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 정부와 광복회의 갈등이 정점에 이르렀다. 뉴라이트 논란의 중심에 선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임명에 반발하여, 광복회는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하고 별도의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에 대해 국가보훈부는 광복회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갈등의 불씨를 더욱 키웠다. 야권에서는 이를 두고 ‘보복성 조치’라는 비판이 이어지며 정치적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쪼개진 광복절…보훈부 감사 검토
광복회는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논란이 된 김 관장 임명에 항의하는 뜻으로 정부 주관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하는 대신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별도 기념식을 가졌다.
당시 축사를 맡은 광복회 김갑년 독립영웅아카데미 단장은 지난 15일 윤 대통령을 향해 “친일 편향의 국정 기조를 내려놓고, 국민을 위해 옳은 길을 선택하라”며 “그럴 생각이 없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라고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광복회가 별도로 개최한 광복절 경축식에서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발언이 나오자 보훈부는 광복회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가능성을 제기하며 감사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광복회가 연간 32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는 보훈부 산하 단체이기에 국가유공자단체법과 내부 정관에 따르면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이에 보훈부는 해당 행사가 정부 탄핵 성격으로 변질된 데에 대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는지 감사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이종찬 광복회장도 지난 10일 광복회학술원이 운영하는 청년헤리티지아카데미 특강에서 윤 대통령을 향해 “상당한 배신감을 갖고 있다”며 대통령실과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이 회장은 당시 “독립기념관장 한다는 사람이 기자들이 ‘왜 일제 식민시기 우리 국적이 일본이라고 했느냐’고 문제 제기 하자, 그는 ‘손기정 선수가 한국 태극기를 붙이고 나왔냐’고 반문했다고 한다”며 “독립기념관 관장하겠다는 사람이 식민지배 합법화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당시 손기정 선수는 우리가 형식적으로 주권행사를 할 수 없어서 일본 국적으로 나갔지만 시상식에서 꽃다발로 가슴에 있는 일장기를 가렸다”며 “이런 피나는 투쟁의 역사가 있는데, 독립기념관 관장한다는 사람이 뉴라이트의 깃발을 들고 일본 국적이 당연하다고 강변하는 것은 어찌 매국이 아니겠나”고 맹비판했다.
이 회장은 “대통령 주변의 밀정들이 이 연극을 꾸민 것 우리 역사를 왜곡시키지 말라고 제가 지금 항의하고 있는 것”이라고 정부 주관 광복절 경축식 불참 이유를 설명했다.
각 세우는 광복회
보훈부의 감사 검토 소식에 광복회는 더욱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 회장은 지난 20일 입장문을 통해 윤 대통령의 대일 정책을 비판하고 친일 인사 기용 중단을 촉구했다. 이 회장은 이날 “광복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정책에 실망하고 있다”며 “윤 대통령은 전전 일본과 전후 일본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전전 일본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자세는 없어지고, 국민정서에 의한 공감 없이 일방적으로 일본과의 친선우호만 강조하는 것 같다”며 “독립과 역사를 전담하는 기관 수장을 모두 ‘친일적’ 인사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정부의 역사관을 지적했다.
이 회장은 “독립운동사를 평생 연구한 학자나 후손들은 근처에도 못 오게 막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광복회가 이런 현상을 보고도 못 본체 하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전전 일본의 수탈을 항의하는 우리 국민을 ‘반일종족’이라 비하하는 사람을 한국학 중심연구기관장으로 기용했다”며 “‘일제강점이 우리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 위안부는 자발적인 매춘’이라 주장하는 단체의 수장을 독립기념관 이사로 못 박았다. 학문의 자유라면 좋지만 국민의 세금을 쓰는 기관이나 단체의 장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의식한 듯 “광복회는 정치하는 단체가 아니고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라며 “우리가 정부에 대해 ‘대일정책을 수정하라, 친일인사 기용을 중단하라’ 요구한 것은 목숨과 재산을 초개같이 버린 선열들의 권위로 광복회만이 할 수 있는 주장”이라고 했다.
덧붙여 “광복회는 진심으로 한일 간에 해묵은 감정을 해소하고 선진적인 나라관계로 발전되기를 희망한다”며 “먼저 대통령 주변에 옛날 일진회 같은 인사들을 말끔히 청산하라”라고 촉구했다.
‘보복성 조치’ 반발하는 정치권
야권에서는 보훈부가 광복회에 대한 감사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두고 ‘보복성 조치’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지난 20일 국회 브리핑을 통해 “식민사관을 주장하는 사람을 독립기념관장에 임명해 놓고 반발하는 광복회를 압박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조 수석대변인은 “대통령이 광복회장을 향해 ‘왜 이러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는데, 국민이야말로 대통령을 이해할 수 없다”며 “스스로 친일 논란을 일으켜 국론 분열을 야기해 놓고 ‘반국가세력’ 타령을 늘어놓는 대통령을, 국민은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친일 논란을 종결할 방법은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사과하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확고한 역사관을 밝히는 것”이라며 “친일 논란, 색깔론 공세로 지지층 결집할 생각 말고 대통령의 본분인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라”고 요청했다.
정부와 광복회의 갈등은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뉴라이트 논란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역사 인식과 인사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부와 광복회 간의 충돌이 지속될수록, 이번 사태는 더 큰 정치적 논란으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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