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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드는 폭염 속 이동·현장노동자들…작업중지권 보장·실효성 있는 대책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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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 성북구 소재 한 주택정비사업 건설현장에서 근로자가 음료를 든 채 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div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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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 성북구 소재 한 주택정비사업 건설현장에서 근로자가 음료를 든 채 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역대급 폭염이 연일 이어짐에 따라 숨 막히는 더위 속 외부 활동에서 일을 해야 하는 이동·현장 노동자들이 위험한 환경에 내몰렸다. 이에 노동계는 작업중지권 등 제도 정비를 통해 재발 방지를 해야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21일 노동·시민단체 광주·전남 노동안전보건 지킴이에 따르면 폭염경보가 발효됐던 지난 13일 오후 4시 40분께 장성군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에어컨 설치 작업을 하던 양모(27)씨가 온열질환 증세를 호소하며 쓰러졌다.

그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했다.

이에 단체와 유가족은 전날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대 청년노동자 가 35도를 웃도는 폭염에 작업을 하다 사망했다”며 “책임자 처벌과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양씨가 온열질환 증상을 보이고 구토와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쓰러졌지만 1시간 가까이 햇볕에 방치돼 결국 죽음에 이르렀으며 사측의 구호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외쳤다. 더욱이 고인이 보냉장비 착용을 요청했음에도 거부당해 이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경찰과 노동당국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게 이들 단체의 입장이다.

양씨의 유족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후 광주고용노동청에 양씨가 근무하는 사측 대표와 원청 책임자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 줄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고발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광주전남노동안전보건지킴이(준) 손상용 위원장은 본보에 “CCTV 속 고인이 온열질환을 호소하며 쓰러진 모습이 담겼고, 이를 방치했다는 정황도 있는 만큼 사측의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이 요구되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교섭, 사과 없이 원론적인 이야기만 오고 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숨 막히는 폭염에 개학 전 에어컨 설치 물량과 업무가 몰린 상황에서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청년노동자의 죽음이 안타깝다”며 “노동당국이 최근 발표한 폭염대비 근로자 보호대책 등이 정작 현장에서 적용되지 않고 있으며, 사측 역시 조속하게 응급처치를 진행하지 않아 벌어진 사고”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지난 19일 오후 12시 40분경 중부내륙고속도로 남여주 나들목 근처에서 제초 작업을 하다 휴식을 취하던 노동자가 온열 질환으로 숨을 거뒀다. 같은 날 한화오션 거제 사업장 선박 엔진룸 근처에서 60대 하청업체 노동자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화장실에서 60대 협력업체 직원이 각각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했다. 이 두 사람 역시 온열질환이 의심되고 있어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정확한 사고 경위를 밝히기 위해 현장 조사에 돌입했다.

실제로 ‘찜통더위’에 따른 온열질환 환자는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20일 기준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집계치를 살펴보면, 전날 하루 온열질환자는 71명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사망자가 1명 포함돼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총 26명이다.

온열질환자는 올 8월 들어 지난 13일(101명)부터 18일(42명)까지 엿새 연속 감소하다가 전날 다시 증가했다. 이로써 올해 감시체계가 가동된 지난 5월 20일부터 전날까지 누적 환자는 2890명으로 파악됐는데, 이는 온열질환 감시체계 운영이 시작된 지난 2011년 이후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에어컨 설치 작업을 하다 20대 청년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쓰러져 사망한 사고와 관련 유족과 노동·시민단체가 지난 19일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해 책임자 처벌과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에어컨 설치 작업을 하다 20대 청년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쓰러져 사망한 사고와 관련 유족과 노동·시민단체가 지난 19일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해 책임자 처벌과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폭염에 노동자들 ‘대책 촉구’ 목소리 냈지만

지난달 17일 진행된 ‘기후재난 당사자들이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노동자들은 폭염, 폭우 등에 안전한 노동환경과 주거환경, 위험시 일터의 작업중지권, 기후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박세중 건설노동자는 “매년 폭염이 도래하면 고용노동부는 폭염지침을 발표하지만 대표적인 옥외산업인 건설산업의 노동자들은 지난 2016년부터 5년간 폭염으로 인한 열사병으로 숨졌다”며 악천후에 다른 건설노동자의 생계를 보장을 위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도기가스 안전점검 허보기 노동자는 “서울시 도시가스 공급규정에 의하면 6~9월 하절기 격월검침을 실시할 수 있다고 돼 있다”며 “하절기 격월검침은 폭염시 야외에서 일하는 점검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지만 도시가스 회사들은 노동자들이 서울시 격월검침 권고대로 하절기 격월검침을 시행했을 때 업무명령 미이행으로 징계를 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안전점검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하절기 격월검침의 완전한 시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에어컨서비스 김성범 노동자는 “기후위기로 여름기온은 매년 역대 최고기온을 기록하며 에어컨의 필요성을 늘어났지만 에어컨을 고치는 서비스 노동자는 폭염, 폭우, 혹한과 폭설에 노출돼 있다”며 “극한의 날씨는 작업공간을 굉장히 위험하게 만들고 이동시간을 포함해 한 시간에 한 집 수리를 해야 하는 회사가 정한 시간적 압박은 위험을 가중시킨다”고 호소했다. 이에 그는 작업 사이에 쉴 충분한 휴식 시간과 함께 안전한 작업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노동자들은 입을 모아 정부에 노동자와 시민 모두가 안전하게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호해 줄 것과 반복되는 기후재난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폭염이 이어진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 설치된 대기오염물질 측정수치 안내 전광판에 현재 온도가 37도로 표시돼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div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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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이 이어진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에 설치된 대기오염물질 측정수치 안내 전광판에 현재 온도가 37도로 표시돼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유명무실한 ‘작업중지권’·‘근로자 건강보호 대책’

현장·이동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으로 인해 노동계에서는 ‘작업중지권’의 필요성이 재점화됐다. 작업중지권은 산업안전보건법상 보장되는 권리로, 노동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을 느끼게 되면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 지난달 이동노동자 1198명 대상으로 진행한 ‘기후재난 시기 이동노동자 작업중지권 보장 촉구 및 현장 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여름철 폭염 시 온열질환 및 건강 이상을 겪은 노동자는 85.1%(1019명)으로 집계됐다.

위협을 느꼈음에도 작업을 중단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노동자들은 ‘이후 누적될 물량이나 실적’이라는 응답을 37.8%(453명)로 가장 많이 지목했으며 뒤이어 ‘수익의 감소(37.8%·425명)’, ‘계약해지 가능성(6.3%·76명)’ 등 순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작업중지권’이 가장 많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응답자 68%(815명)은 폭염, 폭우, 폭설, 강풍 등 이상 기후현상이 있을 때 작업중지권이 있다면 ‘최대한 사용해 안전을 지키겠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이는 강제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현장에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게 노동계의 목소리다. 작업중지권 사용은 권고에 불과한 데다가 기준 역시 애매하기 때문이다. 작업중지권이 법으로 규정된 지 30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회사의 압박과 노동자 보호 규정 미흡 등으로 인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여기에 현장에서 일하거나 이동하는 직종의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는 사업주의 업무 지시를 받음에도 특수고용 형태로 계약돼 있어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사회안전망이 있어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정부가 지난 5월 총력대응 의지를 밝히며 꺼내든 ‘폭염 대비 근로자 건강보호 대책’도 작업 중지 권고 기준 온도가 현실성이 떨어지면서 되려 폭염 산재를 부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날 근로복지공단이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실에 제출한 ‘2023년 온열질환 산업재해 인정현황’ 등을 살펴보면, 산재로 인정된 31건은 모두 35℃ 미만 온도에서 발생했다.

앞서 정부는 현재 체감 온도 △31℃ 이상 ‘관심’ △33℃ 이상 ‘주의(옥외작업 단축)’ △35℃ 이상 ‘경고(불가피한 경우 외 옥외작업 중지)’ △38℃ 이상 ‘위험(긴급조치 작업 외 옥외작업 중지)’로 폭염 단계별 대응 요령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작업현장에서 관리하겠다는 옥외작업 중지 온도는 35℃ 이상이다. 이는 실제 온도가 아닌 체감온도 기준으로 적용된다.

지난해 전체 폭염 산재의 58%는 정부 기준 주의 단계와 비교해 낮은 온도에서 일어난 점, 관심 단계인 31℃ 미만에서도 10건의 온열 질환이 발생해 산재로 인정된 사례를 고려하면 턱없이 높은 온도 기준이다.

이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조건희 활동가는 본보에 “작업중지권은 발생 위험을 감지하고 대피하라고 만들어진 예방적인 권리인데, 근로자들 입장에서는 위험 해석 자체가 애매하며 기후위기 특성상 예측이 어려워 현장에서 제대로 작용되지 않는다”며 “사측과 합의 없이 작업을 중단하거나 근무지를 이탈할 시 따라오는 문제도 작업중지권 사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 역시 권고에 불과해 현실적으로 적용되기 어렵다”며 “특히 산업현장마다 온도, 습도, 환경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이 알맞게 활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짚었다.

이에 조 활동가는 작업중지권과 근로자 보호대책에 강제성이 부여돼야 하며 이를 사용한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법·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더 나아가 어느 현장과 관계없이 폭염, 폭우 등 기후 위기에서 노동자 보호가 이뤄질 수 있는 포괄적인 안전관리체계 구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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