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여야 대표 회담서 의료개혁 국회 주도 의지
채상병 특검법도 “野 기한 맞춰 당 입장 못내” 견제
李 사법리스크 부각 기싸움…지지층 결집 포석 해석
‘정치력 입증’. 여야 대표 회담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성과는 이 한마디로 축약된다. 한 대표가 추진해 온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문제는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지만, 의료개혁 주도권을 대통령실이 아닌 국회로 가져온 점, 야당의 채상병 특검법 폭주를 견제한 점,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부각하며 여론의 주목도를 높인 점 등이 꼽힌다.
양당이 1일 오후 국회 본청에서 열린 여야 대표 회담 종료 후 공개한 공동발표문에 따르면, 한 대표와 이 대표는 양당의 민생 공통공약 추진을 위한 협의 기구를 운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기구는 정책위의장 등이 포함되는 협의 채널을 구성해 운영될 예정이다.
이는 한 대표가 비쟁점 법안 처리를 위한 민생 패스트트랙을, 이 대표가 민생 공약 협의기구를 각각 제안한 것의 합의점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에서는 육아휴직 확대 등 저출산 관련 법안과 반도체 산업 지원 법안 등을 협의기구에서 논의한다는 구상이었고, 민주당은 가계통신비 부담 경감, 요양병원 간병비 의료보험 지원 등도 논의하자는 의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표가 줄곧 강조해 온 금투세 문제의 경우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다만 주식시장의 구조적 문제 개선 등과 함께 추후 양당이 종합적으로 검토·협의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빈손’은 아니라는 평가다.
여야 대표 회담 내용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의료개혁 관련이다. 한 대표와 이 대표는 추석 연휴기간 응급의료 체계 구축에 만전을 기할 것을 정부에 당부하고, 2025년 의대 정원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의가 불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2026학년 의대 정원 증원 유예와 의료대란특위 구성 등에 공감한 양당 대표는 향후 의료개혁 문제에 대한 국회 차원의 대책을 협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국회 차원의 대책 협의’ 문구에 주목한다. 한 대표가 최근 2026학년도 증원을 유예하자는 내용의 ‘중재안’을 제시하면서 대통령실과 온도차를 보인 만큼, 이번 대표 회담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를 재차 시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 대표가 회담 모두발언에서 “당장의 의료공백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일도 우리 정치의 임무다. 당대표로서 의료개혁의 본질과 동력을 유지하면서 당장의 국민들 염려와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라고 한 것도 향후 이 문제를 대통령실이 아닌 당, 국회에서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채상병 특검법과 관련해서도 한 대표는 거대 야당 주도의 채상병 특검법 추진에 견제구를 던졌다고 평가받는다. 이 대표는 한 대표가 언급한 제3자 추천 방식의 채상병 특검법, 증거조작 특검 등을 수용하겠다며 한 대표의 결단을 압박했다. 하지만 한 대표는 민주당의 일정대로는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은 것으로 전해졌다.
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공동발표문 공개 자리에서 “민주당에서 일방적으로 설정하는 기한에 맞춰서 당의 입장을 낼 수는 없다는 이야기는 나눴다”라며 “국민의힘 내부에서 논의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곽 수석대변인은 또 “이 대표가 ‘제3자 특검법을 수용한다고 하니까 피하는 것이냐’라는 취지로 (한 대표에게) 질문을 하셔서 한 대표가 ‘그럼 민주당 기존 법안을 철회하겠다는 것이냐’ 하니까 이 대표는 ‘모르겠다’고 했다”고도 전했다.
한 대표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부각하며 기싸움을 벌인 것도 한 대표의 정치력이 입증된 사례로 꼽힌다. 한 대표는 민주당의 검사 탄핵에 대해 “곧 예정된 이 대표에 대한 판결 결과에 불복하기 위한 빌드업”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곧 나올 (이 대표에 대한) 재판결과들에 대해 국민의힘은 설령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선을 넘는 발언을 자제하겠다”라며 “그러니 민주당도 재판불복 같은 건 생각하지 않으실 거라 기대한다. 무죄를 확신하고 계시는 듯하니 더욱 그렇다”라고 꼬집었다.
한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이 대표를 향해 1심 결과에 승복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이 대표는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의 강력한 대권주자이자 당 장악력이 한층 공고해진 이 대표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고, 지지층 결집까지 노린 포석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상대가 아파할 수 있는 부분, 상대가 곤란할 수 있는 부분을 강조했고 내가 거기에 대비해서 강조할 수 있는 영역들을 강조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라고 분석했다.
국민의힘은 여야 대표 회담 성과에 대해 “민생과 경제 부분은 향후 입법 과정에서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어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양당 대표께서 오랜만에 만나서 논의한 자리인 만큼 오늘 다 합의할 수 없다. 앞으로 자주 대화의 기회를 갖자고 하신 게 성과이지 않나 싶다”고 평가했다.
한 대표도 대표 회담이 끝난 후 당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무려 11년 만의 여야 대표 회담이었다”며 “22대 첫 정기 국회 개회를 하루 앞두고 개최한 만큼 나만큼이나 당원 동지과 국민 여러분들께서는 정치 복원의 신호탄이 되기를 바라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금투세도 종합적인 검토를 하기로 합의한 만큼, 앞으로도 민생 관련 문제에 대해 무한한 책임감을 가지고 챙겨나가겠다”며 “더 노력하겠다. 그리고 당원 동지와 국민들의 바람과 눈높이에 맞게 변화하고 실천하겠다”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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