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정부가 오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것을 두고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아 헌법에 어긋난다고 봤다.
이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청구인들과 소송 대리인단 등은 기후위기 속에서도 안전하고 행복할 권리가 인정받아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가 조속히 대응 계획을 위해 나설 것을 촉구했다.
청년기후소송, 시민기후소송, 아기기후소송, 탄소중립기본계획소송 등 관계자들은 2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후헌법소원 최종 선고 공동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앞서 지난 2020년 3월 청소년 환경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 회원 19명은 기후소송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이후 시민 123명이 낸 시민기후소송, 영유아 62명이 제기한 아기기후소송, 시민 51명이 제기한 탄소중립기본계획소송 등이 헌재에 접수됐고 하나로 병합됐다.
공개 변론은 지난 4월 23일과 5월 21일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바 있다. 해당 소송은 기후가 변화함에 따라 소송 당사자 혹은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는지 여부가 가장 큰 쟁점이었다.
청구인 측은 예상되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안정된 기후에서 살 권리’를 비롯한 헌법상 환경권, 생명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특히 한국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남아있는 탄소 예산을 과도하게 소진함에 따라 오는 2030년 이후를 살아갈 세대에게 막대한 감축 부담과 기후변화 피해를 전가한다고 판단, 이가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게 청구인들의 주장이다.
이해관계인인 정부 측은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을 통해 여러 정책을 펼쳐온 데 이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노력해 왔다며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한국이 제조업 중심의 수출집약 산업구조다 보니 온실가스 감축이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주장에도 헌법재판소는 오는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량을 설정하지 않은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계획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봤다. 이에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 4건을 심리한 뒤 재판관 전원일치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네덜란드와 독일 등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시민들의 손을 들어준 기후 소송 결정이 나온 바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결정에 따라 해당 조항은 오는 2026년 2월 28일까지만 효력이 인정된다. 정부와 국회는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반영해 강화된 기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설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해당 청구를 기각했다.
이들 단체는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의 근거 법안 일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며 “이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법안이 기후위기 보호조치로서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용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이날 판결은 기후위기 속에서도 안전하게 살아갈 우리의 삶이 여기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기후위기를 넘어 모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의미있는 진전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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