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과부하에 서울 ‘빅5’ 대형병원도 예외가 없었다. 의정갈등에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을 떠난 지 반년을 훌쩍 넘기면서 심해진 업무 공백에 과부하가 걸린 응급실 의료진들은 응급의료체계가 ‘붕괴 직전’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인건비와 관련 수가 인상을 통해 응급실 파행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일부에서는 이미 응급실 붕괴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라는 비관적 반응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보건의료노조가 29일부터 단행하는 총파업에 의료공백이 더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현재 국회에서 진행 중인 간호법 제정안 논의에도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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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의료계에 따르면 ‘빅5’를 비롯한 서울시내 주요 응급실 대부분이 인력난에 파행을 면치 못하는 신세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은 이날 오전 정규 시간 외 안과 응급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알렸고, 세브란스병원은 성인·소아 외상 환자 등을 수용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은 인력 부족으로 정형외과 응급 수술과 입원을 할 수 없으며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은 혈액내과 신규 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전공의들이 의대정원 증원에 반발하며 의료현장을 떠난 지가 길어지면서 남아있던 의료진들이 한계에 부닥치며 현장 상황이 더 나빠진 것이다. 서울 서남권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이대목동병원은 응급실 당직 근무 시 전문의 한명이 맡아야 할 정도로 인력난이 극심하다. 경기 남부 대표적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아주대병원 응급실은 당초 14명이 근무하던 응급의학과 전문의 중 3명이 의정갈등 와중에 사직했고 최근 추가로 4명이 사표를 썼다. 건국대 충주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 7명 전원도 최근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현장 의료진 지원을 강화하고 경증 환자를 지역 병의원으로 분산토록 유도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우선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를 가산하고 권역·지역 응급의료센터의 전담 인력에 대한 인건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추석 연휴에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응급진찰료 수가 가산을 기존 응급의료기관 408개에서 응급의료시설로 확대 적용해 경증 환자를 분산할 방침이다. 경증 환자가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내원 시 본인 부담분을 기존 50~60%에서 90%로 상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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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는 아직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응급의학회는 “경증·비응급 환자의 본인 부담 상향, 중증 응급환자와 야간 진료에 대한 보상 강화 등 정부 대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응급의료의 어려움 속에서야 발표된 것은 만시지탄이며, 아쉬운 대폭”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정부의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현장에서 경증·중증을 의료진이 판단하게 될 텐데,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은 의료계와 정부 간 신뢰가 사라졌다. 정부가 사과하고 의대 증원을 백지화해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간호법 제정안은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다. 여야가 간호조무사의 학력, 진료지원(PA) 간호사의 업무범위 등 간호법 주요 쟁점을 두고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PA간호사의 업무 범위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하는 데 동의하고 있다. 여당은 PA간호사의 업무범위를 검사, 진단, 치료, 투약, 처치라고 명시했지만, 야당은 PA간호사 업무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다만 간호법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총파업을 앞둔 보건의료노조의 반발이 줄어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이날 민주당 복지위 의원들과 간담회에서 “진료지원(PA) 간호사들은 아무런 법적 보호 장치 없이 전공의가 떠난 공백을 메우면서 불법에 내몰리고 있다”며 “PA 간호사 제도화는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불투명한 상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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