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남성 기자들이 단체 대화방에서 동료 기자들을 성희롱한 사건이 알려진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유력 일간지인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국가정보원 직원의 여성 기자 성희롱 문자가 드러났다. 조선일보와 국정원이 일주일이 지나도록 ‘사실관계 확인 중’이라는 입장만 내놓고 있는 가운데 언론계 안팎에서 적극적 조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본지는 조선일보 A논설위원과 국가정보원 대변인실을 거쳐 지역 지부에 근무 중인 B과장이 여성 기자들에 대한 사진을 공유하며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B과장이 근무 중인 지역, 특정 시각 등을 거론하며 도모성 취지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최소 3명의 피해자 모두 A논설위원과 연차가 낮은 여성 기자들이다.
그러나 사안이 처음 보도된 21일 “사실관계 확인 중”이라던 조선일보 사측은, 27일 현재까지 정식 조사 착수 여부나 관련 원칙도 밝히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 대외업무 담당자는 이날 5일 전인 22일자 조선일보 노동조합의 노보를 거론하며 “노보에 있는 그대로 이해해 달라. 덧붙일 게 없다”고 했다. 당시 노보에는 사측이 해당 논설위원에 대한 직무배제 조치를 내렸고 향후 사내 절차에 따라 진상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힌 내용이 담겼다.
역시 B과장에 대한 조치 여부를 알리지 않던 국가정보원은 지난 26일 비공개로 이뤄진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부적절한 내용의 대화 내지 교신이 있었고 필요한 조사를 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정보위 야당 간사인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밝혔다. 이후 국정원은 언론에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에 전제해 조사 점검중이란 말이 아니고 일체의 주장에 대해 알아보겠다는 취지”라고 했지만, 박 의원실 측은 기자협회보에 기존 설명이 맞다고 재확인했다.
언론계에서도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조선일보 내부 구성원들이 철저한 조사와 엄정 대처를 요구한 가운데, 22일 민주언론시민연합, 26일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조선투위 비롯한 11개 단체 등도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한국여성기자협회 측도 이번 사안에 대해 “회원사와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김수진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장은 조선일보와 국정원 대응을 두고 “기본적으로 회피이고 조직적으로 은폐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결국은 가해자를 보호하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김수진 위원장은 “디지털 성폭력, 딥페이크 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하며 “최근 일어난 정치부 기자들의 단톡방 성희롱 사건보다 더 심각한, 거의 범죄에 가까운 내용이 들어있는 대화에 대해 조선일보 논설위원이건 국정원 요원이건 (사안에 비례한) 동일 선상에서 조사 받고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또한 “논설위원 등은 위계에 있어서도 높은 위치에 있다. 그렇기에 피해자들이 나서기 어렵고, 이것이 어떻게 처리될지 조선일보와 국정원이 보여줘야 한다”며 “(조치 상황을) 지켜보고 있고 우려와 같이 처리 된다면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여성단체, 학계에서도 사안의 심각성과 함께 처리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장은 “언론인이라는 직업군은 단호하게 이런 사안을 바라봐야 하는 위치에 있다”라며 “개별 회사의 문제라기보다 전체 언론인으로서, 공동의 윤리, 직업의 강령, 보도 준칙 등을 본인들이 일하는 조직문화를 돌아보는 데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언론계에서 문제가 되는 사안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쉬쉬하는 방식으로 간다면 다른 영역에서의 성폭력이나 성희롱 사건을 얼마나 보도할 수 있을지 신뢰하기 어렵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스스로 자부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언론계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는 “만약 징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피해자의 위축, 성차별적 조직 문화의 확산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에 해당 언론사에 대한 후속 보도가 중요할 것”이라며 “일반적으로 징계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조직 문화의 성차별성이 강화되고 여성이 위축되는 일이 일어나는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 우려했다.
최이숙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자 단체들이 피해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가 언론계 전반이 어느 정도까지 ‘미투’ 운동 이후 성장해왔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지표 또는 준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언론계가 어떻게 피해자에게 연대의 정서, 기반을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