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채상병 사건 수사 시작한지 1년 됐지만
피의자 조사 세 명 뿐…이종섭 소환조차 안해
불필요 내용 공개로 野 특검법 간접지원 의심
與 “제3자 추천 특검이 더 공정할 것” 목소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채상병 순직 수사외압 사건에 대해 수사를 시작한 지 만 1년이 지났지만, 수사 종결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수사 관련 기밀 내용과 진행 상황 등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추측성 보도로 이어지면서 공수처가 갈등 증폭의 근원지로 지목되고 있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공수처는 2023년 8월 채상병 순직 수사외압 사건 수사를 시작했지만 수사는 현재진행형이다. 공수처는 1년의 기간 동안 휴대전화 입수와 포렌식, 국방부 압수수색 등을 진행했지만, 피의자 조사는 달랑 세 명을 진행하는 데 그쳤다.
공수처는 수사외압 의혹을 제기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대상을 축소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지난 4월에서야 처음으로 소환했다. 박경훈 조사본부 직무대리,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조사는 지난 5월에 실시됐다. 지난 22일에는 공수처가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1년 만에 불렀지만, 임 전 사단장은 본인 휴대전화의 디지털 포렌식 과정을 참관하기만 했을 뿐 관련 조사를 받지는 않았다.
공수처는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받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서도 아직 단 한 차례의 소환조사도 하지 않았다. 이 전 장관은 총선 직전 호주로 출국했을 때 마치 소환조사가 임박한 인사가 해외로 도주한 것처럼 ‘프레임’이 짜여져 총선 결과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지만, 정작 공수처는 지난 3월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 해제 직전 간단한 조사만 진행했을 뿐, 호주에서 귀국한 지 5개월이 되도록 소환조차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공수처는 수사 진행보단 ‘VIP 격노설’ ’02-800-7070 전화 가동설’ ‘현직 대통령 개인 휴대전화 헌정사상 첫 통신기록 압수’ 등 민감한 내용만 언론을 통해 흘리며 윤석열 대통령과 수사외압을 연관시키는 행위만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수사 내용 공개 시점도 공교롭게도 지난 5월 28일 더불어민주당의 제1차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결 직전이었다는 점에서, 공수처의 정치 개입이라는 의심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서범수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공수처를 겨냥해 “8월 순직 해병대원에 대한 의혹 고발장이 접수되고 이렇다할 수사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포렌식과 국방부 압수수색 진행 외에 알려진 피해자 조사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서 총장은 이어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한 어떤 공식 발표 한번 없이 언론이 자극적으로 받아들일만한 ‘VIP 격노설’ 같은 자극적인 수사 내용을 흘리면서 정치 집단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며 “공수처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통신내역 확보는 보란 듯이 언론에 노출됐고, 통화기록이 분석 중이라는 기사는 실시간으로 유출돼 의심하기 충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사 역량이 부족하니 시간을 끌어볼 셈인지, 아니면 민주당의 특검법 발의 시기에 맞추겠다는 건 모르겠지만 의도가 불순하다는 것은 알겠다”며 “수사와 관련해 계획·절차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 분석할 자료가 많다고 하지만 여태까지 도대체 공수처는 무엇을 했느냐. 능력이 없으면 능력 없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능력 있는 수사 기관에 넘기라”고 압박했다.
신지호 국민의힘 전략부총장도 지난 20일 KBS라디오에서 “공수처의 늑장·부실 수사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흔히 생각하는 수사의 상식 궤도에서 일탈해버린 듯한 느낌”이라며 “공수처가 너무 느리고 편파적이다. 수사하는 집단인지 정치하는 집단인지 헷갈릴 정도”라고 주장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대로 공수처 수사를 수수방관할 경우, 공수처가 9월 추석 연휴나 10·16 재보선 직전 등 민심 동향이 예민한 시점에 지난 총선 ‘런종섭 사태’를 재현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공수처가 수사 내용 중 자극적인 일부를 흘림으로써 정국이나 선거 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안한 ‘제3자 추천 특검’ 전격 도입으로 차라리 공수처의 ‘정치 수사’를 강제 종결시키는 게 상책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금과 같은 공수처의 수사 행태는 민주당 주도의 특검법 통과 명분만 강화시켜 정치지형을 불리하게 만들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검법이 통과되면 기존 일반수사기관의 수사는 종료되고 지금까지 수사했던 자료 등은 특검에 이첩해야 하므로, 차라리 대법원장 등 공정한 제3자 추천에 의한 특검 수사가 공수처 수사보다 더욱 공정한 수사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공수처의 수사지연, 수사내용 공개, 대통령 통신내역 확보는 결과적으로 민주당 주도의 특검법 통과에 대한 명분을 강화했다”며 “대통령실의 ‘선 공수처 수사, 후 특검 논의’ 입장을 이용한 고의적인 수사 장기화 및 대통령에 대한 의혹 야기를 통해 민주당 주도의 특검법 통과를 간접 지원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라고 해석했다.
이어 “‘선 공수처 수사, 후 특검 논의’가 역이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공수처 수사와 대법원장 추천 특검 수사 중 어느 쪽이 더 공정한 수사가 될 수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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