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을 앞두고 유럽의 젊은 여성 인플루언서들의 사진을 도용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가짜 엑스(X·옛 트위터) 계정이 활개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CNN은 영국 비정부기구(NGO) 정보탄력성센터(CIR)와 공동 디지털 조사를 벌여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 J.D. 밴스 연방 상원의원을 지지하는 가짜 X 계정 56개를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계정은 젊고 수려한 외모의 여성 사진을 내세웠다는 것과 ‘#MAGAPatriots’ ‘#MAGA2024’ ‘#IFBAP(나는 모든 애국자를 팔로우한다)’와 같은 해시태그를 사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을 위스콘신 출신의 32세 여성이라고 소개한 ‘루나’는 올해 3월 엑스에 가입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활동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추가적인 암살 시도에 직면해 있다는 등의 음모론을 지속해서 펼치는가 하면, 흰색 비키니를 입고 해변에서 찍은 셀카를 공유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영원히 대통령이 되는 것을 지지하겠느냐”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의 엑스 계정(@Luna_2K24)은 3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루나는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계정에 게재된 사진 속 여성은 독일의 패션 인플루언서 데비 네더로프로 밝혀졌다.
그는 친트럼프 가짜 계정에 자신의 사진들이 도용된 사실을 접하고는 “이게 무슨 일이냐”며 분노했다. 미국 시민도 아닌 자신이 SNS상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로 활동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
피해를 본 건 네더로프뿐만이 아니다. 가짜 계정들은 독일을 비롯해 네덜란드, 덴마크, 러시아 등에서 활동하는 17명의 패션 및 뷰티 인플루언서 사진을 갖다 썼다. 심지어 일부는 인공지능(AI)이 생성한 사진을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CIR은 “이들 계정은 트럼프와 밴스를 칭찬하고, 바이든과 해리스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게시물을 올린다”며 “성 소수자(LGBTQ+) 권리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등과 같은 분열적 주제도 건드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 여성들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사진과 신원이 도용돼 신고해도 SNS 기업이 조치를 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해당 가짜 계정 중 12개 이상은 계정 소유자의 신원이 확인됐음을 의미하는 ‘파란 배지(Bluetick)’ 달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엑스는 CNN이 기사를 발행하기 전 24시간 동안 문제가 된 계정 대부분을 삭제했다.
CNN은 이번 사태에 트럼프 대선 캠프가 연루됐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고 보도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가짜 계정 범람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부 가짜 계정에선 영어 문장 내 문법적 오류가 발견됐는데, 이는 외국이 개입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진단이다.
에밀리 혼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올해 선거를 앞두고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허위 정보 유포를 시도한 여러 국가가 있다”며 “정교함의 수준을 보면 러시아, 이란, 중국 등 적대국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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