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천의 한 호텔에서 지난 22일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화재 원인은 전기 누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불이 객실 내 매트리스 등 침구류에 옮겨 붙으며 순식간에 확산된 것으로 소방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아 초기 진화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부천 화재와 ‘닮은 꼴’ 사고는 지난 2019년 충남 천안 라마다호텔에서도 일어난 바 있다. 천안 라마다호텔 화재도 전기 누전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지하에서 시작된 불이 창고에 보관된 매트리스 등 침구류를 통해 확산했다. 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지만 작동되지 않게 조작돼 있어 초기 진화에 쓰이지 못했다. 당시 천안 라마다호텔 화재로 1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다.
전문가들은 “닮은 꼴 화재가 5년 만에 또 일어났다면 인재라고 볼 수 있다”라며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화재, 전기적 요인으로 시작해 확산
소방당국에 따르면 부천 호텔 화재 사건의 원인은 전기적 요인으로 추정된다. 이영팔 소방청 119대응국장은 지난 23일 “에어컨에 들어가는 전기가 누전되면서 일어난 불똥이 밑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불이 났던 810호에 설치된 에어컨은 벽걸이 형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에어컨에서 시작된 불똥이 아래로 튀면서 화재가 확산한 것이다.
지난 2019년 1월 있었던 충남 천안 라마다호텔 화재 시작도 비슷했다. 당시 천안 라마다호텔 지하 1층 주차장에 있던 침구류 보관실에 설치된 전열기 콘센트에서 합선이 발생해 불똥이 튀었다. 주차장에서 시작된 불은 지하 주차장을 시작해 윗층까지 확산했다. 당시 화재로 1명이 사망했다.
◇화재 확산 침구류가 불쏘시개 역할
전기류에서 시작된 불똥이 튀어 침구류로 붙어 빠르게 번지며 발생한 유독가스가 피해를 키운 점도 두 사건의 닮은꼴이다. 이영팔 국장은 “(부천 호텔 화재의 경우에어컨에서 불똥이 소파, 침대로 옮겨 붙으면서 확대가 좀 빨리됐다”라고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부천 호텔 화재 사망자 7명 중 5명의 사인으로 일산화탄소 중독이라는 1차 소견을 내놨다. 나머지 2명은 에어 매트에 뛰어 내린 뒤 심정지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소방당국도 보고서에서 “매트리스 등 화재진행 속도가 빠르고 다량의 유독가스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5년 전 천안 라마다호텔 화재는 침구류 보관실에서 시작된 불이 크게 번지며 유독가스가 많이 발생했다. 당시 지하 1층에 있던 호텔 시설관리팀 직원 김모(53)씨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두 사건 모두 침구류가 화재 시작이자 불쏘시개같은 역할을 한 셈”이라며 “난연 제품이 아닌 일반 침구류는 불이 붙으면 나무 재질 가구보다 빨리 타고 유독가스도 더 많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숙박업소 침구류는 화재 예방을 위해 난연 제품을 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프링클러 없거나 있어도 작동 안 해
화재 초기 스프링클러의 도움을 받지 못해 불길이 빠르게 번진 점도 비슷하다. 부천 호텔에는 스프링클러가 아예 설치돼 있지 않았다. 2018년 시행된 건축소방법은 2층 이상, 연면적 500㎡ 이상, 높이 13m 이상의 건축물에 대해 전층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불이 난 부천 호텔은 2018년보다 이전에 지어져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의무가 없었다.
천안 천안 라마다호텔은 2018년 9월 개장해 전층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호텔 측이 평소 관리를 편하게 하기 위해 스프링클러를 수동 작동으로 설정해놨음이 사고 후 드러났다. 때문에 침구류 보관실에서 시작된 불이 초기에 진압되지 못한 채 천장을 타고 위층으로 번지며 화재가 커졌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인재가 아닌 사고가 어디 있겠느냐만, 이번 일은 정말로 인간의 의지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두 사건은 사망자 수에서는 차이가 크게 난다. 부천 호텔 화재로는 7명, 천안 라마다호텔 화재 때는 1명이 사망했다. 부천 호텔 화재 사망자 2명은 에어매트로 뛰어 내리다 사망했는데, 천안 라마다호텔 화재 사고 구조 당시에는 소방헬기가 동원됐다. 이 헬기를 타고 20층 창문 밖에 서서 구조를 기다렸던 남성 2명은 목숨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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