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의언론=이병태 카이스트 교수]
‘친일파’ ‘친일 밀정’이라는 단어는 일부 우리 국민이 대한민국이 아니라 일본을 위해 살거나 적어도 한국을 폄하하고 일본을 동경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최근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반대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곳곳에 암약하고 있다는 발언을 다시 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분열된 양쪽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겉으로는 다르지만 지목하는 내용은 동일하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저쪽에는 ‘반국가적’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이 사회와 역사의 정당성을 위험하게 한다는 주장이다.
정치적으로 어느 한 쪽의 신념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고 속시원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이는 위험한 현상이다.
어느 사회든 극단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있다. 일부는 폭력으로 사회의 질서와 구조의 전복을 꾀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려는 소수의 인간들은 존재한다. 그런 폭력적 파시스트들은 당연히 법과 공권력으로 제어하고 사회와 법을 지키는 사람들을 지켜야 할 국가의 의무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 극단주의자들이 폭력의 수단을 동원했을 때만 공권력의 동원이 정당화된다. 자유민주주의는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전제로 한다. 극단적인 생각 자체를 규제할 정당성은 없다. 그것이 행동으로 취해져 남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했을 때만 우리가 방어의 수단을 동원해야 자유가 숨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친일 밀정’과 ‘암약하는 반국가 세력’이라는 말은 반자유적이고 반헌법적인 문화 전쟁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땅에 같이 살 수 없다는 사회적 추방을 전제한 말이다.
폭력으로 우리의 자유와 사회를 위협하는 세력이 암약하고 있다면 대통령은 그들을 색출해서 법적 심판의 대상으로 삼으면 되고 그럴 의무가 있다. 연설로 공개 경고할 일이 아니다.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암약하지만 잡을 수도 없다면 그것은 대통령의 무능의 자백일 뿐이다.
아니라면 정치적 반대자들을 침묵시키려는 ‘매카시 선풍’이 된다. 친일파, 친일 밀정 선동도 이 땅에 사는 다른 시민 의식과 생각의 다양성과 자유 자체를 부정하고 의심하는 것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것에서 똑같다.
반국가 세력과 친일 밀정은 사실은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을 부정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검열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앞세운 공포 마케팅이라는 점에서 파시즘의 일란성 쌍둥이다.
엄밀히 말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빈국가적 생각, 친일적 생각, 무정부주의 생각을 할 수 있고, 모두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이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은 한때 사회의 대중과 다른 이단적이고 극단적인 생각들이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면 혁명이 되고 역사의 진전이 되었기 때문이다.
남녀평등, 양반과 상놈의 사회 계급의 타파, 절대 왕권의 폐지, 인종과 무관한 평등, 종교의 자유, 종교(신)를 부정할 자유, 평평하지 않고 둥근 지구, 지동설, 진화론 이 모든 것들도 한 때 이단적이고 극단적인 생각이었다.
우리가 천부적 권리이자 기본권이라고 하는 것들도 이 땅에서 100년 전, 서양에서도 300년 전만 해도 다 극단적이고 이단적인 생각들이었던 것이다.
민주주의가 생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은 각자가 행복을 추구할 권리라는 기본권이기도 하지만, 바로 역사 전진이 다른 생각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 진전을 위해 우리는 불편한 생각도 듣고 사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그리고 사회가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극단적인 생각을 누가 하고 있는지 아는 것은 억눌러서 병적인 생각을 키우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보다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정보를 갖게 된다.
왜 국가와 민족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개념이고 가치인가? 왜 정치적 선동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침묵시키려는 문화 검열이 이처럼 기승을 부리는 사회가 되어 있는가? 왜 5,0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 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해야 하는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의 나라가 아닌가? 자유와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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