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애플TV+(Apple TV+) 시리즈 ‘파친코(Pachinko)’로 새로운 도전을 택하며 스펙트럼을 넓힌 배우 이민호가 시즌 2로 또 한 번 글로벌 존재감을 뽐냈다. 한층 묵직하고 깊어진 열연을 보여준 그는 “작품을 대하는 사고 자체가 자유로워졌다”면서 ‘파친코’를 통해 배우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고 했다.
이민호는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살기 위해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강인한 어머니 ‘선자’(윤여정/김민하 분)의 시선을 통해 사랑과 생존에 대한 광범위한 이야기를 4대에 걸친 연대기로 풀어낸 ‘파친코’에서 시즌 1에 이어 고한수를 연기했다. 한수는 젊은 시절 선자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인물이자 격변의 시대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주어진 운명을 개척하고 대자본가로 우뚝 서는 야망 가득한 캐릭터다.
시즌 1에서 일본이라는 낯선 땅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순수한 청년의 모습부터 냉철하고 서늘한 사업가로의 변화, 야망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복잡한 내면을 유려하게 그려내 호평을 얻었던 이민호는 시즌 2에서 한층 깊고 흡입력 강한 연기로 서사를 이끌며 전 세계 시청자를 매료하고 있다.
다양한 굴곡을 거치며 더욱 단단해진 인물의 내면부터 쌓아온 명성을 잃지 않기 위해 사랑하는 선자를 떠나보냈지만 여전히 선자와 노아(아들)의 곁을 맴돌며 애틋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까지 깊고 진한 눈빛과 감정 연기, 탁월한 완급 조절로 섬세하게 빚어내며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이민호는 시즌 2 공개 소감과 글로벌 제작진과의 협업 과정 등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오디션까지 뛰어들며 새로운 도전을 택한 그는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파친코’가 갖는 특별한 의미를 짚기도 했다.
-시즌 1 호평을 받은 데 이어 시즌 2로 돌아왔다. 소감은.
“‘파친코’는 어떻게 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작품인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것들이 빨라지고 굉장히 간결해지는 시대에 이렇게 깊고 느린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그것을 행하는 배우 입장에서도 깊은 감정을 느끼고 다룰 수 있어서 좋았고 그 과정을 다시 한번 할 수 있어서 좋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선자를 향한 한수의 복잡한 감정은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했나.
“복잡할 게 없다. 선자를 놓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를 정의할 때 사랑 이상의 무언가라고 생각했고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까’라고 질문을 던지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한수에게는 선자와 유일한 핏줄인 노아밖에 없겠더라. 한수는 온전히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선자에게 늘 부정당하고 감정에 충돌이 일어나고 흔들린다. 선자에게 부정당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연기했다.”
-한수를 통해 느끼거나 깨달은 게 있다면.
“나도 한수처럼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잘되려고 욕망을 표현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 과정이 건강한 쪽으로 발현됐다면 한수는 그 경험을 건강하게 발현할 기회조차 없던 시대에 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느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하게 되는 지점이 있었다. 한수를 통해 성장을 했다기보다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게 큰 의미다.”
-외국 제작진과의 작업은 어땠나.
“포지션별로 주요 결정권자들이 있었고 질문이 많은 게 좋았다. 소품부터 음악, 의상 등 모든 것들이 다 불편하지 않았고 ‘어떻게 생각해’부터 시작됐다. 치열한 질문을 계속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밀도 있고 디테일이 살 수 있었던 지점들이 꽤 많은 것 같아서 그런 점이 좋았다.”
-오디션을 통해 시리즈에 합류했다. 새로운 도전이었는데, 도전을 마치고 달라진 게 있다면.
“늘 뭔가를 책임지고 작품 전체를 끌어가야 하는 작품 위주로 했는데 ‘파친코’는 인물들이 나뉘어 있고 선자의 일대기를 기점으로 나뉜 형식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전에는 느끼지 못한 자유를 많이 느꼈다. 개인적으로도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원했을 때 만난 작품이라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어떤 점에서 자유로웠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대본을 보거나 대화를 하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잘 캐치해내는 편이다. 작가의 의도, 감독의 의도를 파악해서 최대한 존중하고 맞추려고 노력하는 편의 배우였다. 그런데 ‘파친코’에서 한수는 그런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치열하게 준비했다. 작가와도 이야기하다 보면 언성이 높아질 정도의 토론을 꽤 했다. 대본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도 처음 보고 느낀 감정들을 다 배제하고 지워놓고 다르게 표현하려고 하기도 했다. 사고 자체가 자유로워졌다. 다른 언어를 쓰는,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하면서 끈이 풀리는 듯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한류스타’ ‘로맨스킹’ 등 배우를 향한 수식어가 많고 대중의 기대치도 높다. 부담감은 없나.
“결국 이민호를 만드는 나다. 수식어들은 상황에 따라붙는데 그것에 연연하거나 무게중심이 쏠리는 순간 불행해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원하는 것, 표현하고 싶은 것, 공감하는 게 무엇인지 늘 중요한 사람이다. 그 작업을 10년 넘게 하면서 번아웃이 온 시기도 있었다. 그때 ‘파친코’ 오디션 기회가 왔고 대본이 좋았고 외국 자본을 들여 한국 이야기를 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다행히 그 과정 속에서 좋은 배우, 사람들을 만나 자유롭게 해소하면서 인간 이민호도 같이 건강해진 느낌이다.”
-앞으로 계획도 궁금하다. 어떻게 채워나가고 싶나.
“나는 가까운 미래도 그려본 적이 없다. ‘한류 스타’ ‘로맨스 장인’ ‘청춘 스타’ 이런 것들도 의도한 바는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구준표도 그렇고 김탄도 그렇고 다 단점이 있고 결핍이 있던 인물인데 잘 포장되고 잘 표현됐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된 것 같다. 부족하고 성장의 여지가 있는 캐릭터, 이야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내가 채울 수 있는, 나의 감성으로 채울 수 있는 여백이 있는 인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하고 싶다.”
-시즌 2는 시청자들이 어떤 감상을 가져가길 바라나.
“시즌 2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나 감성이 풍부해졌다고 생각한다. 더 풍성해지고 극적인 느낌들이 더 많이 추가된 것 같다. 큰 의미를 부여해서 본다기보다 시즌 2 자체만으로도 느끼고 재밌게 볼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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