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모든 게 바삐 움직인다. 이슈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아침부터 뉴스를 보다 깜짝 놀라다가도, 점심을 맞이하기 전 쉽게 잊어버린다. 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고단한 삶을 살아가기도 쉽지 않은 것은 물론, 한 가지 이슈에만 집중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뉴스들이 끊임없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매일 같이 쏟아내는 이슈들 중에 우리 삶과 사회구조에 직결되는 소식의 비중은 점점 비중이 줄어든다. 격투기 경기를 중계하듯 정치와 사회 문제를 다뤄댈 뿐, 실제 우리들의 삶에는 얼마나 영향을 줄지 알 수 없는 소식들에 쉽게 초점이 맞춰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쟁’은, 그것도 끝을 알 수 없이 장기간 이어지는 투쟁은 더욱 사람들에게서 잊히기 쉽다. 가끔 신문이나 방송의 단신 기사로, 더욱 가끔 신문 기획기사나 방송의 심층 취재 프로그램으로 투쟁을 다룰 때가 있다고 하지만 긴 투쟁의 시간에 비하면 매체가 주목하는 순간은 무척이나 짧다.
매체뿐만이 아니다. 아무리 외부에서 찾아와 연대를 하고 관심을 기울인다고 해도 이들은 각자의 생업이나 다른 투쟁을 위해 발길을 옮길 수밖에 없다. 결국 투쟁 당사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쉽게 끝나지 않는다고 포기하는 대신, 투쟁을 하나의 삶이자 일상으로 여기며 살아가야만 긴 싸움에서 지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운 마을, 조금씩 드러나는 투쟁의 삶
김상패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 「양지뜸」은 투쟁이 삶의 일부가 될 정도로 길고 긴 싸움을 그려낸다. 경상북도 성주군 조전면 소성리에 배치된 주한미군 THAAD(사드, 탄도탄 요격을 위한 미사일 운용 체계)의 철수를 요구하는 투쟁은 2016년에 본격적으로 논란이 불거져 현재까지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무거워 보이는 소재지만, 정작 작품의 초반부에는 소재와는 다른 분위기의 장면이 한동안 이어진다. 농사를 준비하고, 때맞춰 밥을 먹고, 새나 벌레가 지저귀는 소리를 빼면 참으로 조용하고 한적한 모습의 연속이다. 7년 넘게 투쟁이 지속 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운 일상이다.
하지만 이 모습도 잠시, 작품은 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일상의 또 다른 면을 짚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한밤중에 광장처럼 보이는 곳으로 자리를 함께한다. 마을을 오랫동안 지켰을 노년의 마을 주민들은 물론, 군데군데 젊은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의 모습은 서서히 집회에서 발언하는 모습으로, 이윽고 직접적으로 주한미군과 정부에 맞서 투쟁을 결의하는 모습으로 전환된다. 근심도 걱정도 없이 유유자적해 보였던 마을에 또 다른 면이 존재했음을 서서히 드러내는 연출이다.
작품은 처음부터 이 모습의 의미를 말하지 않는다. 작품의 포스터나 도입부는 소성리에서 어떤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간단한 안내하는 수준에 머무른다. 대신 관객으로 하여금 이 장면의 연속이 어떠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조금씩 깨달아가기를 바라는 듯이 서서히 마을 사람들의 삶과 움직임을 드러내는 방법론으로 사드 투쟁을 접근한다.
작품은 이러한 방식으로 투쟁이 지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관객에게 제시한다. 어느 날에는 시골 동네에서 흔히 볼법한 할머니들이, 다른 날에는 강한 결기가 담긴 목소리로 투쟁의 구호를 외친다. 보수적인 시각의 매체라면 이 모습을 ‘외부인에게 세뇌됐다’고 쉽게 폄하하지만, 작품은 두 모습이 결코 어색하거나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모습임을 강조한다. 이들은 누군가가 시키거나 조종해서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드가 자신들의 일상을 폭력적으로 침범하는 존재이기에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지치지 않고 싸우는 ‘장투’를 응원하다
마을 주민들은 왜 사드가 당장 소성리에서 사라지길 바랄까. 영화에서 드러나는 이유는 각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 일제 강점기 때 겪었던 아픔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반대한다. 다른 누군가는 과거 롯데그룹의 골프장으로 사용하며 마을의 자연 생태계에 피해를 입혔던 부지에 사드가 들어와 파괴가 가속화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반대한다.
사람마다 사드를 반대하는 이유는 달라도 하나의 공통점을 내포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은채, ‘국익’이라는 허울을 내세우며 일방적인 행보를 계속 이어나가는 정부에 대한 저항이다.
영화는 사드가 왜 문제인지를 설명하기 보다 투쟁에 계속 동참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삶과 목소리에 초점을 기울인다. 감독은 기나긴 투쟁인 구미 아사히글라스(AGC화인테크노한국)의 노동자를 다룬 2020년 작품 「당신은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가 그랬던 것처럼, 「양지뜸」 또한 힘든 순간 속에서도 투쟁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며 왜 이들이 투쟁을 멈추지 않는지 공감하고 응원할 수 있도록 작중의 장면들을 배치했다.
투쟁을 신속하게 알리고 외부의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작품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좀처럼 쉽게 끝이 안 보이는 싸움임에도 꾸준히 투쟁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을 조망하는 작품도 필요하다. 「양지뜸」은 이전 사드 투쟁을 다룬 박문칠 연출의 「파란나비효과」와 박배일 연출의 「소성리」를 이어받아 여전히 사드 투쟁을 계속 이어나가는 사람들을 북돋는다.ㅍ계속해서 사드 투쟁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는 사람들이라면 작품의 사려 깊은 자세에 공감할 수 있고, 이번 작품을 통해 사드 투쟁을 알게 된 사람들도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어떻게 지치지 않고 계속 싸움을 이어나갈 수 있는지 느끼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사드 투쟁을 비롯해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각지에서 길고 긴 싸움을 이어나가는, 소위 ‘장투’에 참여하는 이들이 「양지뜸」을 통해서 다시금 마음을 다질 수 있지 않을까. ‘계속 이 자리에서 살고 싶다’, ‘계속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소박한 소망을 자본과 국가 권력이 제대로 귀담아듣지 않기에 투쟁이 발생하고, 다시 끝나는 순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어진다. 작품은 장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시위꾼’도 ‘세뇌받은 이’도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들인 것에 주목하며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이 투쟁의 주춧돌이 될 수 있는지를 포착하는 방식으로 이들의 투쟁을 응원한다. 그 응원의 마음이 성주 소성리의 사람들은 물론, 다른 장투의 현장에도 퍼질 수 있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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