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8월 기준금리 인하가 아닌 ‘13번 연속 동결’을 결정한 배경에 대해 ‘내수 부진’보단 ‘부동산·가계부채에 따른 금융 안정’ 대응이 시급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동결이었지만, 한은의 시각이 점차 ‘인하’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석달 내 금리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위원들의 수는 1명(5월)→2명(7월)→5명(8월)으로 늘었다.
이 총재는 22일 금통위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내수 부진은 시간을 가지고 대응할 수 있는 반면, 부동산·가계부채에 따른 금융 안정 위험 신호는 지금 막지 않으면 좀더 위험해질 가능성이 커지겠다고 판단했다”며 “현 상황에서 한은이 이자를 급격히 낮추거나 유동성을 과잉 공급해서 부동산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범해선 안 된다고 봤다”고 말했다.
앞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8일 “고금리가 길어지면서 내수 회복이 미약하다”면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제언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KDI에선 내수와 경제 성장에 좀 더 중점을 둬서 정책 제안을 한 것으로 이해한다”며 “현 내수 상황이 더딘 것이 사실이나, 한은은 금융 안정 목표에 더욱 무게를 실어서 판단하다 보니 서로 시각차를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내수 대응에 비교적 여유가 있다고 판단한 이유에 대해 그는 “한은이 하반기 민간소비 전망을 1.8% 증가로 잡았는데, 잠재 성장률이 2%라는 점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준은 아니다”라며 “전반적인 소비 상황이 좋지 않다기보다, 자영업자나 부채 많은 취약계층에서의 소비가 어렵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수출 호조’와 ‘시장금리 하락세’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올해 초까지는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출 증대 효과가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물량’까지 늘어나 이윤이 생기는 모습”이라며 “이것이 하반기 보너스나 급여 인상으로 연결된다면 내수 증대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기준금리를 낮추기 이전이라도 현재 시장금리가 많이 떨어지고 있다”며 “이것이 은행 대출 이자와 연동돼 변동금리에 빨리 반영되고 있고, 이자 부담도 0.25% 정도 덜어진 측면이 있다고 분석된다. 금리 부담 면에서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것이 소비 증대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은 동결이었지만, 다음 10·11월 금통위에서 금리 인하가 이뤄질 가능성은 더욱 커진 분위기다. 우선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3개월 후 금리 수준에 대한 금통위원의 전망을 취합한 것)에서의 변화가 있었다. 이 총재는 “금통위원 6명 중 4명은 앞으로 3개월간 연 3.5%보다 낮은 수준으로 기준금리가 인하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밝혔다”고 했다.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둔 금통위원들의 수가 7월 금통위 때(2명)보다 늘었다.
이 총재는 “4명은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2%)에 수렴하고 있고,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정책도 시행될 예정인 만큼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둔 채 거시 금융 안정 상황을 지켜보자는 의견이었다”면서도 “2명은 정부 대책 효과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에 금융 안정에 보다 유의하는 것이 안정적인 정책이라는 견해를 밝혔다”고 말했다. 단 이번 동결 결정에 있어서 포워드 가이던스에서 나아간 ‘인하 소수 의견’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8월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 4·5·7월 금통위 통방문에서 내내 언급됐던 “충분히 긴축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문장에서 ‘충분히’란 문구가 빠졌고, 7·8월 연속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검토해 나갈 것”이라며 ‘인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한편 한은은 이번에 분기별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우리나라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 상승률 전망치를 2.4%로 제시했다. 석달 전 제시한 2.5%보다 0.1%포인트(p) 낮춰잡았다. 다만 이 총재는 ‘경기가 악화했다’고 보는 것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1분기 GDP 성장률이 좋았던 것에 ‘일시적 요인’이 당초 생각보다 컸다고 판단해 기술적으로 조정한 것”이라며 “경기가 나빠졌다거나 기조적인 변화가 있다고 본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한은은 올해 연간 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직전 전망치(2.5%)보다 0.1% 내린 2.4%로 수정했다. 이 총재는 “목표 수준(2%) 수렴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좀 더 커졌다”면서 “물가 수준만 봤을 때는 금리 인하 여건이 조성됐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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