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모든 생물의 세포는 ‘유전자’에 의해 통제된다. 이 ‘살아있는 설계도’는 생물의 세포가 각각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정보를 저장, 발현한다. 인간의 경우 약 2만~2만5,000여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유전자를 통제할 수 있다면 질병의 발병 자체를 막거나 몸의 항체를 강화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첨단바이오 산업계 핫이슈로 떠오르는 분야가 있다. 바로 ‘RNA 치료제’다. ‘RNA(리보핵산)’는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유전물질이다. 즉, RNA의 특정 유전정보를 삽입, 제거한다면 질병 원인 유전자 발현 자체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고성능 신약 개발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전 세계 제약기업들의 투자도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Markets and markets)’에 따르면 2023년 기준 RNA 치료제 시장 규모는 137억달러(약 18조7,320억원)규모다. 오는 2028년에는 180억달러(약 24조6,114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5.6%에 이른다.
국내 제약기업들 역시 이 같은 시장 흐름에 맞춰 RNA 치료제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릭스(OliX)’는 이 중 가장 주목받는 기업 중 하나다. 지난 2010년 설립된 올릭스는 RNA 기반 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 기업이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박준현 올릭스 연구소장을 만나 올릭스의 RNA 치료제 연구 현황과 국내 관련 산업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올릭스는 어떤 곳인가
“올릭스는 RNA 간섭 플랫폼 기반 신약 개발 회사다. 2010년 ‘비엠티’라는 이름으로 설립한 후 2014년 올릭스로 사명을 바꿨다. 핵심 사업은 ‘RNA 간섭(RNA interference) 플랫폼’을 원천기술로 이용, 난치성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다. 올릭스는 자체 개발한 RNA 간섭 플랫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술력도 글로벌 RNA 간섭 산업계서 탑 5위 안에 든다고 자부한다. 이를 기반으로 글로벌 기술이전 및 파이프라인(기업에서 진행 중인 신약개발 프로젝트) 확장을 통해 세계 3대 치료제 기업 및 첨단 바이오 신약 기술 연구기관으로 발돋움하는 것이 목표다.”
-RNA 치료제 연구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있다면
“2000년도 초반, RNA 간섭과 관련해 바이오·생명과학계의 주목도가 크게 올랐다. 특히 2006년 RNA 간섭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후끈 달아올랐다. 1998년 최초 RNA 간섭현상 규명한 앤드루 파이어 스탠퍼드대학교 교수와 크레이그 멜로 MIT 의대 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면서다. RNA 간섭은 RNA 분자가 세포 내에서 특정 유전자를 발현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를 이용하면 질병 발생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사전 차단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보면서 생화학분야를 전공하고 있었던 당시, RNA 간섭 분야를 선택해 연구를 하고 싶었다. 이에 관련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 RNA 간섭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쉽지만은 않은 길이었을 것 같은데
“모든 과학 분야에는 ‘하이프사이클(hype cycle)’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신기술 등장 후 폭발적 성장, 쇠퇴기, 안정기를 나타내는 과정이다. △기술 등장 △기대 정점 △실망 △성숙 △안정 단계로 이뤄진다. RNA 간섭에 대한 기대가 클 당시 대학원을 진학했지만 과정 중에 ‘실망’ 단계에 접어들었다. 당시만해도 RNA 간섭 기술이 신약 개발 상용화 적용까지 아직 힘들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연구기관, 글로벌 제약사(빅파마)들도 관련 사업 분야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때문에 RNA 간섭 연구 성과로 학계에 남아야할까, 산업계로 가야할까 혼란스러웠다. 대학원 졸업 후 일한 국내 바이오 대기업도 RNA 간섭 분야와는 거리가 멀었다. 많은 고민을 겪던 2017년, 이동기 대표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올릭스에서 RNA 간섭 분야 연구를 해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이에 다시 한 번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는 올릭스로 오게 됐다.”
-현재 올릭스에서 중점 연구 중인 RNA 간섭 기술은
“‘비대칭 RNA 간섭 플랫폼(asiRNA)’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올릭스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유전자 억제기술이다. ‘짧은 간섭 RNA(small interfering RNA, siRNA)’는 19~20개 염기쌍으로 이뤄진 짧은 RNA 조각이다. 세포 내에서 특정한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RNA 간섭 플랫폼 치료제 개발의 핵심 원리다. 하지만 siRNA의 반대 strand (sense strand)이 원하지 않는 타겟에도 결합할 수 있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올릭스만의 FTO를 확보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바로 ‘asiRNA’다. 일반적인 siRNA 플랫폼의 RNA 구조를 sense strand의 길이를 줄여 비대칭 구조로 변경하고 다양한 화학적 변형을 가해 안정성과 전달 효율을 개선했다. 이렇게 하면 기존의 siRNA와 동일한 유전자 억제 효율을 가지면서도 sense strand에 의한 오프타겟 부작용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asiRNA를 기반으로 한 기술은 무엇이 있는가
“올릭스는 asiRNA을 기반으로 개발한 두 가지 기술을 보유 중이다. ‘GalNAc-asiRNA 플랫폼’과 ‘자가전달 비대칭 siRNA 플랫폼(cp-asiRNA)’이다. 먼저 ‘GalNAc’은 galactose에서 유래된 당 분자로 간세포에 발현되는 ASGPR수용체에 결합력이 높다. GalNAc-asiRNA 플랫폼은 이 같은 특성을 이용, 간 질환 발생 유전자 억제가 가능한 RNA를 GalNAc을 이용해 간세포로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대사이상 지방간염(MASH)이나 간 섬유화 등 난치성 간질환 치료에 매우 효과적인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 두 번째 ‘cp-asiRNA’는 15~16개의 짧은 염기쌍을 가진 비대칭 RNA 간섭 플랫폼이다. 별도의 전달체 없이도 세포막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높은 효율로 원하는 유전자만을 억제할 수 있다. GalNAc-asiRNA 플랫폼은 주로 간 질환 치료에, cp-asiRNA는 피부, 눈, CNS 타겟팅 등 국소 투여 치료제 개발에 사용된다.”
-현재 여러 임상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올릭스는 RNA간섭 치료제 플랫폼 활용, 다양한 난치성 질환 대상 치료제 개발하고 있다. 파이프라인은 총 16개가 진행 중이다. 그중 미국, 호주 등 국가에서 ‘OLX101A(비대흉터), ‘OLX301A(건성 및 습성 황반변성)’, ‘OLX104C(탈모)’, ‘OLX702A(대사이상 지방간염(MASH)/비만)’ 등 4종의 프로그램이 글로벌 임상테스트에 들어갔다. 또한 심혈관 질환, 대사성 질환을 위한 ‘OLX706A’, ‘OLX706B’, ‘OLX706C’ 등 3종은 현재 중국 한소제약과 공동개발을 진행 중인 프로그램이다.”
-개발 완료된 핵심 치료제가 있다면
“대표적으로는 지방간염(MASH) 치료 프로그램 ‘OLX702A’을 꼽을 수 있다. 대사이상관련 지방간염(MASH) 발병 유전자 발현을 억제, 지방간과 간염, 섬유증을 개선하는 RNA 간섭 치료제다. 타겟 발굴 당시 ‘영국(UK)바이오뱅크’ 등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GWAS(전장유전체 연관분석) 결과를 분석하고 MARC1이라는 유전자에 주목을 하게 됐다. MARC1 유전자에 변이가 있을 때 지방간 및 간섬유화의 빈도가 대폭 감소하는 것이 보고됐고,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률도 40%가 줄었다. 이에 MARC1의 발현을 억제하는 GalNAc-asiRNA 치료제 OLX702A 개발에 착수했다. 실험용 쥐, 원숭이를 활용한 동물실험 결과 지방간염/간섬유화 증상 및 기타 지표가 크게 회복된 것을 확인했다. 특히 생쥐 간섬유화 모델에서 지방간염으로 인한 간 섬유화가 최대 50% 감소하는데 성공했다. 현재는 호주에서 임상 1상을 진행 중에 있다.”
-OLX702A가 비만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고
“사실 비만 치료를 목표로 연구·개발를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OLX702A을 다양한 동물 모델에서 테스트 한 결과, 체중 및 체지방 감소에 큰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 생쥐 비만 모델의 경우 2주 1회 OLX702A를 투여했을 시 20%이상의 체중 감소를 확인했다. 또한 다른 비만·당뇨병 치료제인 ‘티제파티드(Tirzepatide)’와 병용 투여한 결과 최대 40% 가량의 체중 감소 효과를 확인했다. 티제파티드 투여를 중단했을 시 발생하는 요요현상도 개선효과가 있었다. 이 같은 항비만 효과에 대한 정확한 기전은 연구 중에 있다. 일부 확인된 바에 따르면 간 분비 조절 호르몬에 의한 작용이 주요 기전으로 추정된다. 이에 힘입어 차기 파이프라인 역시 비만 치료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향후 파이프라인은 지방세포 발현 유전자를 직접 억제시키는 접근 방법도 포함하고 있다. 현재 구축한 지방 전달 플랫폼의 경우 단회 투여시 약 80% 이상의 유전자 억제 효력을 확인했다.”
-탈모 신약 연구도 관심이 가는데
“탈모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탈모는 ‘남성형 탈모’다.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DHT’로 변해 발생한다. DHT는 두피의 모유두 세포에 작용해 모발 성장 주기를 단축시키고 모근을 가늘게 만든다. 때문에 탈모 치료제로는 ‘피나스테라이드’와 같이 DHT 생성을 막는 약물이 사용된다. 하지만 DHT 생성 과정을 저해할 경우 성호르몬 관련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올릭스에서는 DHT가 결합하는 안드로겐 수용체(androgen receptor, AR)의 발현을 억제하는 RNA 간섭 치료제를 개발했다. 이것이 ‘OLX104C’다. OLX104C는 현재 호주에서 진행 중인 임상 1상에서 모든 환자 투약을 마쳤다. 그 다음 8주간의 추적 관찰해 안전성을 확인했다. 구체적인 결과 분석을 마치고 연내 임상시험 결과 보고서를 수령할 것으로 예상한다. 해당 임상은 국가신약개발재단(KDDF)의 개발비를 지원받아 수행 중이다.”
-주목할 만한 과학적 연구 성과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2020년 발표한 연구를 꼽을 수 있다. ‘L-Type Calcium Channel Blocker Enhances Cellular Delivery and Gene Silencing Potency of Cell-Penetrating Asymmetric siRNAs.’이라는 연구 논문으로 발표됐다. 이는 cp-asiRNA 플랫폼을 개선시키기는 저분자 화합물을 발굴하기 위한 일환으로 2,000 이상의 저분자 화합물 스크리닝을 수행하였다. 이를 통해 유전자 억제 효력을 증진 시키는 화합물로서 ‘L형 칼슘채널차단제(CCB)’를 발굴하였고 이에 대한 실제 치료제 적용 가능성을 연구 중이다.”
-정부 및 관련 기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신약개발은 상당히 오래 걸린다. 보통 개발, 임상, 상용화 과정은 10년 이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 지원 과제는 단기적 안목에 부족한 기간, 비용을 지원한다. 따라서 국내 바이오·신약·생명공학 분야 산업과 연구를 확장하기 위해선 바이오 기업의 제약바이오 기술을 평가하고 지원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부 여러 부처의 바이오 지원사업을 총괄하고 조율하는 역할의 컨트롤 타워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처럼 짧은 기간의 지원은 지원 효과가 미미하다. 더불어 RNA 치료제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이런 인식 개선이 뒷받침됐을 때 우리나라의 RNA 치료제 연구, 더 나아가 바이오 산업 전반이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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