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 전반에 1000원짜리 한 장으로 살 수 있는 초저가(超低價) 상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1000원 맥주, 1000원 스낵, 1000원 두부처럼 다양한 상품들이 최근 한 달 사이 저렴하게 나타났다. 고물가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1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가 지난달 1일 선보인 1000원 맥주 타이탄은 출시 3일 만에 처음 준비한 500㎖ 7만 캔이 모두 팔렸다. 시중에서 1000원 내외로 살 수 있는 주류는 대부분 주세법상 기타 주류에 속하는 발포주가 대부분이다. 발포주는 맥주 맛을 내는 핵심 성분 맥아 비율이 10% 수준이다.
타이탄은 발포주가 아니다. 식품 유형상 맥아 비율이 60%를 넘는 맥주에 속한다. 맥주는 발포주보다 맥아나 홉 같은 원재료가 많이 들어간다. 주세율도 72%로 30%인 발포주에 비해 40%포인트(P) 이상 높다.
홈플러스는 원재료를 대량·일괄 매입해 원가를 낮췄다. 여기에 소규모 브루어리에 제조를 맡겨 세금을 줄였다. 주세법에 따르면 저장조 규모가 120킬로리터 이하 맥주 양조장은 생산량에 따라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 금액)이 최대 60%까지 줄어든다.
강재준 홈플러스 차·주류팀장은 “외식 물가가 계속 오르면서 집에서 술을 마시는 홈술족이 증가한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15일부터 2차 물량을 받아 타이탄 맥주 판매를 재개했다. 앞으로 총 50만 캔을 팔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홈플러스는 전했다.
세븐일레븐 역시 스페인 맥주 버지미스터 500㎖와 덴마크 맥주 프라가 프레시 500㎖를 한 캔 1000원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세븐일레븐은 앞서 4월과 6월 일시적으로 두 맥주를 1000원에 선보였다. 당시 출시 5일 만에 각각 20만 개, 25만 개가 팔렸다.
남건우 세븐일레븐 음료주류팀 선임MD는 “와인, 위스키와 달리 맥주는 매일 일상에서 편하게 마시는 상품”이라며 “고물가 시대에 들어서면서 저렴한 맥주를 찾는 소비자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오리온은 2분기 실적을 공개하면서 “한국 법인에서 소비자 부담을 더는 1000원 스낵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최근 포카칩과 스윙칩, 꼬북칩 같은 과자 7종류를 1000원 균일가로 선보였다. 가령 기존 마트에서 판매하던 오리온 포카칩은 66g 기준 1500원이었다. 오리온은 같은 제품을 50g으로 줄이고, 가격을 1000원에 맞췄다.
오리온은 “소비자 제품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라며 “슈링크플레이션(용량을 줄이면서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는 현상)과 다르다”고 말했다. 오리온은 소비자 반응을 살펴보고 1000원 스낵 브랜드를 순차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식음료 가공식품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신선식품 분야에서도 초저가 식품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CU는 자체브랜드 헤이루(HEYROO)로 1000원 두부를 선보였다. 이 두부는 300g으로 시판 브랜드 상품과 중량이 동일하다. CU에 따르면 다른 브랜드 비슷한 상품보다 가격이 최대 45% 정도 저렴하다. CU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식품안전관리인증(HACCP)을 받은 국내 중소 두부 제조 공장 10여 곳을 찾아다녔다. 여기에 중간 유통 과정을 생략한 100% 직거래 시스템으로 비용을 최소화했다고 CU는 전했다.
SSG닷컴은 깐마늘과 대파, 참타리버섯 같은 필수 요리 재료 6종 채소를 하루 채소라는 이름으로 1000원 균일가에 팔고 있다.
저가(低價) 전략은 유통기업 마케팅의 기본이자 시작이다. ‘언제나 저가(Always low prices)’를 내세워 세계 최대 유통업체로 거듭난 월마트가 그 증거다.
국내서도 주요 유통채널은 경기와 상관없이 항상 10원이라도 더 싸게 팔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 이런 ‘10원 전쟁’은 상징적인 최저가를 확보하기 위한 소모전에 가까웠다. 일부 대형마트에서 최저가 상품들은 미끼 상품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나 최근 저가 상품은 미끼를 넘어 간판 상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최근 소비자 가처분 소득은 물가 상승과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먹거리 물가 인상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가처분소득이란 국민소득 중 가계가 임의로 처분이 가능한 소득을 말한다. 7월 외식물가 상승률(2.9%)은 소비자물가 상승률(2.6%)보다 높았다.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꼭 필요한 물건만 구매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마트와 백화점 등 2700개 기업 판매액을 조사한 소매판매액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 줄었다. 4.5%가 줄어든 글로벌 금융위기(2009년 1분기)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한때 유통업계를 주름 잡았던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트렌드는 이른바 ‘요노(YONO·You Only Need One)’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욜로’ 경제가 ‘요노’ 경제를 만났다.
YOLO economy, meet the YONO economy.
코로나 이후 ‘자유 소비 파티’가 막을 내리고 있다.
the free-spending party is coming to an end.
CNN, ‘YOLO is dying’ 뉴스 중
욜로는 먼 훗날을 위해 현재 욕구를 참지 말자는 주의다. 반면 요노는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말이다.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불필요한 구매는 자제하는 소비자를 뜻한다. 요노 주의자들은 품질 좋고 저렴한 ‘똘똘한 한 제품’을 골라 오래 사용하거나, 아예 소유 자체에 집착하지 않는다.
김소형 데이비스앤컴퍼니 컨설턴트는 “대형마트나 편의점 같은 유통 채널은 저렴한 상품부터 고가 상품까지 폭넓게 구비하는 전략을 추구하지만, 경기 침체기에는 절약 지향 소비자가 이탈하지 않게 저가 상품부터 확충한다”며 “이전까지 가격에 신경 쓰지 않고 욕구나 필요성을 따지던 소비자들이 선별적 소비에 나서면서 유통 채널들이 가격 전략을 다시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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