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은 가운데 또 다른 걱정거리가 등장했다. 일명 ‘원숭이 두창’으로 불리는 ‘엠폭스(MPOX)’다. 아프리카 국가들을 중심으로 급격한 확산세를 보이자 전 세계 보건 당국엔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엠폭스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질병이다. 때문에 엠폭스 관련 괴담, 가짜뉴스, 음모론 등도 확산돼 불안감 증폭, 방역 체계 혼선 발생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엠폭스란 무엇인지, 핵심 방역수칙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 엠폭스의 오해, 원숭이는 죄가 없었다
엠폭스는 급성 발진성 감염병의 일종이다. 엠폭스를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Monkeypox virus)’다. 오르토폭스바이러스(Orthopoxvirus)의 일종이다. 오르토폭스바이러스는 폭스바이러스과(poxviridae)에 속하는 병원체다. 포유류와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과 절지동물을 숙주로 삼는다. 천연두 등 총 12종의 바이러스가 여기에 속한다.
주요 증상은 발열, 오한, 림프절 부종, 피로다. 두통, 요통, 호흡기 증상도 발생한다. 초기 증상은 감기와 유사하다. 발진은 1~3일 후 나타난다. 얼굴, 입, 손, 발, 가슴, 항문생식기 근처에서 발진이 발생한다. 보통 반점으로 시작하며 구진(여드름)→수포(물집)→농포(고름)→가피(딱지) 형태로 진행된다. 증상이 심하면 통증과 심한 가려움증이 나타난다.
원숭이 두창이라는 명칭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은 엠폭스의 숙주가 원숭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엠폭스는 사실 원숭이와 별다른 관련이 없다. 엠폭스는 1958년 덴마크 코펜하겐 국립혈청연구소(Statens Serum Institute)의 실험실 원숭이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1970년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염을 일으키는 숙주도 원숭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엠폭스는 ‘인수공통감염병’으로 분류된다. 즉, 사람·동물 가리지 않고 전염 가능하다는 의미다. 국내 질병관리청도 엠폭스의 숙주는 원숭이뿐만 아니라 쥐, 다람쥐, 프레리도그와 같은 설치류, 오염된 물질에 접촉할 경우 감염될 수 있다고 밝혔다.
대중들의 혼동, 용어의 불확실성이 증가하자 WHO에서는 2022년 11월 원숭이 두창 대신 엠폭스로 공식 용어를 변경했다. 용어 협의는 45개국 정부 당국 대표로 구성된 의학, 과학, 분류 및 통계 자문 위원회의 전문가를 포함, 세계 각국 자문 기구의 조언으로 진행됐다.
나이지리아 일로린대학교 생명과학부 연구진은 “최근 최초로 엠폭스 사망자가 보고된 브라질 등 일부 지역에서 원숭이에 대한 불법 밀렵, 학대 등이 보고되고 있다”며 “원숭이 두창이라는 이름과 관련된 정보로 엠폭스를 원숭이가 전파한다는 잘못된 믿음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까지의 역학 조사에 따르면 원숭이는 엠폭스의 핵심 전파의 원인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인간 감염자 간 접촉에 따른 전파가 훨씬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유형별로 치명률·전파력도 다르다
주목할 것은 현재 전파되는 바이러스 타입이다. 엠폭스는 크게 유전형에 따라 ‘클레이드 I’와 ‘클레이드 II’로 나뉜다. 각각 중앙아프리카, 서아프리카 계열이다. 이중 2022년 5월 유행했던 엠폭스 바이러스는 2형, 즉 ‘클레이드 IIb’ 계통이었다. 치명률은 1% 미만이며 국내서 발생한 엠폭스 환자들도 모두 클레이드 IIb 계통이다.
반면 최근 아프리카에서 확산 중인 엠폭스는 1형, ‘클레이드 I’로 확인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클레이드 I 계열 엠폭스는 이전의 클레이드 II 계열 엠폭스보다 더 쉽게 전염되고 중증 감염의 비율이 더 높다”고 경고했다.
20일 WHO 제임스 R. 오티에노 유전체 역학조사 연구원팀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클레이드 I 계열 엠폭스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급격한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연구팀은 1958년에서 2024년 사이에 수집된 65개국의 1만0,670개 발병 시퀀스를 분석했다. 그 결과, 중앙아프리카 내 313개 지역에서 최근 클레이드 I 계통 엠폭스가 정기적으로 전파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특히 동물-인간 간 감염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집계됐다.
더 큰 문제는 클레이드 I 계일의 치명률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질병관리청 감염병진단분석국 고위험병원체분석과 연구팀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클레이드 II형 엠폭스의 치명률은 0.2% 아래다. 반면 클레이드 I형의 치명률은 최대 10%에 육박한다.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클레이드 II 계열에서도 치명률은 다르다.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는 실험용 쥐를 이용, 클레이드 I, 클레이드 IIa, 클레이드 IIb.1 등 세 가지 유형의 엠폭스 바이러스의 독성을 측정했다. 실험 결과 독성 강도는 클레이드 I > 클레이드 IIa > 클레이드 IIb.1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클레이드 IIb.1의 경우 클레이드 IIa 치사량의 100배에 달하는 바이러스를 투입했음에도 실험쥐는 죽지 않았다.
◇ 급증하는 엠폭스, 철저한 위생 관리 필수
물론 엠폭스의 핵심 숙주가 원숭이가 아니라고 해서 위험도가 낮은 것은 아니다. 과장된 면은 있으나 엠폭스는 분명 주의해야 할 감염병이다. 현재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전 세계 엠폭스 누적 확진자 수는 9만9,176명이다. 총 116개국에서 발생했다.
특히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급격히 확산하는 추세다. 19일 콩고민주공화국 보건부는 올해 초부터 1만6,700여명이 넘는 엠폭스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사망자 수는 570명에 이른다. WHO는 14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언했다. 이는 최고 수준 보건 경계 태세다. 22일엔 태국 방콕에서 클레이드 I 계통 엠폭스 확진자가 나왔다. 아프리카를 거쳐 이동한 60대 유럽 남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도 엠폭스 안전지대는 아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에서 151명의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 올해는 이달 9일 기준 10명의 확진자가 신고됐다. 유행 규모 자체는 상당히 감소한 추세나 감염경로가 국내 감염이 9명이라는 점은 주의해야 할 점이다.
이에 질병관리청도 20일부터 엠폭스를 검역 감염병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검역관리지역은 아프리카 내 클레이드 I 계열 엠폭스 발생 국가들이다. 총 8개국이 지정됐으며 세부적으로는 △르완다 △부룬디 △우간다 △에티오피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케냐 △콩고 △콩고민주공화국이다. 해당 국가 방문 후 엠폭스 관련 증상이 있는 입국자는 입국 시 검역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철저한 방역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위생’이다. 질병관리청은 엠폭스에 감염된 사람, 동물 또는 오염된 물질의 직‧간접적 접촉을 피할 것을 당부했다. 또한 비누와 물로 손을 자주 씻고 알코올 성분 손 소독제를 이용해야 한다. 다만 코로나19와 달리 비말 전파 가능성은 매우 낮다.
◇ 쏟아지는 ‘엠폭스 음모론’도 경계해야
아울러 엠폭스를 둘러싼 ‘음모론’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이 엠폭스’라는 부작용은 지난해부터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는 음모론이다. 코로나19 백신 원료로 원숭이 세포를 사용했기 때문에 원숭이 DNA가 백신에서 발견됐다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들은 다소 근거가 부족하다. 앞서 설명한 바와 엠폭스가 처음 발견된 것은 1958년이다. 인체 감염 사례가 첫 보고된 것은 1970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였다. 즉, 최소 34년 전에도 엠폭스는 지구상에 존재한 바이러스라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 백신의 첫 번째 접종은 2020년 12월 8일 영국에서 이뤄졌다. 따라서 음모론자들의 주장은 시간대부터 오류가 있다.
코로나19 백신에서 원숭이 DNA가 나왔다는 주장도 근거가 부실하다. 일단 음모론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백신은 ‘바이러스벡터백신’이다. 이는 병원체 항원 유전정보(백신 효과가 있는)를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로 포장해 몸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얀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대표적인 바이러스벡터백신이다.
코로나19 항원 유전자의 포장지 역할을 하는 바이러스는 침팬지의 ‘아데노바이러스’가 사용됐다. 백신에 원숭이 DNA가 포함됐다는 주장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는 침팬지가 걸리는 독감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인간이 걸리는 독감 바이러스를 추출한다고 해서 그 바이러스에 인간 유전자가 포함되지 않는 것과 같다.
한 과학계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해당 음모론은 사실 논쟁할 가치조차 없는 수준”이라며 “19세기 초 수두 예방을 위해 우두바이러스(소가 걸리는 질병)를 맞으면 ‘소-인간’으로 변하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돌았던 유럽과 같은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엠폭스 관련 허위사실 유포 문제를 다룬 연구 결과도 있다. F.J 크리스토폴 스페인 로욜라 안달루시아 대학교 교수팀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총 82건의 허위 사실 중 73.17%가 출처 불분명이었다. 그나마 작성자 파악이 가능한 22건도 근거가 부실했다. 15건(18.29%)은 유명한 음모론자 및 단체, 5건(6.1%)은 허구였다. 나머지 2건(2.44%)은 전문가 사칭이었다.
음모론 확산 방지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도 팔을 걷었다. 21일 방심위는 엠폭스 관련 사회혼란 야기정보에 대한 중점 모니터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질병관리청 등 유관기관과 적극 협저에 나설 방침이다.
방심위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사회혼란 야기정보에 대해서는 신속한 심의를 추진하겠다”며 “전염병 관련 사회혼란 야기정보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국내외 인터넷사업자의 자율적인 유통방지 활동을 강화해 줄 것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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