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 지난해 국내 노동시장의 임금체불 총액은 약 1조7845억원으로, 올해는 상반기에만 1조436억원의 임금체불이 발생해 연말까지 사상 최고치인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전문가와 노동계는 ▲임금체불 관련 형사처벌의 공소시효 연장 ▲체불 임금액에 대한 제재 수단 강화 ▲적극적 사건 조사와 상담 지원강화 등의 대안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은 10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다룬 ‘임금체불 근절대책·제도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먼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천노동교육상담소 이동철 실장은 ‘현장 상담사례로 살펴본 임금체불의 실태와 해결 방안 제언’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이 실장은 “하루에도 수십명이 임금을 떼이는 억울한 일이 생기지만 임금체불 이슈는 고용노동부가 임금체불근절을 위한 특별 지도를 하는 설과 추석 명절 때에만 주목받는다”며 “국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 이후 경영 환경의 악화로 이제 임금체불의 피해는 단순히 중소 영세 사업장 노동자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전체 노동시장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임금체불 근절은 노동조합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상담통계는 임금체불의 전체 피해 노동자의 다수가 30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노동조합의 보호 울타리 밖에 있기에 도움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노총 산하 부천상담소가 운영하는 인터넷 노동 상담 사이트 ‘노동 OK’에서 지난해 임금과 퇴직금 관련 상담은 943건으로, 2022년 772건, 2021년 734건에 비해 최근 3년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현장 사례를 바탕으로 ▲임금체불 관련 형사처벌의 공소시효 연장(기존 3년→5년) ▲체불 임금액에 대한 배액 상환 의무 등 제재 수단 강화 ▲적극적 사건 조사와 상담 지원강화 ▲임금체불로 인한 자발적 이직 시 실업 인정 요건 완화 등의 제도적 개선 방안이 제시됐다.
가장 먼저 소멸시효 기간의 연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앞선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라 임금체불죄의 공소시효는 3년에서 5년으로 연장됐지만, 민사상 임금채권의 소멸시효(3년)와 공소시효(5년) 간 차이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권오성 교수는 “사용자의 임금 지급 의무는 소멸했지만 공소시효는 완성되지 않아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사상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를 5년으로 연장해 소멸시효와 공소시효 간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천노동교육상담소 이동철 실장도 현장의 체불 상담사례들을 전하며 “민사상 영역에서 임금채권 소멸시효를 5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은 피해 노동자의 임금 청구권을 회복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며 시급한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도록 심리를 강제하는 수단을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뒤따랐다.
권 교수는 “‘임금체불로 인한 이득과 손실을 저울에 달아 예상되는 손실보다 이득이 크다’라고 판단하는 경우, 사용자는 임금체불에 나아가게 된다”면서 “임금 체불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임금체불로 인해 사용자에게 발생하는 손실 즉,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사용자가 임금을 지급할 재원을 보유하지 못한 경우 미지급된 임금채권이 누적되는 것을 줄이는 방법과 임금채권의 집행에 적용될 책임재산의 범위를 확장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실장은 임금체불 피해 노동자를 위한 적극적인 사건 조사와 상담 지원 강화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채권단 입장에서는 기업이 밀린 대금을 받아내기 전에 노동자에게 임금 체불액이 먼저 지급되는 상황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대규모 임금체불이 발생하면 기업 존립을 이유로 노동자의 권리 주장이 제약받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자들은 밀린 임금을 기대하며, 어려운 기업 경영 상황 속에서 이직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개인의 경력 형성 기회도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임금체불 노동자는 가정 경제에 위기를 맞고, 4대 보험료 체납으로 신용이 하락하는 등 이중적인 피해를 겪게 된다는 게 이 실장의 주장이다.
또한 그는 “고용보험법 시행규칙에 따라 사용자가 임금을 체납하거나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 자발적으로 이직하더라도 구직급여를 지급하지만, 그 요건이 까다롭다“면서 “사용자의 임금체불 행위가 발생해도 2개월을 채워 퇴사하거나 실업급여를 포기하고 회사를 관둬야 하는데, 이때 피해 노동자는 자기 책임이 아닌 이유로 실업의 위기에 처하고도 고용 보험 혜택을 보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에 빠진다“고 비판했다.
이 같이 임금체불로 인한 자발적 이직시 실업 인정을 받기 어려운 실태에 대한 대안도 나왔다.
이 실장은 “정부는 ‘이직 전 1년 내에 2개월 이상 임금체불 또는 최저임금 위반이 발생해야 실업을 인정한다’는 고용보험법 시행규칙을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며 “임금체불과 최저임금 위반이 1회 이상 발생한 경우 이를 이유로 자발적으로 이직한 노동자도 실업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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