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분기 실적을 발표한 엔비디아의 주가가 급락했다. ‘공동 운명체’로 여겨지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주들의 실망감이 역력하다. 최근 반도체주 급락을 야기한 ‘AI 거품론’이 또다시 불거질 경우 양사의 목표 주가로 향하는 길은 험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엔비디아는 28일(현지시각) 2분기 300억4000만달러(40조1785억원)의 매출과 0.68달러(909원)의 주당 순이익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시장조사업체 LSEG가 전망한 월가 예상치 매출 287억달러와 주당 순이익 0.64달러를 웃도는 수치다.
투자자 반응은 냉랭했다. 정규장에서 전장보다 2.10% 하락한 125.61달러로 마감한 엔비디아 주가는 실적 발표 후 시간외 거래에서 6.92% 하락한 116.9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엔비디아 주가 하락 원인으로는 미국 월가에서 내부적으로 기대하고 있던 수익인 ‘위스퍼 넘버(비공식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점이 꼽힌다. 위스퍼 넘버는 증권사가 기관이나 큰손 등 투자 규모가 큰 투자자에만 알려주는 증권사 내부 실적 전망치다. 엔비디아는 이날 3분기(8∼10월) 매출이 325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는데, 위스퍼 넘버의 3분기 매출 전망치는 379억달러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또 블랙웰이 4분기 출하될 예정이고 수십억달러의 추가 매출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구체적인 매출 기대치가 드러나지 않은 점이 투자자들에게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발 충격파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9일 주가는 급락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28일보다 3.14% 하락한 7만4000원에 마감했다. SK하이닉스는 5.35% 떨어진 16만97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양사의 주가는 증권가나 자체 설정한 목표가에선 더 멀어졌다. 삼성전자는 7월 11일 고점(8만8800원)을 찍은 뒤 8월 29일 7만4000원으로 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삼성전자와 같은 날 역대 최고가(24만8500원)를 찍은 후 30% 넘게 내리막이다.
KB증권은 최근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를 13만원으로 유지하며 “올해 4분기부터 엔비디아, AMD, 아마존, 구글 등에 고대역폭메모리(HBM3E) 공급 본격화가 전망된다”며 “매력적인 진입 시점이다”라고 분석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2월 열린 ‘함께하는 더(THE) 소통행사’에서 3년 내 주가 28만원을 달성하겠다며 시총 200조원 목표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업계에서는 엔비디아와 양사의 실적 개선세와 별개로 투자 심리를 위축하는 AI 거품론을 우려한다. 기저 효과에 따른 성장 둔화를 피하지 못하고 투자자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AI 대장주’ 엔비디아의 기세가 꺾이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엔비디아 주가가 실적 발표 후 하락한 것은 ‘AI붐’이 시작된 후 처음이다. 매 분기 주가는 어닝 서프라이즈와 함께 급등했다.
다만 증권가는 반도체 업황이 여전히 견조하다는 분위기를 확인한 실적발표라고 평했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확대됐던 AI 수요에 대한 우려와 달리 견조한 방향성이 확인됐다”며 “하반기 매크로에 따른 변동성이 있겠지만 업황 방향성은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