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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욱의 술기행](122) “한국의 사계절을 하이볼 한 캔에 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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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로 만든 드라이 진’으로 유명한 ‘서울의 밤’을 생산하는 양조장 더한주류가 한국의 사계절을 담은 재료로 만든 하이볼을 내놓았다. 서울의 밤이 어떤 술인가? 매실주를 1차 증류한 뒤 진의 핵심원료인 노간주나무열매를 첨가해 2차증류한 진 스타일의 매실 증류주이다. 증류 전의 매실주는 담금술에 황매실을 100일간 침출시킨 뒤 1년을 숙성시켜 만든다.

서울의 밤은 주 원료가 매실이다. 서울양조장에 이어 2021년에 지은 제2양조장이 있는 전남 광양의 매실로 만든다. 그런데 서울의 밤 하이볼은 매실을 비롯해 재료가 무려 아홉가지나 된다. 이중 서울의 밤에도 들어가는 재료는 매실과 주니퍼베리 두개뿐이다. 나머지 일곱개의 재료는 하이볼에만 들어간다. 그런데 이 일곱개 재료가 예사롭지 않다. 우선, 한국의 사계절을 담은 재료들이 많다. 봄이 제철인 매화, 녹차, 오이가 들어간다. 여름 재료로는 서울의 밤 기본 재료인 매실이다. 그리고 가을이 제철인 생강도 들어간다. 겨울에 수확하는 유자(껍질)도 하이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원료다. 서울의 밤 하이볼 원료 중 사계절의 특성을 살린 원료는 매화, 녹차, 오이, 매실, 생강, 유자 이렇게 여섯 가지나 된다.

그런데, 이 재료들을 모두 광양의 양조장 인근에서 가져온다. 봄 매화는 당연 광양산이다. 또 다른 봄의 재료인 녹차는 하동에서, 오이는 구례에서 가져온다. 여름의 매실 역시 우리나라 최대 매실특구인 광양 걸 쓴다. 가을용 재료인 생강 역시 광양산이며, 겨울 유자는 고흥에서 가져온다. 유자는 유자 과즙 부분이 아닌 껍질(유자피)을 쓴다. 한정희 대표는 “유자 생과는 아무리 많이 넣어도 실제 술에 그 향과 풍미가 느껴지기가 어려운 반면, 말린 유자껍질은 유자 향이 술에 잘 우러난다”고 말했다. 주니퍼베리 역시 광양에서 기른 걸 쓴다.

더한주류 한정희 대표가 서울의 밤 진토닉 하이볼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순욱기자
더한주류 한정희 대표가 서울의 밤 진토닉 하이볼을 들어보이고 있다. /박순욱기자

그러나, 국내산이 아닌 것도 두개 있다. 고수씨와 계피는 외국산이다. 더한주류는 지역산 원료를 주로 쓰는 지역특산주 양조장이다. 그래서 가급적 지역 농산물을 술의 주 원료로 쓰고 있다. 서울의 밤 하이볼에 들어가는 9개 원료 중 7개는 지역 농산물이다. 그런데, 국산 농산물 사용에 대해 한정희 대표는 다소 태도가 유동적이다. “국산 농산물만을 술 원료로 사용해야 제대로 된 한국술이라 할 수 있다”는 입장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대부분이 국산인 원료와 달리 외국에서 들여온 고수씨와 계피를 하이볼 원료로 쓴 것은 전체적으로 저희가 추구하는 향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고수씨와 계피를 굳이 넣지 않아도 하이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100% 국산 농산물을 사용했다고 홍보하기에도 좋고요. 하지만, 술의 향과 맛이 더 좋아진다면 외국산 재료를 쓰는 걸 마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지역특산주를 포기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저희 술 제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원료로 만들고 싶습니다. ‘지역농산물만을 사용하겠다’는 생각에 매몰되지 않고, 외국산 원료를 넣어 맛 자체가 더 풍부해지고 밸런스가 좋아진다면, 저희는 그쪽(외국산 사용)을 택할 겁니다.”

2021년에 준공한 더한주류 광양 제2양조장을 취재차 방문했는데, 3년만인 지난 8월초 다시 광양 양조장을 방문했다. 코로나 와중에 50억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광양 양조장을 지은데 이어 이번에도 비슷한 규모의 투자를 해서, 하이볼 캔 생산설비를 들여놓았다. 지난번에는 볼 수 없었던 거대한 로봇팔이 캔 박스, 병 박스를 쉴새없이 팔레트에 실어나르고 있었다. 한정희 대표는 “캔 라인은 1분에 200캔, 병 라인은 분당 100병씩 생산돼 차곡차곡 상자에 담기면 로봇팔이 팔레트에 옮겨담는다”고 말했다. 로봇팔 장비가 없을 때는 직접 사람이 하던 일이었다. 캔 생산설비만 새로 들여온게 아니다. 짧은 시간에 술을 살균처리하는 살균장비, 그리고 영상 0도에서 2도 사이 온도에서 탄산수를 주입하는 설비 등이 이전에 없던 장비였다.

더한주류 광양양조장에 새로 설치된 로봇팔. 분당 캔 200개, 병 100개씩 생산돼 박스에 실린 제품을 팔레트에 옮겨담는 역할을 한다. /더한주류
더한주류 광양양조장에 새로 설치된 로봇팔. 분당 캔 200개, 병 100개씩 생산돼 박스에 실린 제품을 팔레트에 옮겨담는 역할을 한다. /더한주류

더한주류는 이번에 하이볼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홍보 팜플렛에 ‘한국의 사계절을 담은 순수한 향연’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미 언급했듯이 6개 원료를 춘(매화, 녹차, 오이)하(매실)추(생강)동(유자) 사계절 제철에 나는 걸 썼다. 하이볼 제품 중에 서울의 밤 하이볼처럼 다양한(무려 9개) 원료를 쓴 제품은 없다. 하지만, 워낙 여러 개 원료를 사용하다보니, 서울의 밤 하이볼을 마셔보면 어느 재료 하나 튀는 게 없다. 거칠게 말해, 이도저도 아닌, 특징 없는 하이볼이란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한 한 대표의 답변도 궁금했다.

“쌀로 만든 증류식 소주가 막걸리와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술인 것과 달리, 주니퍼베리가 들어간 진(Gin)은 서양술로 각인돼 있다. 주니퍼베리를 일부 넣어 진으로 만든 서울의 밤이 국산 매실이 기본 원료인 한국술인 것에 한걸음 더 나아가, 서울의 밤 하이볼은 한국의 사계절을 대표하는 원료를 모두 썼다. 자연이 전하는 순수한 맛을 소비자들이 느끼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체의 인공 향료 없이 제철에 나는 보타니칼(식물원료)로 세상에 없던 하이볼을 만들고자 했다. 서울의 밤 하이볼 한 캔을 마시면, 한국의 사계절을 온전히 다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봄의 매화, 녹차, 오이 향기를, 여름의 매실, 가을의 생강, 겨울의 유자 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레시피를 구성했다. 물론, 아무리 섬세한 소믈리에라도 아홉가지 원료 향을 각각 다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요즘 막걸리에 향과 색소를 첨가하는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지 않은가? 무릇, 막걸리이든, 증류주이든 술의 향을 인공향료로 내도 되게 한다면, 어느 양조업자가 비싼 원료를 사용해 순수한 술을 굳이 만들겠다고 하겠나? 서울의 밤 하이볼 역시, 일체의 향을 첨가하지 않고, 순수한 원료로만 만들었다.

더한주류 주요 제품들. 왼쪽부터 매실원주, 서울의 밤 명량스컬(17도), 서울의 밤 진토닉 하이볼 2개,  서울의 밤(25도), 서울의 밤 (40도). /박순욱 기자
더한주류 주요 제품들. 왼쪽부터 매실원주, 서울의 밤 명량스컬(17도), 서울의 밤 진토닉 하이볼 2개, 서울의 밤(25도), 서울의 밤 (40도). /박순욱 기자

그런데, 기존 하이볼 생산업자들은 생각이 좀 다른 것 같다. 대부분의 하이볼은 위스키에 탄산수를 섞으면서 레몬, 자몽 같은 향 나는 향료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걸로 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인공 향이 들어간 기존 하이볼은 특정 향이 강한 반면, 아홉가지 재료가 들어간 서울의 밤 하이볼은 ‘도대체 무슨 향이 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다소 밋밋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하지만, 재미있지 않겠나?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서울의 밤 하이볼을 찬찬히 마시면서 매실부터 계피까지 아홉개나 되는 하나하나의 향을 찾아보는 여정을 밟아보는 것이.”

-하이볼 개발 기간이 1년 걸렸다고?

“아홉가지나 되는 원료를 넣다보니, 경우의 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우선, 증류방식도 서울의 밤과 약간 달랐다. 감압증류방식을 택한 서울의 밤과 달리, 하이볼은 상압으로 내린 증류원액 일부를 감압증류원액에 섞었다. 어떤 원료는 증류원액에 침출하는 것도 있고, 증류장비의 진 바스켓에 넣어 향을 뽑아내기도 했다. 침출기간도 다 달랐다. 어떤 재료는 2~3일, 또 어떤 재료는 100일간 침출하기도 하고. 이런 여러 경우의 수를 다 채우다 보니 시료가 1000개를 넘었고, 개발기간도 1년이나 걸렸다.”

더한주류 한정희 대표(사진 가운데)가 직원들과 침출탱크(수확한 황매를 담금술에 일년 정도 담가두는 탱크)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더한주류 한정희 대표(사진 가운데)가 직원들과 침출탱크(수확한 황매를 담금술에 일년 정도 담가두는 탱크)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기존 하이볼보다 단맛이 덜하다는 지적이 많다.

“당도는 포도당, 올리고당으로 조절했다. 하지만, 가급적 당도를 낮추려고 애썼다. 시중에 나와있는 하이볼들은 대부분 단맛이 강했다. 그러나, 내가 서양에서 맛을 본 하이볼이나, 내가 원하는 하이볼은 드라이(단맛이 적은)했다. 수백번 당도를 바꿔가면서 레시피를 조절해갔는데, 당분 함량은 최대한 자제했다. 실제로 서울의 밤으로 하이볼을 만들어 마시는 분 중에는 단맛이 강한 토닉워터 대신 드라이한 스파클링 워터(소다수)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분들까지 감안해 단맛이 덜한 하이볼 제품을 만들었다.”

-하이볼 알코올 도수를 7도로 정한 이유는?

“여러 도수의 하이볼을 만들어봤다. 개인적으로는 9도짜리 하이볼이 가장 맘에 들었는데, 대중에 쉽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7도가 더 무난할 것으로 봤다. 시중에 있는 하이볼은 5도 제품도 많은데, 다소 높은 7도로 한 이유는 해외 수출까지 염두에 둔 때문이다. 외국에는 하이볼 7도가 가장 흔하다.”

더한주류 한정희 대표가 하이볼 캔 라인을 소개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더한주류 한정희 대표가 하이볼 캔 라인을 소개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경기침체로 전통주 업계 전체가 어렵다. 극복 방안은?

“제품의 다양화로 승부하겠다. 신제품을 더 적극적으로 낼 작정이다. 지난 5월에 서울의 밤 진토닉 하이볼이 나왔지만, 9~10월 중에 또다른 신제품들도 나온다. 매실 향이 강한 매실 하이볼 캔, 그리고 매실이 아닌 유자로 만든 서울의 밤(알코올 도수 16도) 병 제품도 나온다.

매실 하이볼 레시피는 아직 미완성이다. 설탕이 들어간 매실청을 만들어 발효주를 만들어, 기존 침출 매실주와 블렌딩한 뒤 탄산수를 넣어 매실 하이볼을 만들 생각도 있다. 또, 침출 매실주를 오크통(서울양조장에서 숙성 중)에 숙성한 뒤에 탄산을 집어넣는 것도 검토 중이다. 처음 나온 서울의 밤 진토닉 하이볼보다는 매실 향이 강하고, 단맛도 다소 강해 소비자에게 더 쉽게 다가가리라 예상한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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