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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법 개정안, 사법 변화 촉구하는 국민 의사의 입법적 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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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그래픽.
▲연합뉴스 그래픽.

장철준 단국대 법학과 교수가 쓴 ‘명예훼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과 표현의 자유’ 논문(법학논총, 제47권 제4호, 단국대 법학연구소, 2023)이 제23회 한국언론법학회 철우언론법상 수상 논문으로 선정됐다. 해당 논문은 고위‧중과실이 인정되는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실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액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담은 2021년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실제 소송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이 선고되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제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언론의 책임을 담보할 수 있는 힘의 균형 장치가 될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논문은 “2021년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우리 사법 현실에서 명예훼손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의 손해배상액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어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산물”이라며 “오랜 사법 관행으로 정립된 손해배상 체계에서 개별 재판을 통해 명예훼손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만을 대폭 상향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입법적 조치의 적절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입법 당시 언론 자유 위축을 우려하던 언론계의 거센 반발과는 상반된 평가다. 

해당 논문은 징벌적 손배제가 있는 미국의 사례를 들어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의 진정한 악의(actual malice) 법리에 의해 원고가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에 승리하기 매우 어려운 구조가 확립되어 있다. 동시에 어려운 과정을 거쳐 승소할 경우 막대한 액수의 배상액을 수여 받을 기회를 열어두어, 언론의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논문에 따르면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과 관련한 극우 라디오 진행자의 허위정보 유포에 대해 2022년 미국 코네티컷주 법원은 15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조 원의 배상책임을 주문했다. 

논문은 “언론의 자유가 세계 어느 국가보다 강하게 보장된다는 미국에서 과다한 배상 액수의 판결이 취소된 적은 있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자체가 연방대법원의 위헌 결정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적어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위축효과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단순한 논리 도식이 평면적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논문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손해의 최대 5배 한도를 두고 있어 미국과 같이 수십억, 수백 억대의 배상액은 애초에 인용될 수 없다. 평균 손해배상액으로 계산할 때 현재의 500만 원이 최대 약 2500만 원 정도로 늘어날 뿐”이라고 했으며 “징벌적 손해배상은 본질적으로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을 거친 후 결정되는 사법 절차의 결과물로, 엄청난 손해배상 액수가 실제 법정에서 선고되곤 하지만 그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갖추어 놓았다는 점은 언론의 책임을 요구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통한 헌법적 보호를 놓지 않겠다는 절묘한 제도적 균형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논문을 쓴 장철준 교수는 “강력한 수정헌법 제1조의 법리를 확립한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폐지하지 않는 이유는 언론계를 비롯한 징벌적 손해배상 반대 입장에서 주장하는 위축효과가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개별 사건에서 직접 소송을 접하지 않는 이상, 어떤 제도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언론의 자유라는 큰 개념 전체가 위축된다는 논리에 직접적 인과관계를 찾기 어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해당 제도가 “언론에게 위축효과의 부담을 주더라도 언론의 책임을 놓지 않겠다는 법적 의지”라고 볼 수 있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의 요건을 충족하는 수준의 보도까지도 언론의 자유로 보장할 것은 아니라는 헌법적 입장을 취했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썼다. 이어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비판 지점인 고의·중과실 추정 규정 또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진정한 악의’ 법리에 평면적으로 견주어 부당하다 평가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논문은 “(미국) 연방 항소법원 판결에 의하면, 진정한 악의에 기한 허위사실 보도는 애초에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표현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주어졌다는 것은 언론보도에 진정한 악의가 밝혀졌다는 뜻인데, 진정한 악의에서 작성된 보도는 이미 표현의 자유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며 “헌법적 보호 대상이 아닌 보도를 할 자유가 위축된다는 이유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없애자는 주장은 동어반복의 순환논법에 빠지고 만다”고 했다. 

▲Gettyimages.
▲Gettyimages.

논문은 또 “개정안의 배액배상은 지금까지의 너무 낮은 손해배상에 대한 배상액의 ‘현실화’로 볼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가중된 손해배상제도는 ‘징벌적 손해배상’이라 칭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논문은 “명예훼손 손해배상액을 높이기 위해 사법의 전체 위자료 산정 기준을 변경하기도 어렵거니와, 명예훼손의 정신적 손해만을 별개의 위자료 체계로 다룰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5배액 한도 배액배상 체계는 낮은 손해배상액의 ‘현실화’를 위한 특별 조치라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고 했다. 

아울러 “우리의 경우 명예훼손 형사재판에서 징역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벌금 수준도 타범죄에 비하여 무겁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배액배상을 규정한 법안에 대해 그 손해배상액의 증가분을 징벌로 정의하지 않고 ‘손해배상의 현실화’로 구성한다면 그 헌법적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명예훼손 형사처벌이 있다는 반론에 대해서는 “이 개정안은 기존 법제 자체의 문제점 때문에 제안된 것이 아니라, 그 법제가 실제 발휘하는 규범력이 매우 미약하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논문은 “5배 한도의 배액배상 구조에서 어느 정도 수준의 배상액 비율이 보편적 관행으로 자리 잡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사법 판단에 달려 있다.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또한 사법부가 구체적 사건을 통해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언론보도와 명예훼손을 다룬 수많은 사건을 통해 사법 관행으로 형성된 수준에 사회적 비판이 드높은 상황”이라며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러한 사법 판단의 변화를 촉구하는 국민 의사의 입법적 발현”이라고 했다. 

장철준 교수는 무엇보다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악의적 보도가 표현의 자유의 방탄 속에서 덩달아 보호되는 현실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국민적 의도가 표출되었다는 점은 법안 통과 여부에 관계없이 무겁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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