괴롭히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수도권 대학병원의 한 교수는 “지금도 응급실에서 밤새 진료하는 의료진에게 ‘이렇게까지 해도 현장에 남아 있을 거냐’ 비꼬는 글”이라며 “환자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의료 현장에서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이런 글은 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경찰은 우선 ‘의사 블랙리스트’ 사건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청은 이날 “(의사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42건을 수사해 48명을 특정하고 32명을 송치하는 등 신속·엄정하게 조치 중”이라며 “최근 아카이브 등 해외사이트는 용의자 2명을 우선 특정해, 1명은 조사 후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나머지 용의자 1명에 대해서도 압수수색 등 강제조사를 진행 중이며, 추가로 특정한 아카이브 접속 링크 게시자 3명은 스토킹처벌법 위반 방조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논란이 커지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블랙리스트 작성 중단을 당부했다. 의협은 “일명 응급실 블랙리스트 작성·유포로 의료계 내 갈등이 불거지고 국민들께 우려를 끼친 데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의료계 내부 갈등은 현 의료대란 사태를 유발한 정부의 오판을 초래해 사태 해결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각별히 유념해, 명단 작성·유포를 중단해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한겨레 이지혜, 임재희 , 장나래 기자 /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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