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민원 전화를 받으면 많은 분들이 화가 나계신다. ‘반나절 동안 연락했는데 이제야 연결됐다’, ‘10번 넘게 해야 연결이 된다’는 분들이 많다. 퇴근 후 전화벨 환청이 들린다. 무서운 것은 민원을 해결하면서도 ‘이렇게 처리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먹구구식으로 민원 하나하나 부딪히면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KBS 수신료 업무를 하고 있는 A씨의 말이다. KBS 수신료 분리징수가 시작된 한달 간 수신료 징수 현장에서는 “KBS가 수신료를 받을 의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혼돈의 목소리가 나온다.
수신료 업무 시스템 확충 문제, 자동이체 이탈, 한전과의 전산 불일치, 이중 고유번호 체계로 인한 혼란, 공동주택 협력 문제 등 분리고지 실행과 관련한 문제가 새롭게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KBS 측은 콜센터 증원을 통해 안정화를 위해 노력 중이라는 입장이지만 현장에서는 안정화를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보고 있다.
A씨는 19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난리통’이라는 말이 딱이다. 물론 분리징수 후 혼란은 어느정도 예상된 것이긴 하지만, 정말 끝이 없는 민원 속에서 살고 있다”며 “일단 전화가 안된다는 분들이 많고, 환불을 해달라고 하시거나 TV가 없다고 하시는 분들이 기본적인데, 여기에 고지서가 안왔다는 민원과 콜센터가 연결이 안된다는 민원이 더해졌고 광복절 ‘기미가요’ 사태 이후 수신료를 내지 않을 것이라는 전화까지 합쳐졌다”고 전했다.
A씨는 “본사에서 업무 공지가 내려오긴 하지만, 민원을 받다보면 업무 공지를 하나하나 체크할 시간이 부족하다. 또한 현장에서는 업무 공지로 커버하기 어려운 너무나 다양한 종류의 질문이 들어온다. 현장은 유야무야 흘러가고 있다”며 “또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혼란도 커졌다. 교육도 부족하고 그냥 부딪혀가면서 해결하다보니 시청자분들도 이런 부실한 시스템에 화가 더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직원의 호소처럼 수신료 민원 현장이 혼란해 초기 40여 명으로 시작한 콜센터 상담원이 대거 퇴사하는 사건이 있었다. 또 다른 수신료 현장 종사자 B씨는 2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현재는 콜센터 재고용으로 인해 추가 투입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안정화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전화 응대를 받는다는 것과 시청자들의 민원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B씨는 “아파트의 경우 관리비와 함께 고지가 됐지만 그 외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일반 주택과 상가의 경우 혼란이 심하다”며 “이전에는 전기료 고지서가 갈 때 같이 가서 상가 등에서는 전기료를 함께 배분하면 됐었다. 현재는 전기세와 수신료 고지서가 따로 가고, 수신료 고지서가 늦게 도착해서 이미 정산을 다했는데 수신료는 어떻게 정산할지 혼란하다고 한다. 이전에는 상가가 배분해서 냈지만 ‘우리는 TV가 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곳도 있어서 징수 주체가 불명확해졌다”고 전했다.
“수신료 내려는 선의의 시청자분들도 불편 호소”
또 다른 KBS의 한 직원 C씨는 2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선의로 수신료를 납부하고자 하는 시청자들도 있는데 이들 역시 분리징수 이후 자동이체가 끊어졌다고 하시거나, 고지서가 늦게 오거나 아직도 오지 않았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자동이체가 되지 않고 은행을 가야 낼 수 있다는 답을 받았다는 분들도 있다. 기본적 행정 시스템도 마련되지 않아 국민 불편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수신료를 거부하시는 분들뿐 아니라 수신료를 내고자 하는 분들도 불편하다고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현장의 혼란은 이미 예상되었음에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지난 8일에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수신료 혼란, 현장의 목소리 들을 노사협의회 개최하라」 성명에서 “지난 한 달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라며 “하루에 수백통에 이르는 민원전화를 응대하느라 업무처리는 뒷전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민원이 폭주하면서 전화연결이 안 돼 시청자들은 이미 화날 대로 화가 났고 수신료 현장의 동료들은 격앙된 민원인이 쏟아내는 감정을 온전히 맞닥뜨리고 있다”며 “그나마 민원을 처리하려고 수신료 업무 시스템(CNS)에 접속하면, 시스템이 늘어난 업무량을 감당못해 데이터 유실이 일어나기 일쑤”라고 전했다.
이어 “오죽하면 40여 명으로 시작한 콜센터 상담원이 격무에 지쳐 대거 퇴사하면서 충원이 일상이 되었다고 한다. 상담을 전문으로하는 인력들마저 과부하에 그만두는 일이 속출하는 것”이라 현장 상황을 전했다.
언론노조KBS본부 “사측이 수신료 관련 긴급 노사협의 거부”
민원이 폭주하는 상황에서 노동 강도가 높아진 문제를 넘어, 매뉴얼이 부실한 현장에서 민원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는 상황은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시청자 신뢰를 잃는 문제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KBS본부는 8일 성명에서 “민원 전화 대부분이 처음 받는 수신료 고지서에 대한 문의와 자동이체 방안, 분리납부 절차에 대한 것”이라며 “매일 전쟁터인 수신료 현장에서, 부재중 전화가 수백통 쌓이는 걸 보면서 수신료 동료들의 가장 큰 걱정은 KBS의 준비 안 된 주먹구구식 행태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을 것이라는 점”이라 짚었다.
수신료 문제를 다룰 노사 협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KBS본부 관계자는 22일 “수신료 현황 점검을 위한 긴급 노사협의회는 사측이 거부한 상황”이라며 “회사가 수신료에 대한 의지가 없어 보인다. 긴급 노사협의회 거부는 수신료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것을 명확한 게 보여준 사례다. 회사 측에서 대책이 없고, 수신료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KBS “콜센터 인원 추가 증원, 조기 안정화 위해 노력 중”
KBS 측은 22일 미디어오늘에 “KBS는 지난 1월 수신료 징수 방식 변경에 대비해 전국 수신료 사업지사와 수신료콜센터 인원을 증원했다”며 “분리고지 전환 이후에는 한전 고객센터에 수신료 전담 상담 인력을 배치하고, 수신료 콜센터 인원 추가 증원 등을 통해 분리고지 전환 이후 수신료 징수 조기 안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신료 고지서를 따로 받는 세대의 경우 은행 납부 외 자동 납부가 가능한 상황인지에 대한 문의에 KBS 측은 “한전의 전기계약 단위로 전기요금과 수신료를 분리고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전에서 발생한 수신료 고지서를 받은 모든 납부자는 자동이체를 신청하면 자동이체를 통한 납부가 가능하다”며 “다만 아파트 거주자 중 수신료 분리 납부를 신청한 일부 가구에 대해서는 KBS에서 직접 수신료 고지서를 발송하고 있으나, 금융기관과 KBS 간 자동이체 처리를 위한 실무적인 조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아서, 현재까지는 금융기관 창구납부, 인터넷 지로사이트, 모바일 지로앱 등으로 납부하실 수 있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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