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보험료율이 현행 9%에서 13%로 오른다. 은퇴 후 받는 연금액의 수준인 소득대체율은 42%로 더 낮아지지 않는다. 보험료율은 단계적으로 올리되 인상 속도는 장년층이 청년층보다 빠르게 했다.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자동조정장치(자동안정화장치)를 도입한다.
보건복지부는 4일 제3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연금개혁 추진 계획’을 심의해 확정했다고 밝혔다.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연금개혁이 불발된 지 4달 만이다. 정부는 내년 중 관련 법률이 개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가 조속히 연금특위 등 논의 구조를 마련해 개혁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소득대체율 매년 0.5%포인트 인하 중… 공론화 반영해 올해 수준 유지
복지부가 발표한 국민연금 개혁 정부안은 보험료율이 현행 9%에서 13%로 4%포인트 인상하는 내용을 담았다.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보험료율 13%’ 안이 반영됐다. 다만 202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공적연금 평균 보험료율(18.4%)보다는 낮다.
소득대체율(가입기간 평균 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은 42%로 조정한다. 소득대체율은 2008년 50%로 조정된 후 2028년 40%를 목표로 매년 0.5%포인트씩 인하되고 있으나, 올해 수준인 42%를 유지하는 셈이다. 복지부는 2007년 연금개혁 취지를 고려해 당초 계획대로 소득대체율이 40%까지 낮아지는 게 바람직하지만, 국회 공론화 결과를 고려해 42%를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가입자 줄고 기대여명 늘어나면 연금액 물가만큼 안 오른다
정부가 2023년 말 기준 인구추계로 계산한 결과 현행 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 제도가 유지되면 국민연금 기금은 2041년 적자로 돌아서 2056년 고갈된다. 복지부는 대책으로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검토한다.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 상황 등과 연동해 연금액 또는 수급 개시 연령을 조정하는 제도로, OECD 회원국 38국 중 24국이 운영 중이다.
현재는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연금액이 매년 인상된다.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되면 물가상승률에서 최근 3년 평균 가입자 수 증감률, 기대여명(특정 연도 출생자가 향후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연수) 증감률 등 ‘조정률’을 반영하게 된다. 물가가 2% 올랐는데 최근 3년 평균 국민연금 가입자가 1% 줄었고 기대여명이 0.5% 늘었다면 연금액은 0.5%(2%-1%-0.5%)만 오른다.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2%로 제도가 바뀌면 기금 고갈 시점이 2056년에서 2072년으로 16년 늦어진다. 자동조정장치를 연금액 지출 금액보다 보험료 수입이 적어지는 2036년에 도입하면 기금은 2088년까지 고갈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복지부는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되어 연금액이 물가상승률만큼 오르지 않더라도 손에 쥐는 금액은 낸 보험료보다는 많도록 설계했다.
◇보험료 덜 내고 더 받아가는 중장년층… 더 빨리 더 내게 해 청년층 불이익 해소
정부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4%포인트 오르더라도 연령대에 따라 인상 속도를 달리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매년 50대는 1.0%씩, 40대는 0.5%씩, 30대는 0.33%씩, 20대는 0.25%씩 올리는 방안이다. 보험료율 13%를 달성하는 데 50대는 4년, 20대는 16년 걸린다.
보험료율 차등 인상은 청년층에게 유리하고 중장년층에게 불리한 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연금개혁 과정에서 청년층의 부담이 중장년층보다 커진 것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1995년 국민연금에 가입한 50대는 보험료로 월 소득의 6%만 내고 소득대체율은 70%를 보장받았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는 보험료율은 9%로 높아졌지만 소득대체율은 60%였다. 과거 국민연금 혜택이 좋을 때 일찍 가입한 덕분에 실질적인 소득대체율은 50%가 넘는다. 반면 20대가 올해 국민연금에 가입하면 소득대체율은 42%에 그친다. 반면 보험료율은 13%로, 50대가 처음에 가입했을 때의 4배가 넘는 금액을 내야 한다.
가입자가 나이 들어도 인상 속도는 바뀌지 않는다. 20대가 30대에 진입하더라도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0.33%가 아닌 0.25%씩 오른다. 2040년부터는 모든 세대에 13%의 보험료율이 적용된다.
◇해외·대체 투자 확대해 기금운용 수익률 높인다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운용 수익률은 1.0%포인트 이상 높인다. 국민연금이 1988년 도입된 후 작년 말까지 누적 수익률은 연 5.92%이다. 작년에 실시한 5차 재정추계 당시 설정한 장기 수익률은 4.5%였으나, 이를 5.5%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수익률이 높은 해외·대체 투자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전문 인력 확충과 해외 사무소 개설도 추진한다.
복지부는 국민연금은 기금이 고갈되더라도 국가가 연금액을 지급한다는 근거를 법에 명확히 규정하기로 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미래에 연금을 못 받을 것 같다’는 우려가 있다는 점을 반영했다.
◇출산크레딧 첫째 아이부터 적용, 군 복무 크레딧도 확대
그동안 주요국 공적연금보다 부족하다고 지적된 부분은 보완한다. 현재는 소득 공백 기간을 가입 기간으로 인정해주는 출산 크레딧을 둘째 아이부터 적용하고 있으나 첫째 아이로 확대한다. 군(軍) 복무 기간도 현재 6개월만 연금 가입 기간으로 인정해주는 것을 전 기간(육군·해병대 18개월, 해군 20개월, 공군·사회복무요원 21개원)으로 확대를 추진한다.
현재 국민연금은 59세까지만 의무가입 대상이다. 복지부는 기대여명이 늘어나고 경제활동을 하는 고령자가 늘어나는 것을 고려해 의무가입연령을 64세로 상향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다만 고령자 고용 여건 개선과 병행해 장기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기초연금 받으려면 해외 소득·재산 신고하도록
정부는 소득 하위 70%인 65세 이상 노인에게 올해 단독기구 기준 월 33만4810원의 기초연금을 지급한다. 복지부는 2026년에는 소득이 적은 어르신에게, 2027년에는 전체 지원 대상 노인에게 월 40만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 대선 공약인 ‘기초연금 40만원’을 임기 중 달성하는 셈이다.
해외에서 살다가 노후에 국내로 돌아와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초연금 혜택만 받지 못하도록 제도도 개선한다. 19세 이후 5년 간은 국내에 거주해야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해외 소득·재산 신고 의무도 신설한다.
현재는 기초연금을 받으면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른 생계급여가 삭감된다. 기초연금이 소득으로 잡혀 기초생활보장 의료급여 등 다른 급여도 못 받을 수 있는 문제도 있다. 복지부는 생계급여를 받고 있는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추가 지급하고 소득인정액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마련해 추진할 계획이다.
퇴직연금은 규모가 큰 사업장부터 의무화를 추진한다. 퇴직연금 가입자가 합리적인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수익률도 높인다. 노후에 대비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 중도 인출은 어렵게 하고, 담보대출은 활성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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