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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처우 개선 등을 담은 간호법이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보건의료 직역 단체들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다. 1977년부터 47년간 간호법 제정을 추진해 온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환영 의사를 밝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간호사 불법진료 신고센터’를 운영해 피해 신고를 받고 의사들의 정치세력화를 꾀하겠다”며 이를 갈았다.
국회는 28일 본회의를 열어 간호법 제정안을 재석 290명 중 찬성 283명, 반대 2명, 기권 6명으로 통과시켰다. 간호법의 국회 통과로 의료계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PA(Physician Assistant·진료지원) 간호사의 지위가 내년 5월 28일부터 합법화된다. PA는 수술, 검사, 응급상황시 의사 보조 등의 업무를 하며 실질적으로 의사의 의료행위 일부를 대신하는 인력이다. 외과계열 등 의사들이 기피하는 분야를 중심으로 수요가 높아지면서 현재 전국 의료기관에 1만 60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법에 명시된 직역이 아니라 ‘불법인력’ 취급을 받으며 불안정한 지위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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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 간호사가 제도권으로 편입될 수 있었던 데는 의대 2000명 증원발 의정갈등 장기화의 영향이 컸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2월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대거 병원을 이탈하자 PA 간호사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시행하며 이들을 의료공백을 메우는 데 동원했다. 이를 두고 시범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의료기관들이 간호사들을 ‘전공의 대체재’로 마구 활용하는 부작용이 불거졌다. PA 간호사의 업무범위와 법적 책임 등을 의료기관에 위임한 탓에 갓 간호대를 졸업한 신규 간호사가 PA 업무에 사실상 강제로 투입되는가 하면 1시간 교육 후 업무에 투입되는 사례도 있어 현장 간호사들은 환자 안전사고 발생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이 반년 넘게 이어지자 정치권에서도 의사 일부 업무를 대신하는 PA 간호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는 공감대가 생겼고 제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 사직 전공의 등 대다수 의사단체가 정부와의 대화를 보이콧하느라 협상 타이밍을 놓친 것도 간호법 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데 긍정적 요소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전국 병원에서 의료공백으로 인한 부작용이 불거지는 와중에 간호사·의료기사 등이 소속된 보건의료노조가 29일부터 전국 병원 61곳에서 동시 파업을 예고한 것도 법안이 속도를 내는데 힘을 실었다.
간호법의 국회 통과 소식에 간호계는 곧바로 환영의 뜻을 밝혔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간호법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이제 환자 치료행위가 불법으로 내몰리지 않고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안전하게 환자들의 치료와 재활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며 “간호법 제정은 의료진 이탈과 코로나 재확산으로 위기에 처한 의료현장을 극복하는 새 희망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간호법은 단순히 간호사들의 직무 범위를 규정하는 위한 법이 아니며 저출생 초고령화로 돌봄이 필요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법”이라며 “간병비로 가족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주고 모든 국민들의 건강한 노후를 준비하는 든든한 사회보장 법안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다만 논의 과정에서 여야간 이견차가 컸던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보건복지부 시행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한 점은 새로운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 향후 업무범위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사실상 국회가 복지부에 공을 넘긴 셈이어서 보건의료직역 또는 간호사들 내부에서도 업무 범위를 두고 마찰이 발생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주열 남서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복지부가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어떻게 풀어갈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의 역할을 세분화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복지부가 바라는 대로 당장 PA 인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전담간호사들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간호계 내부에서도 찬반 의견이 나뉘는 상황에서 의사단체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의정갈등이 더 꼬이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간호법 제정 본연의 취지는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의정갈등을 수습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간호법이 PA 간호사를 합법화하기 위한 법안으로 둔갑한 것 같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이어 간호법마저 국회를 통과하자 발칵 뒤집혔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이날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 앞 단식 농성장에서 일일 브리핑을 열고 “간호법은 간호사가 진단하고 간호사가 투약 지시하고, 간호사가 수술하게 만들어주는 법”이라며 비판했다. 의료계는 간호사들의 불법 의료행위로 인한 피해 신고센터 운영을 예고하는 한편 국회를 압박할 카드를 만지작 거리는 모양새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그간 의료계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통해 의대 증원과 간호법 문제들을 수도 없이 조목조목 지적했지만 정부와 국회는 끝내 의사들의 우려와 조언을 묵살했다. 의료계는 정부와 정치권을 움직일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의사 10만명 정당가입 운동’을 펼쳐 의사들을 정치세력화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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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간호법의 또 다른 쟁점이었던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에 관한 조항이 법안에서 빠지면서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현행법상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는 ‘특성화고 졸업자’ 또는 ‘간호조무사 학원을 나온 사람’만 가능하다. 간호조무사들은 특성화고등학교나 관련 학원 출신뿐만 아니라 ‘전문대 간호조무과 졸업생’에게 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여야는 이번에는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제외하고 추후 사회적 논의를 거쳐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관련 논의를 일단락 지었다. 간무협 관계자는 “21대 국회에서 간호법 폐기에 앞장섰다가 22대 국회에서 입장을 선회한 것은 간호조무사 시험응시자격 학력제한 폐지가 간호법에 반영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부대 의견이라는 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것 아니냐”며 “고졸, 학원 출신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간호조무사 시험응시자격 학력제한 폐지를 위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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