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사실이 연일 보도되면서 정부와 정치권에 대책을 마련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주변 사람들의 사진을 성폭력 이미지나 영상으로 바꾸는 성범죄, 즉 디지털 기술로 가짜 사진이나 영상을 만들어 저지르는 디지털 성범죄를 말한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한국이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가장 취약한 국가라는 해외 보안 업체 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제대로 된 규제망이 부족한 현실을 지적했다. 국민일보도 사설을 내고 정부가 강력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상담·치료 등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정부, 딥페이크 성범죄물 보기만 해도 처벌하기로
딥페이크 성범죄 근절을 위해 정부는 지난달 30일 딥페이크 소지·구입을 넘어 단순 시청하는 행위도 처벌하겠다고 했다. 국무조정실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 부처와 함께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을 위한 첫 번째 범정부 대책 회의를 열어 이러한 대책을 마련했고, 오는 10월까지 범정부 종합 대책을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단순 장난이라 둘러대기도 하지만 익명 보호막에 기대 기술을 악용하는 명백한 범죄행위”라며 “관계 당국은 철저한 실태 파악과 수사를 통해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의 뿌리를 뽑아달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지난달 31일 「딥페이크 피해 커지는데…정부 ‘삭제 권한’ 없다」에서 “정부에서 강제로 삭제할 권한도 없는데다 인력 또한 부족해 불법 촬영물 확산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피해자지원센터 관계자는 이 신문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불법 사이트 차단을 요청해도 도메인을 옮겨 새로 불법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피해자지원센터는 지난해 불법 촬영물 24만5416건을 삭제 지원했는데 이는 2019년 9만338건에서 약 2.7배 증가한 수치다. 이중 딥페이크 피해 신고는 2019년 134건에서 올해 781건으로 5.8배 증가했다.
중앙일보는 “기술적 한계 역시 뚜렷하다”며 “현재 불법 영상물 적발은 원본 영상 해시값(고유값) 대조, 피해자 얼굴 등 영상 특징을 수치화한 데이터베이스로 대조, 불법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검색하는 방식 등으로 이뤄진다”고 전했다.
해당 업무 경험이 있는 수사관은 중앙일보에 “해시값은 영상 사이즈만 변경해도 바뀌고 영상 DB화도 모든 게시물을 잡아내지 못한다”며 “그러다 보니 담당자가 영상 내용을 외우며 며칠씩 야근하는 게 예삿일”이라고 했다. 이에 대검찰청은 “불법 사이트들의 주기적인 도메인 변경과 IP추적 회피 등에 대응하기 위해 시스템 고도화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결국 피해자가 민간 업체인 ‘디지털 장의사’를 찾는 실정이다. 중앙일보는 “디지털 장의사는 의뢰인 요청에 따라 온라인에 올라온 각종 개인정보 삭제를 돕는데 피해자지원센터처럼 메일을 보내 딥페이크물 등의 삭제를 요청하는 식”이라며 “텔레그램에서 유포되는 딥페이크물은 삭제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피해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사설 업체에 수백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딥페이크 근절에 앞서 기술 개발 난제들 짚어줘야
이날 최연진 IT전문기자는 한국일보 칼럼 「딥페이크 근절에 앞서 필요한 것들」에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지만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대책은 오히려 걱정을 키울 수 있다”며 “정부나 정치권에서 해야 할 일은 설익은 대책 발표가 아니라 기술 개발 난제들을 현실적으로 짚어주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최 기자는 “안타깝게도 아직 국내에는 본인도 모르는 딥페이크 사진과 영상을 찾아내는 기술이 없다”며 “AI(인공지능)가 가짜 사진과 영상을 찾아내려면 반드시 원본을 학습해야 하고 원본 자료에 얽힌 초상권, 저작권, 개인정보보호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해줘야 하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딥페이크 탐지를 위해 AI에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게 꺼림칙할 수 있다”고 전한 뒤 “세금을 들여 정확도와 탐지율이 떨어지는 추론 기술을 개발하면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 기자는 “보안업계에서는 딥페이크보다 페이크보이스를 더 우려한다”며 “페이크보이스는 AI나 음성조작 소프트웨어로 성대모사하듯 타인의 목소리를 흉내내 부모, 친구, 자식의 목소리로 위장한 페이크보이스를 보이스피싱 범죄에 악용해 돈을 빼앗긴 사례가 늘고 있고 급기야 피해자가 목숨을 끊는 사고까지 일어났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페이크보이스 탐지 기술도 아직 국내에 나온 게 없다”며 “대검이 지난 5월 86억 원 예산을 들여 2027년까지 페이크보이스 탐지 기술 개발 사업을 발주했으나 최근 입찰 업체 부족으로 유찰됐다. 역시 데이터 활용 여부 등이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관련해 사회적 합의와 정부와 정치권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딥페이크 성범죄, 한국이 ‘전세계적 문제의 진앙’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세계 딥페이크 피해자 53% 한국인’, 정치인들 책임이다」에서 “미국 사이버 보안 업체 ‘시큐리티 히어로’가 지난해 7~8월 딥페이크 사이트 등에 올라온 영상물 9만5820건을 분석했더니 성착취물에 등장한 개인 중 53%가 한국인이었다”며 “피해자 중 미국인이 20%로 둘째로 많았는데 한국과 격차가 컸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내용을 전하면서 ‘한국이 전 세계적 문제의 진앙임을 시사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이 조사가 이뤄진 지난해 7~8월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 등장 이후 일반인들도 딥페이크를 쉽게 만들게 됐던 때였지만 그 자체로 심각한 범죄인데 우리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며 “그러다 여대생, 여군, 교사, 심지어 초·중·고교생까지 딥페이크 성범죄 대상으로 삼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규제망이 허술한 점에 대해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딥페이크 성범죄 영상을 제작해도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드물고 단순 소지한 경우는 처벌대상도 아니다. 딥페이크를 제작하거나 소지한 사람도 유포할 목적이 입증돼야 처벌할 수 있다 보니 쉽게 법망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라며 “영국 법무부는 지난 4월 딥페이크 음란물을 만들기만 해도 유포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하겠다고 하자 유명 딥페이크 포르노 사이트 두곳이 영국에서 접속을 차단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지금의 사태는 충분히 예견됐던 것이지만 우리 국회는 관련 입법을 방기해왔다”며 “그러다 전 세계적 문제의 진앙이라는 지적까지 받게 됐는데 지금이라도 국회가 팔을 걷어불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치료·상담 등 지원대책 마련해야
국민일보는 이날 사설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정부는 대체 뭘 했나」에서 지난 3년간 경찰 수사가 진행된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 피해자 10명 중 6명이 미성년자였다는 통계를 인용하면서 “정부가 더 일찍 위험신호를 인지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최근 3년간 허위영상물 범죄 검거율(발생건수 대비 검거건수)은 2021년 47.4%, 2022년 46.9%, 2023년 51.7%로 나타났다. 국민일보는 “텔레그램 등 서버를 해외에 둔 SNS는 수사에 협조적이지 않아 수사관이 직접 모니터링하면서 단서를 찾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대화방이 ‘폭파’돼 허탕치는 경우도 많았다”며 “경찰이 사건 접수 단계에서부터 소극적인 경우도 적지 않았고, 경찰이 아니라 피해나자 민간인들이 직접 증거를 수집하거나 피의자를 추적하는 상황도 잇따랐다”고 전했다.
국민일보는 “정부·국회는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뒷받침할 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수사기관이 강도 높은 수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죄의식 없는 가해자들이 양산되면 범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있는 만큼 딥페이크가 중대한 범죄임을 인식시킬 수 있는 교육도 시급하다”며 “아울러 사회의 보호망 밖에서 고통받았던 그동안의 피해자들을 위한 심리 상담·치료와 법률적 지원에도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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