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에는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 개인의 자유와 모두의 평등,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이 보장돼 있다. 그러나 이 조항들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결국 가난인데, 가난이 제도화되고 있다. 그 원인은 부(富)가 대물림되는 상속·증여 제도와 세율의 문제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25일 발표한 2024년도 세법 개정안에서 상속세 체계에 대폭 변화를 예고했다. 정부 안은 상속세의 최고세율을 낮추고 자녀 공제 금액을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25년 만의 손질이었지만, 실거주 부동산 가격상승 반영보다는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초(超)부자들의 상속세와 증여세 부담 완화에 집중돼 있다는 평가다.
상속세와 증여세 체계는 각 국가마다 천차만별이다. 상속된 재산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일종의 사회적 합의이기 때문이다. 판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최기상 의원은 지난 20일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에서 상속세와 증여세 문제는 단순한 세정의 차원이 아닌 헌법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세법 개정안에도 헌법 정신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의원은 특히 ‘가난’은 헌법에 보장된 가치 실현을 무력화시키며 대물림되고 있기 때문에 조세를 통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으로, 상임위 활동을 통해 부와 가난의 대물림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온 최 의원은 이번 정부의 세법 개정안에 대해 “부의 대물림을 더 쉽고 편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그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낮추는 것에 대해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서울 등 일부 아파트 가격이 상승해서 상속세 부담이 일부 늘었고 그로 인해 살던 집에서 나와야 하는 곤란한 상황은 교정해야 하지만, 그 방향이 최고 세율 인하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산층의 불안한 마음을 이용해서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하려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최 의원은 그러면서 정부의 상속세제 개편안이 실현되면 윤석열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는 4억5200만 원,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1억9700만 원의 상속세 감면 혜택을 볼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언급했다. 그는 “고위공직자의 재산이 많은 것을 지적한 것은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라,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지적한 것”이라며 “한국은 경제영역에서 기획재정부 등 경제 관련 부처나 한국은행 등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큰 나라인데, 그 일을 최종 결정하는 공직자들이 압도적으로 높은 재산 형성을 한 경우가 많다. (이들이) 서울 특정 지역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거나 주식·금융투자 수익 비중이 높다면, 그렇지 못한 압도적 다수의 입장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중산층 세 부담 완화의 대안으로 이재명 대표가 언급한 배우자 공제와 일괄 공제 상향 방안에는 찬성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 기재위 소속인 임광현 의원은 상속세 일괄 공제액을 현행 5억원에서 8억원으로, 배우자 상속공제 최저 한도금액을 현행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상향하는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민주당이 제시한 일괄 공제액 상향 방안은 정부의 세제개편안 보다는 중산층에 집중한 개편안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일괄 공제액을 현행 5억 원에서 8억 원으로 상향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지난해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전체 피상속인 중 상속세를 부담하는 대상은 전체의 6.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만, 당내 ‘폐지’ 논란이 있었던 종부세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부동산에 대해 토지 공개념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동산은) 공동체의 공동자산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공동자산에서 나오는 이익을 과도하게 개인이 가져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이게 ‘지대’로 상징되는 대물림의 핵심 기제”라고 지적했다.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여야 간, 나아가 민주당 내에서도 논쟁이 진행 중인 금융투자소득세에 대해 그는 법의 안정성 측면에서 먼저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을 만들어서 시행해야 되는 문제는 국가의 근간이고 입법부의 존재 이유와 관련된 문제”라며 “원칙적으로 일단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금투세 공제 한도를 늘려 시행하자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시행해 본 뒤에 조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최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
프레시안 :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부의 대물림’을 자주 언급한다. 양극화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나.
최기상 :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오래된 얘기다. 불평등이 소득이나 자산의 불평등에 그치지 않고, 교육과 건강의 불평등, 나아가 산업재해 현장에서 위험의 불평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법과 제도로서 불평등이나 양극화를 해소해야 할 정치 영역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공동체나 국가를 믿지 못하고 각자의 노력에 과하게 집중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자살률이 높은 것도, 노인들도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는 사회라는 자조적인 표현도 있지 않나.
다들 문제인 것을 알고 있는데 지금은 부와 가난이 대물림 되는 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이게 대물림 된다는 것은 과거 봉건제 사회에서 ‘세습’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거부해야 하는 풍경인데 이를 받아들이게 된 풍조도 문제가 있다. 대물림을 줄이거나, 없애야 하는 것이 정치의 중요한 역할인데 근간은 못 건드리고 ‘부작용을 줄여보자’는 정도로 정치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
5100만 국민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은 결국 헌법에서 찾아야 그나마 많은 분들이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헌법에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나 행복추구권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모두의 평등, 인간다운 생활할 권리의 보장, 국가가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조항이 이미 충분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조항들을 무력화시키는 게 결국은 가난이다. 가난이 제도화되고 있다. 그 원인은 결국 부가 대물림되는 소위 상속·증여 제도나 세율의 문제다. 그로 인한 교육의 불평등, 지역 격차 등은 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문제다. (부의) 대물림 문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우리 헌법 정신에도 맞지 않다. 출생률이 저하되는 것처럼 더불어 같이 살아야 되는 우리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에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근원적 문제를 제기하고 고쳐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가난의 제도화’라고 표현했는데, 한국 사회에서 부의 대물림 혹은 가난의 대물림이 현재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나.
최기상 : 부와 자산의 대물림은 증여와 상속을 통해서 이뤄진다. 자식 세대들이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고 겨뤄서 사회가 역동적으로 더 나은 사회로 갈 수 있는데, 그러한 관점과 고민 속에서 상속·증여세율이 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도 충분하지 않다.
교육의 양과 질에서도 차이가 난다.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사교육의 질이 서울 강남 일부 지역과 비수도권 간 차이가 많이 나지 않나. 실제로 대학 진학률과 대학 졸업 이후 전문직을 선택하는 비율이 예전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쏠려 있다. 판·검사들만 하더라도 그들의 (출신)대학, 부모의 소득수준, 거주지 등이 통계적으로 (부모 세대의) 부와 연결돼 있다. 자산의 대물림이 교육으로, 직업을 갖는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자식 세대의 소득 격차로 이어지는 것이다.
가난은 경제적 부분에 국한되지 않고 문화적인 부분, 문화적 소양이 쌓인 후 자기를 실현하는 부분, 나아가서는 정치적인 참여에서도 격차가 날 수 있다.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에서도 차이가 날 테고, 피선거권 즉 본인이 출마해서 어떤 공동체의 대표가 되는 기회도 잘못하면 극소수 상류층 일부에 의해 과대하게 대표될 수 있다. 그래서 이 공동체를 운영하는 문제까지 연결될 수 있다. 결국 경제적 불평등 문제는 가장 먼저 다뤄야 하는 문제다. 가난이 제도적으로 고착되는 것을 끊어야 하므로 관련 세제를 개편하고 이후 국가가 재정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에 관해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국회 기재위 회의에서 인사청문회 후보자 등 고위공직자 재산에 대해 지적하는 모습을 종종 봤다. 최근 대통령실과 기재부 일부 고위공직자들이 상속세제 변경으로 보는 혜택을 예상해 공개하기도 했는데.
최기상 : 고위공직자의 재산이 많은 것을 지적한 것은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라,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지적한 것이다. 국가의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가능하면 5100만 국민들의 삶을 비례적으로 분포·반영하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가령 판검사들도 다양한 소득수준과 지역 경험을 두루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게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놓칠 우려가 있는 인권의 보호나 민·형사 사건의 속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국회는 300명 국회의원의 구성을 보면 행정부나 사법부 고위공직자들에 비해 학력·출신 지역·소득 수준과 경력 등이 5100만 국민들의 전체적 분포와 더 가깝다. 우리나라는 특히 경제 영역에서 기획재정부나 경제 관련 부처나 한국은행 등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큰 나라인데, 그 일을 최종 결정하는 수준에 있는 공직자들이 특정 학교 중심이나 압도적으로 높은 재산 형성을 한 경우가 많다. 특히 그 재산의 내용도 서울의 특정 지역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거나 주식이나 금융투자를 통해 수익을 내는 비중이 높다면, 그렇지 못한 압도적 다수의 입장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그분들의 경력이나 재산 형성 과정이 전 국민의 분포와 비례적일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하지만, 그런 부분이 과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것이 국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국회 기재위 전체 회의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에게 “윤석열 정부의 세제 방향은 가난의 대물림보다 부의 대물림에 관심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2024년도 세법 개정안을 어떻게 평가하나.
최기상 :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내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세법 개정안은 가난의 대물림으로 인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을 하고 그것을 끊기 위한 재정을 어떻게 확보할 건지 문제 인식이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전반적인 태도가 부의 대물림을 더 쉽고 편하게 해주는 데에 관심을 쏟고 있다. 고위공직자들이 본인 주변에서 듣는 어려움이 그런 (상속에 대한) 어려움이니까 이를 해소해 주려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본인들 눈에는 가난으로 인해 문제를 겪고 있는 문제를 사람들이 안 보이거나, 이야기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중심을 잘못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상속세 개편, 대기업 최대주주 할증과세 폐지 등 언젠가 우리가 논의할 수도 있는 문제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세수 결손이 큰 데 이에 대한 보완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보단, 본인들이 집권할 때 꼭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정책들을 꼭 해내야 한다는 생각만 하는 것 같다. 정부의 역할이 무엇이고, 대통령이 관심갖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헌법적 인식이 결여돼 있는 것 같다. 대다수 국민에 대해서는 ‘시혜의 대상’, ‘죽지 않을 정도로만 도와주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의심마저 든다.
프레시안 : 어떤 면에서 정부가 대다수 국민을 ‘시혜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나.
최기상 : (윤석열) 정부는 경제를 시장에 맡기고, 그 과정에서 낙오된 국민에게 국가가 보조해 주는 작은 정부를 표방하고 있는 것 같다.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저는 불로소득이 우리 사회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일한 만큼 소득을 얻는 노동 소득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게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시장 경제 질서에 더 맞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불로소득이 만연해 있다. 특히 부동산으로 인한 불로소득, 우리가 소위 말하는 ‘지대’는 대표적 불로소득이다. 아이들의 꿈이 ‘건물주’인 ‘지대 추구 사회’가 돼버렸다.
이 잘못된 구조에서 개인에게 기회가 자유롭게 주어졌으니 결과도 다 책임지라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출발선이 동일하다? 어떤 부모를 만났고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에 따라 출발선이 다른데 이게 과연 동일한 출발선이냐는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 경쟁 이후 결과를 나눠 가질 때도 이긴 자와 진 자의 격차가 적절해야 하는데,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누가 정할 것이냐. (이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고, 국회와 정부가 논의의 장을 만들고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합의가 가능한 수준을 계속 만들어가야 한다.
프레시안 : 정부의 세법 개정안 중에서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조정하자는 내용이 눈에 띈다. 이렇게 되면 근로소득세 최고세율(45%)보다 상속세 최고세율이 낮아지게 되는데, 정부에서는 ‘중산층 세 부담 완화’라고 개정 취지를 밝혔다.
최기상 : 정부 세법 개정안이 나왔을 때 민주당 기재위원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지적했던 부분이고, 이재명 신임 당대표도 취임 일성으로 최고세율 조정은 ‘초부자 감세’라고 짚었다. 최고세율을 40%로 낮추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서울 등 일부 아파트 가격이 상승해서 상속세 부담이 일부 늘었고 그로 인해 살던 집에서 나와야 하는 곤란한 상황은 교정을 해야 하지만 그 방향이 최고 세율 인하는 아니다. 오히려 이 대표가 말한 것처럼 배우자 공제나 일괄 공제를 올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과거 통계를 살펴보니 상속세를 많이 내는 분들은 정말 극소수다. 정부가 중산층의 불안한 마음을 이용해서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하려는 것 아닌가. 나아가선 그 정책을 준비하는 기재부나, 용산 대통령실에서 그렇게 상속받을 가능성이 있는 분들이 있어서 그 고민을 이번에 해소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저도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상속세를 내지 않았다.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인데도 공제받고 하다 보니 상속세 낼 게 없었다.
프레시안 : 정부가 ‘중산층’의 불안한 마음을 이용해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는데, ‘중산층’에 대한 정의도 정부나 민주당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책 목표 대상이 중산층이라면 그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의원님께선 ‘중산층’이 뭐라고 생각하나.
최기상 : 개념적 측면에서 접근해 보면, 중산층은 현재의 경제적 지위가 갑자기 나빠질 가능성은 별로 없고 당장 생활에 대한 불안함 없이 자녀들도 키울 수 있는 분들인 것 같다. 또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가질 수 있는 환경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 중산층이 튼튼해야만 공동체, 민주주의도 강하고 튼튼할 수 있다. 당장 사는 것도 불안하고, 노후나 자녀들의 성장에 대한 불안감이 있으면 사회 문제나 공동체에 대한 관심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산층의 삶이 무너지면 결국 민주주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프레시안 : 정부의 이번 세법 개정안에서 종부세는 빠졌는데.
최기상 : 부동산 보유세에 대한 부분은 우리 사회가 치열하게 논쟁하고 합의점을 잘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부세는 결국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해야 하고, 종부세를 부담스러워하는 분들도 여러 형태로 있다. 이익 실현이 안 돼 세금을 내기 힘든 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부동산 관련 세금은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고 부동산 시장 상황에 맞춰서 결정해야 하는 문제다.
다만, 부동산에 대해 토지 공개념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동체의 공동 자산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 자산에서 나오는 이익을 과도하게 개인이 가져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게 ‘지대’로 상징되는 대물림의 핵심기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을 정치 영역에서 자꾸 깨려는 방향으로 논의를 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개정안에서는 뺐지만 해가 바뀌면 바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겠다.
프레시안 : 종부세는 옳고 그름의 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 시장 상황과 연동되어서 생각해봐야 할 지점도 있다. 당내에서 꾸준히 폐지를 주장하는 분들의 의견에 시장이 영향을 받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의원님의 생각은 어떤가.
최기상 : 초반에 그런 의견이 있을 때 언론에서 관심을 가졌고 당내에서 특별히 세밀하게 논의하지는 못했다. 저는 기본적으로 종부세는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당내에 또 다른 논쟁 대상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에 대한 이견도, 오해도 많은 것 같다.
최기상 : 제가 헌법재판소에 파견 근무를 할 때 소위 사형제 폐지에 대한 사건이 오면 재판관들이 두루 논의해서 결정한다. 그런데 결정하자마자 1년도 안 되어서 또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또 소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때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구성이 대거 바뀌거나, 우리 국민들의 인식이 확 바뀌지 않는 이상 특별하게 다른 판단을 하지 않고 조금 미뤄놓는 경향이 있다. 그게 법적 안정성이고 사회가 운영되는 기본적인 논의의 틀이라고 생각한다.
금투세는 정부가 만들어서 제안했고 여야가 합의해서 통과시킨 것이다. 내용 자체도 기존 과세 체계에 문제가 있고 글로벌 스탠다드 문제도 있어서 지금 여당의 원내대표께서도 합의하셨고 동의했다고 들었다. 투자자들이나 기관에서 그로 인한 부작용이 없도록 준비할 수 있게 세금을 만들었지만 바로 시행하지 않고 시행 시기도 뒤로 미뤄 놨다. 그런데 느닷없이 금투세 시행 직전 다시 유예했다.
법을 만들어서 시행해야 하는 문제는 국가의 근간이고 입법부의 존재 이유와 관련된 문제다. 입법과정에서도 논란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충분히 검토해서 하기로 했고, 시행 후의 문제는 시행을 해봐야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원칙적으로 일단 시행을 해야 한다. 다만 투자자들이 걱정하는 바가 분명히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당에서도 여러 대책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
프레시안 : 금투세 공제 한도를 늘리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최기상 : 5000만 원의 이익을 얻으려면 시드머니가 한 10억은 있어야 한다. 그런 분들의 숫자는 극히 일부라고 한다. 이 부분도 마찬가지로 시행해 본 뒤에 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한도를 늘리고 이후에 액수를 낮추자’는 견해도 당내에 있더라. 그런 논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통계나 자료를 봐서는 (50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내는 분들은) 말 그대로 ‘수퍼 개미’다.
프레시안 : 금투세·종부세에 대한 불만을 가진 이들의 의견을 살펴보니, 최근 세태는 주식·부동산으로 얻은 수익을 더 이상 ‘불로소득’이라고 보지 않는 듯하다.
최기상 : 그 마음들이 이해가 된다. 정치에서 그 부분을 풀어드려야 하는데 꽤 오래 걸릴 것 같다. 그동안 정치 과정이나 우리 행정에서 느슨하게 조금씩 양보하면서 잘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위헌 결정이 났지만 토지초과이득세도 있었고, 토지 공개념을 도입하려는 등 그런 원칙들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과거에는 그 부분(불로소득)이 우리 공동체가 역동적이고 안정적으로 지속가능한 데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소위 그렇게 재산을 형성한 사람은 적어도 공직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은 공무원이 되지 못했고 국회의원으로 스스로 출마하지도 않았고 국민들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이게 자연스럽게 허용되다 보니 불로소득을 얻고 대물림을 받는 이들을 보고 있는 대다수의 국민은 허탈함을 느낀다. 이 문화를 바꾸고 흐름을 바꿔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그렇지만 하루라도 빨리 국민들을 설득하고 정치 영역에서 바뀌려고 노력해야 우리 사회의 존폐와 직결된 저출생·자살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 점점 더 양극화가 심화되어가는 한국사회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과 정치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최기상 : 헌법상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돼있다. 자본주의는 자본가, 부자들이 힘이 센 체제일 수밖에 없고 반대로 민주주의는 압도적 다수인 중산층이나 서민들이 힘을 가져야 한다. 두 체제가 견제하고 균형을 맞춰가야 공동체가 발전할 텐데 지금은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잡아먹어 버린 형국이다. 민주주의가 약화되면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을까. 물건을 구입하고 서비스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충분해야지 자본주의도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은 경제학 기본 상식이다.
우리 헌법도 국가가 관여해서 균형 있는 경제 발전과 소득 수준의 격차를 줄이라고 하고 있다. 양극화 심화를 줄이고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지금의 정치권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압도적 다수의 사람들이 가난,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 때문에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불안과 두려움, 분노와 증오로 낭비하고 있다.
정부는 끊임없이 부를 축적하는 부유한 극소수에 반응할 게 아니라 빈곤해지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지고 있는 압도적 다수를 위해 일한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정부를 믿고 어려움을 견뎌보자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나. 정부는 못하더라도 국회라도, 그 중 다수당인 우리 당이라도 해야 한다. (유권자에게) ‘민주당 정책·활동을 보니 민주당은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 맞다’, ‘저들이 집권한다면 더 나아지겠다’는 신뢰를 드려야 한다. 앞으로 지방선거, 대선이 남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 당도 실력을 쌓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